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치에서 왜 ‘공동지식’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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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치에서 왜 ‘공동지식’이 중요한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0.18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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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의 법칙: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탐욕과 배신의 정치사 | 한병진 지음 | 곰출판 | 280쪽

 

‘독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무너지는지’ 독재의 흥망성쇠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이 책은 독재 권력을 잡으려는 자들의 유형과 그 특징들,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처세술과 생존 법칙을 살펴보고, 실존한 여러 독재자들의 사례를 통해 독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하나하나 파헤쳐나간다.

특히 저자는 독재를 단순히 민주주의의 대척점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독재자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 혹은 이기심을 이용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권력을 탄탄히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재자가 어떻게 사람들(특히 엘리트들)을 기만하고, 이런 약속을 믿은 순진한 이들이 역사에서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독재 탄생의 핵심을 법, 총, 카리스마, 쿠데타 등에서 찾기보다는 혼탁한 정보와 조작된 여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 그리고 이런 것들에 쉽게 흔들리는 우리의 순진함에서 바라봐야 독재정치의 주요한 수수께끼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민주주의와 독재를 구분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공동지식(common knowledge)’을 강조한다. 공동지식이야말로 권력투쟁의 승패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기대와 예상이 하나로 수렴될 수 있도록 돕는 통념과 여론, 신념, 관습, 법 등을 일컫는 ‘공동지식’은 모두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조정되는지) 시민 개개인이 예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당연히 독재 권력은 시민들 사이에 공동지식이 형성될 계기를 주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금지함으로써 집단행동을 선도하는 핵심 대중을 결집하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이 책은 독재자가 자신의 독재 체제를 공고히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공동지식을 이용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 우상화와 엘리트 숙청 사업이 왜 불가피했는지 구소련(스탈린), 중국(마오쩌둥), 북한(김일성), 이라크(후세인)의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여기서 발견된 패턴들을 잘 들여다보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를 미리 알아차리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독재 방식에 대한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탐욕과 배신이 난무하는 권력투쟁에서 독재자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독재자 주변의 엘리트들, 특히 2인자의 존재다. 영조가 아들 사도와 사이가 벌어진 것도, 스탈린이 자신의 충신 예조프를 숙청한 것도, 김일성이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죽은 것도 2인자로 세력이 분산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개인에 권력이 집중되는 개인 독재화가 독재자 개인의 뒤틀린 욕망이 아닌 독재정치의 구조적 경향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선출된 독재자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해나가는지 몇 가지 특징으로 살펴본다. 그 특징은 ‘첫째, 권력은 누구와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둘째, 권력투쟁은 초반전이 전부다. 셋째, 가진 자만 계속 갖는 힘의 쏠림이 생긴다. 넷째, 주기적인 숙청은 불가피하다’이다.

우리 사회가 다시 독재로 회귀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민주주의에 균열이 보이는 건 누구도 부정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정치적 양극화가 극대화되는 분위기에서 편향에는 편향으로 맞서는 게 정당화되는 분위기이고, 도덕이 양심의 잣대가 아니라 서로를 공격하는 내로남불의 무기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정직성만큼이나 정의로움도 허약해서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는 한에서만 우리는 정의를 외친다. 결국 해결은 안 나고 극단적 이견의 광풍에서 싸움만 깊어진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라면 흡사 독재의 모습을 띤 사악한 이데올로기가 우리 마음에 자리 잡을 여지가 충분하다고 우려한다.

팩션이긴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 소설 《1984》의 빅브라더를 ‘국가 2025’로 소환하여 독자들이 개인독재의 일그러진 사회를 미리 경험해볼 수 있도록 그려놓았다. ‘국가 1984’의 전체주의가 주변 세상의 진보를 버티고 견디다가 기괴하게 변모한 ‘국가 2025’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헷갈릴 만큼 구체적으로 묘사해놓아 독자로 하여금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버전의 독재에 관해 한 번쯤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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