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제국, 제국이 창조한 셰익스피어
상태바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제국, 제국이 창조한 셰익스피어
  • 이경원 연세대학교·영문학
  • 승인 2021.10.17 2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을 말하다_ 『제국의 정전 셰익스피어: ‘이방인’이 본 ‘민족시인’의 근대성과 식민성 양장』 (이경원 지음, 한길사, 956쪽, 2021.08)  

 

왜 셰익스피어였는가? 하고많은 작가 중에 왜 셰익스피어가 세계문학의 기준과 중심으로 자리 잡았는가? 영미 비평가들이 셰익스피어를 ‘가장 위대한’ 작가로 규정해온 근거가 과연 타당한가? 이 질문들은 필자가 이제껏 영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가졌던 궁금증이자 이 책을 쓰게 만든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제국의 정전 셰익스피어』는 그런 아마추어 같은 우문(愚問)에 나름의 현답(賢答)을 찾아보겠다는 무모한 시도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두 가지 기본전제에서 출발했다.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정전성과 정전화의 상호연관성, 즉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텍스트에 내재한 미학적 자질인 동시에 제국주의 역사가 빚어낸 이데올로기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셰익스피어가 재현한 근대성과 식민성의 분리 불가능성, 즉 셰익스피어가 표면적으로 주창한 인본주의와 이면적으로 배서한 인종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이다. 첫 번째 전제가 책의 바깥 테두리라면, 두 번째 전제는 그 안쪽의 핵심논지에 해당한다.

필자는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를 접할수록 인간에 대한 그의 혜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내면의 온갖 속된 욕망을 들추어내고 개인의 고통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읽어내는 그의 능력은 참 대단하다. 다만 이 책에서는 바로 그 셰익스피어, ‘인간성의 창조자’이자 ‘영문학의 태두’로 추앙받는 그 셰익스피어가 인종주의, 민족주의, 제국주의, 가부장제, 오리엔탈리즘 같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연루되었음을 논증하려고 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규명하려고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을 연극무대에 끌어들였고, 백인 주류사회의 모순을 조명하기 위해 ‘이방인’과 ‘야만인’을 결핍된 존재로 묘사했으며, 그러한 주체 구성과 자기 성찰의 작업은 잉글랜드의 국가 정체성 확립과 앵글로색슨 제국의 패권 구축에 불가결한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 역사 속에서 최고 정전으로 등극했다는 것, 이것이 책의 핵심논지다. 이는 보편과 객관으로 포장된 셰익스피어의 신화적 권위에 균열을 가하고, 미학적 양가성에 가려진 셰익스피어의 정치적 편향성을 밝히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가장 많이 의존하는 이론적 분석 틀은 파농(Frantz Fanon), 사이드(Edward W. Said), 바바(Homi K. Bhabha), 룸바(Ania Loomba) 등의 비서구 출신 지식인들이 정초한 탈식민주의다. 단순한 방법론을 넘어 책 전제의 이정표가 되는 탈식민주의 비평이론은 필자가 셰익스피어와의 힘겨운 씨름을 위해 움켜잡은 샅바이자 영문학을 하면서 ‘이방인’으로서 느낀 이질감과 좌절감에도 불구하고 영문학을 계속하게 해준 기틀이다. 책 표지의 화보는 필자가 셰익스피어를 대하는 시각을 함축한다. 셰익스피어의 식민지 로맨스 『태풍』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묘사한 이 그림에서, 좌우에 대치한 프로스페로와 캘리반은 각각 식민지 지배자와 피지배자, 둘 사이에 떠 있는 에어리얼은 식민지배의 하수인, 프로스페로 뒤쪽의 미랜더는 ‘야만인’의 침투에서 보호해야 할 백인 여성을 상징한다. 탈식민주의 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가 재현한 식민지 상황을 재구성하여, 프로스페로와 캘리반을 서구 문화제국주의의 포교사와 비서구의 민족주의적 저항 주체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책 역시 ‘프로스페로의 책’을 ‘캘리반의 눈’으로 다시 읽는 탈식민주의 비평의 일례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대한 설명은 심미성과 정치성 중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형식주의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주의적 접근이다. 형식주의 전통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20세기 후반에 서구·백인·남성 중심적 영문학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했던 블룸(Harold Bloom)을 들 수 있다. 블룸은 셰익스피어의 독보적인 위대함이 원래 텍스트 ‘안’에 내재한다고 역설하면서, 그 근거로 ‘셰익스피어다운 차이’ 즉 셰익스피어 특유의 독창성, 보편성, 객관성, 양가성을 내세웠다. 반면에 당시 영문학의 이단아로 여겨졌던 테일러(Gary Taylor)와 돕슨(Michael Dobson)은 셰익스피어의 ‘정전성’보다 ‘정전화’에 주목했다. 이들은 셰익스피어의 명망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역사가 수반한 텍스트 ‘밖’의 정치적 필요와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 덕분에 후대에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주장했다. 

