한문공부의 즐거움과 깨달음
상태바
한문공부의 즐거움과 깨달음
  • 장지원 충남대학교·교육학
  • 승인 2021.10.20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카데미쿠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적다고 할 수는 없는 나이에 한문 공부를 시작했다. 좋은 책과 선생님 덕분에 혼자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좋은 스승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거워해서 남들이 관심가지고 함께 하도록 신나게 만드는 사람이다. 내가 하는 학문 연구를 보며 학생들이 학문에 매진하고 싶어 했을지 반성해본다. 자신의 분야에 푹 빠져 누리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모든 사람이 훌륭한 스승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한문 공부에 도전하고 조금씩 시간을 보내면서 약간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집중하지 않고 대충대충 훑어보던 글읽기에서 벗어나 깊은 의미를 캐묻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기억하느냐가 독서의 기준이었던 데서 벗어나 형식과 내용을 고찰하고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을 두루 고민하면서 독해를 시도한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졌다. 마냥 읽기 쉬운 글을 쓰는 데 연연하는 대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더 많은 독자들과 교감할 수 있는 글쓰기를 생각하고 있다. 

예전의 나는 빨리 읽고 쓰는 것을 장기로 생각했다.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글을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쓸 수는 있었다. 문장이 거칠고 투박한 것은 문장가가 아니니 이해될 수 있었지만, 새기면서 읽고 쓰지 않았던 탓에 글에 깊이가 없고 잔재주에 의존해 왔다.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을 끌어올리지 못한 채 개별적인 정보 수집에 머물러 있었다. 호흡이 짧아 긴 글을 보면 답답증을 느껴 마지막 장을 뒤적거렸고, 저술 같은 긴 글쓰기를 유난히 힘들어 했다. 대체로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글쓰기를 익혔던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이었다. 

거대한 벽을 멍하니 바라보듯 평면적인 독해를 하던 데서 벗어나, 글이 입체라는 착상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표면과 내면을 고려하는 글읽기와 글쓰기를 시도하는 발전을 체험하게 되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겉모습 뒤에 숨어있는 저자의 속내를 고민하게 되고, ‘시대적 배경’으로 표현되는 관념적 상황이 아니라 저자의 삶 속에 내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품 속 곳곳에 남아있는 여백을 메우면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저자의 의도보다 더 좋은 의견을 창조할 수 있다. 내가 쓴 글의 소유권은 내가 독점하는 것이 아닌 독자와 공유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자각했다.

이러한 깨달음을 혼자 글을 읽어 터득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학들과 함께 읽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혼자서 글을 읽으면 잘 모르고 금방 포기하지만, 1:1 과외로도 얻지 못한 것들을 동학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모르는 구절을 같이 읽으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허술하게 넘어갔던 대목에 예상치 못한 큰 의미가 숨어 있음을 깨닫고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본다. 모니터로 훑어보거나, 휴대폰 화면을 올려가며 읽어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자산이었다. 한문 공부는 이런 일들의 연속이어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글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사람을 보는 안목 또한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교육 현실에 비판적이고, 타국의 제도나 문화를 도입해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고 한다. 단골로 등장하는 타국의 교육 방식 중에는 유대인들의 하브루타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브루타를 부러워하지 말고 한문교육을 제대로 하면 될 일이다. 어렵고 딱딱한 경전만을 고집하지 말고, 사람들이 모여 깊은 뜻이 담긴 글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대화와 토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나의 정답만을 주장하지 않고 각자의 해석에 의의와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다. 이러한 주장이 최신 유행의 언어들로 채색되어 각성과 동행, 깨달음과 앎이라는 교육의 본질은 사라지고 점수와 시험 중심의 한문 교육으로 이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장지원 충남대학교·교육학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교육철학학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교육철학과 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 서양고전의 재해석, 교육철학, 교육학과 학문 일반의 관계 등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