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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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억새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1.10.1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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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일본 덕천막부(德川幕府)의 창설자 덕천가강(德川家康,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라고 하는 동조궁(東照宮, 도우쇼우구우)은 자랑이 대단한 문화재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점을 크게 내세운다. 찾아가 많은 관광객 틈에 끼어 살펴보면, 장식이 너무나도 정교하고 현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이한 것들이 계속 의문을 일으킨다.

입구 출입문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니, 여덟 마리 원숭이가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이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웬 원숭이냐 하는 의문을, 원숭이는 사람들이 평화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해설이 풀어준다. 원숭이는 영리하고 재주가 많은 장기가 있다고 하면서, 일본인이 아주 좋아하는 동물이고, 일본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해하면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여덟 원숭이 가운데 셋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면서 눈과 귀와 입을 가리고 있는 것이 별나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는 의문은, 통치 방침을 시각적 조형물로 나타낸 줄 알아야 해결된다. 다스림을 받는 백성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서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고 했다. 통치자는 만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누구나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조선왕조를 창건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묻혀 있는 건원릉(健元陵)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가운데 특별한 것이 아니다. 관광객을 따로 불러 모으지 않는, 그저 그런 무덤이다. 대강 보고 그냥 돌아서려고 하다가, 봉분 위에서 억새가 나부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웬 억새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지만, 억새가 너무나도 친숙해 바로 대답할 수 있다. 억새는 손상되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이다. 지체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같은 정서를 누리면서 가을을 애달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게 한다. 왕이 백성과 다름없다고 하는 사실을 확인하도록 한다. 

동조궁의 원숭이와 견원릉의 억새는 무덤과 어울리지 않아 의문이 생기게 하는 공통점이 있으면서, 다른 모든 것은 정반대이다. 원숭이를 조각해놓았으므로 모습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억새는 살아 있어 가만있지 않고 움직이며, 자리 잡은 곳이 왕릉 위라는 사실을 전연 무시하고 아무 제약 없이 마구 뻗어난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제공하지 않고, 보고 듣고 말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라고 일깨워준다. 차등론을 부정하고 대등론을 제시한다.   

건원릉의 억새는 능을 만든 지 몇 백 년이 지나 처음으로 기록에 올랐다. <<인조실록>>(인조 7년, 1629년 3월 19일 기사)에서 “태조가 남긴 교지에 따라 북도의 억새를 무덤 덮는 풀로 삼았다”고 한 것뿐이다. 더 알고 싶어 하는 궁금증은 민간전승이 풀어준다. 

태조는 고향 영흥에 가서 묻히고 싶다고도 하고, 고향의 억새를 무덤에 심어달라고도 했다. 아들 태종이 앞의 소원은 접어두고, 뒤의 소원만 받들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함경도 영흥은 서울에서 천리가 넘어 억새를 죽이지 않고 가져 올 수 없었다. 누가 묘안을 내서, 영흥에서 서울까지 사람들이 쭉 늘어서서 억새 떼를 넘겨주고 받는 방법으로 어려움을 해결했다. 민중이 그때 자진해 협조하고, 관련되는 구비전승을 오늘날까지 이어온다.

이야기가 더 이어진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건원릉에 불을 질렀다.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건원릉에 붙은 불을 꺼버렸다. 불이 꺼지자 계속해서 불을 놓았지만, 그럴 때마다 불이 꺼졌다. 겁이 난 왜적은 불을 지르다가 도망가 버리고, 그 이후에는 건원릉에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건원릉 앞에 서 있는 비석들이 밤에는 장군으로 변해 왜적을 물리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 건원릉의 억새가 군사들로 변해서 왜적을 물리치는 데 함께 참여했다고도 한다. 태조를 존경하고 가호를 바라는 마음이 이어지도록 하는 데 억새가 긴요한 구실을 했다.

건원릉의 억새를 해마다 한 번 한식 날 벌초를 하고 다듬는 행사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럴 때면 누구나 무덤 가까이 가서 참여할 수 있다. 행사를 마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절차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이 웃자란 억새를 멀리서 보고, 그 날을 기다리며 즐거워한다. 조금도 변하지 않고 항상 그대로인 동조궁의 원숭이 조각은, 멀리서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조용히 바라보아야 하는 것과 아주 다르다. 

원숭이와 억새가 보여준 특성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도조궁의 원숭이 조각은 뛰어난 장인의 절묘한 기술이, 건원릉 봉분 위에서 억새가 나부끼도록 한 것은 많은 사람의 합심이 각기 장기임을 계속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원숭이들 조각이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이어받아 일본 특유의 행동 규범으로 삼는다. 건원릉의 억새가 제멋대로 나부끼며 자라는 것은 한국인의 기질이나 활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은 규범이나 절도가 선진화의 비결이라고 하는데, 분방하고 발랄한 한국인이 치고 올라가 선후를 역전시킨다. 차등론을 대등론으로 뒤집는 역사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사실이 일본에서는 감지되기 어렵고, 한국에서 보면 너무나도 선명하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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