 

                                            Shakespeare-first-folio-title-page-introduction

서론인 제1부(‘셰익스피어 신화의 재해석’)에서는 이 두 진영의 상반된 입장을 병치하여 소개하고, 셰익스피어의 명망은 작가의 천부적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를 둘러싼 외부 환경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을 논증했다. 즉 셰익스피어가 잉글랜드의 ‘민족시인’으로 재탄생하고 더 나아가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세계문학의 ‘시금석’으로 등극한 과정은 앵글로색슨 민족국가와 제국 건설 과정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적 산물인 셰익스피어를 18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인종주의·제국주의와 연결짓는 것이 과도한 ‘현재주의’의 오류가 아닌지, 탈식민주의 이론으로 셰익스피어를 비판하는 것이 왜 필요하고 또한 타당한지를 면밀하게 검토했다.

본론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부(‘셰익스피어가 진단한 근대성의 징후’)에서는 먼저 셰익스피어의 대표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햄릿』과 『리어왕』이 르네상스라는 역사적 전환기의 갈등과 혼란을 어떻게 극화하는지를 집중 분석한 후, 여타 작품들에서 중세의 기독교적 봉건체제를 떠받치던 세계관이 세속적 근대성의 물결 속에서 허물어지는 양상을 언어, 종교, 젠더, 계급 등의 층위에서 주제별로 점검했다. 이 과정에서 그린블랫(Stephen Greenblatt)을 비롯한 신역사주의와 문화유물론 비평가들이 시도한 ‘대안적 셰익스피어’ 연구는 셰익스피어의 역사성과 정치성을 규명하는 준거가 되었다. 

제3부(‘셰익스피어가 창조한 로마와 잉글랜드’)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잉글랜드 사극과 로마 비극 이면에 작동하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담론을 조명했다. 로마는 르네상스 잉글랜드가 꿈꾸던 위대한 제국의 원형이었다는 전제하에, 셰익스피어가 스토아철학의 ‘불변성’ 개념과 그것의 가부장적 덕목인 ‘남성성’의 재현을 통해 잉글랜드의 국가 정체성을 구성해가는 방식을 분석했다. 특히 ‘플루타르크 삼부작’인 『줄리어스 시저』, 『코리얼레이너스』, 『안토니와 클리오파트라』에서 로마 영웅들이 펼치는 남성성의 경연을 비교 분석하면서, 가부장적 제국주의를 떠받치는 ‘남성성’ 담론을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변주하고 전유하는지를 고찰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잉글랜드의 민족주의·제국주의 야망을 판타지 형식으로 구현한 후기 로맨스 『심벌린』을 로마와 잉글랜드의 유비 관계를 완결하는 작품으로 해석해봤다. 

제4부(‘셰익스피어의 인종적 타자와 식민담론’)에서는 셰익스피어가 인종주의나 식민주의와 교섭하는 방식을 살펴보기 위해 『베니스의 상인』,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오셀로』, 『안토니와 클리오파트라』, 『태풍』에 등장하는 인종적·문화적 타자들을 작품과 인물별로 분석했다. 이를테면, 백인 기독교 공동체 ‘내부의 타자’로 주류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유대인 부녀 샤일록과 제시카, 그 공동체에 침투하여 ‘잡혼’의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야만스러운 무어’ 애런과 ‘고귀한 무어’ 오셀로, 이국적 관능미와 풍요로움으로 제국의 질서를 교란하는 ‘동양 요부’ 클리오파트라, 식민권력의 ‘문명화’ 기획에 균열을 가하는 ‘비천한 미개인’ 캘리번 등을 둘러싼 억압과 저항 혹은 배제와 포섭의 드라마가 어떤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살펴봤다. 아울러 셰익스피어 극에서 인종 문제가 계급·젠더·섹슈얼리티·종교 등의 여타 심급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셰익스피어가 ‘유색인’을 향한 동시대 잉글랜드의 사회정서를 승인하는지 초극하는지, 허다한 비평가들이 강조해온 셰익스피어의 양가성이나 중립성이 인종적 타자의 재현에도 해당하는지도 함께 점검했다. 

 

                                                제국의 양면성을 풍자한 아틀라스 지도

결론인 제5부(‘정전의 조건과 제국의 전략’)에서는 본론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나누어 상술한 셰익스피어의 근대성과 식민성이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봤다. 그 연결고리는 셰익스피어의 서사 전략과 제국의 통치 전략 사이의 논리적·이념적 친연성이다. 선/악, 미/추의 이분법을 유보하고 ‘유색인’을 백인 무대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셰익스피어의 파격적인 재현 양식은 흔히 ‘톨레랑스’로 일컬어지는 제국의 통치술과 닮은꼴을 이룬다. 관용은 겉으로 차이의 포용과 포섭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차이를 차별의 명분으로 이용하는 ‘타자 관리’ 방식이다. 서구 근대성의 자기성찰인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주류사회의 상생 전략인 다문화주의에서도 주체가 타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면서 주도권은 내주지 않는다. 타자에게 ‘말하는 주체’가 되는 기회를 허용하고 불평불만을 발화하게 놔둠으로써 오히려 제국의 기반은 더욱 탄탄해진다. 타자가 주체에게 형태와 척도를 제공하는 상대방일지언정 주체의 자리에는 설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양가성에 담긴 양면성의 논리다. 동시에 그것은 관용을 내세운 제국이 타자를 포섭하고 통제하는 논리다. 

결론에서 마지막으로 논하는 문제는 ‘그들의 셰익스피어’를 ‘우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이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영국·미국·서구의 패권을 재생산하는 데 복무하는 ‘제국의 정전’이라면, 왜 우리는 당당하게 그를 거부하거나 폐기하지 못하는가? 산뜻한 답을 찾기 힘든 질문이지만, 그렇다고 마음 편히 건너뛸 수도 없다. 이것은 필자에게 가장 버거운 주제인바, 한때 아프리카 ‘변방’에서 영어 제국주의 논쟁을 펼쳤던 아체베(Chinua Achebe)와 응구기(Ngũgĩ wa Thiong’o)를 통해 답을 찾아보았다. 지금처럼 글로벌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계속되는 한, 그 체제 ‘바깥’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셰익스피어가 없어져도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마련인 상황에서, 셰익스피어 폐기론은 실효성 있는 대안이 아니다. 비서구 독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할 일은 셰익스피어(그리고 영문학)가 ‘문학의 이름으로’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지 않는지, 그의 신화적 권위로 인해 우리가 무방비로 ‘정신의 식민화’에 노출되지 않는지를 ‘셰익스피어를 통해’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다. 캘리반이 프로스페로의 언어를 ‘배워서 욕하는’ 전략을 고수하는 한, 제국의 담론 질서와 권력 기반은 공고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경원 연세대학교·영문학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영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셰익스피어, 세계희곡, 근대성, 탈식민주의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검은 역사 하얀 이론: 탈식민주의의 계보와 정체성』(2011), 『파농: 니그로, 탈식민화와 인간해방의 중심에 서다』(2015)가 있고, 역서로는 바트-무어 길버트의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1997)가 있다. 현재 고대 그리스의 인종주의와 인본주의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야만의 기원: 고대 그리스의 인종주의』(가제)를 집필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