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의 핵심 동력으로서의 인문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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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의 핵심 동력으로서의 인문콘텐츠
  • 김기덕 건국대·인문콘텐츠학
  • 승인 2021.10.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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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인문콘텐츠의 모색』 (김기덕 지음, 북코리아, 568쪽, 2021.08)

 

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위력을 떨치고 있다. 사실상 한류의 밑바탕에는 식민지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유일한 경제적 성공 국가라는 자부심, 선거에 의해 정권이 엎치락뒤치락 바뀐다는 민주주의의 놀라운 경험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역동적 변화 속에서 한국인은 새로운 디지털시대에 딱 들어맞는 한글이라는 문자를 가졌으며, 항상 멀티적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융합형 민족이었고, 머리가 좋아 머리 회전이 빠르고 직관이 강했던 인간형이면서도 놀이와 흥에 남다른 특성을 가졌다는 것이 21세기 한류의 성공으로 나타났다(1부, 한류를 낳은 한국의 전통적 문화유전자).

한류는 처음 드라마에서 시작하여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공연 등으로 확장되었다. 결국 한류의 장르는 전부 문화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문화콘텐츠라는 용어는 2000년 이후에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지금 현재 세상을 지배하는 기술적 용어인 인공지능, 로봇공학,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은 2000년 이후 본격화된 디지털 기술의 진화 과정에서 창출된 것이다. 실로 서기 2000년을 전후하여 본격화된 디지털 기술은 인류에게 새로운 밀레니움 시대에 걸맞은 신세계를 만들어주었다. 

물론 디지털 기술은 2000년 이전에 출현하였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하여 지금은 누구나 사용하는 WWW(World Wide Web)가 1991년에 만들어졌으나, 1993년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는 불과 130개밖에 되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의 만개(滿開)는 2000년 이후에 이루어졌다. 특히 스티브 잡스에 의해 모바일로 구현되는 내 손안의 인터넷은 또 다른 혁명적 변화였다. 2000년 이후 본격적인 디지털 기술의 확장은 다양한 ‘미디어(매체)’의 확장을 가져왔다. 카메라, 동영상, TV, PC, 인터넷, 모바일, SNS 그리고 장르적으로는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테마파크, 전시, 축제 등 전분야가 디지털 기술로 연동되어 결합하였으며 수시로 서로 넘나들게 되었다. 

문제는 디지털 혁명으로 인하여 이렇게 다양해진 미디어가 출현하여 서로 연동되어 있지만, 정작 그 속에 담기는 내용물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2000년대 디지털 혁명의 전개 속에서 곧바로 ‘콘텐츠(contents)’ 개념이 출현하였다. 지금은 상식화된 용어이지만 당시에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콘텐츠란 디지털 혁명으로 새롭게 창출된 다양한 매체에 들어가는 내용물인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물은 21세기 대중의 시대의 전개와 함께 무엇보다 문화적 내용물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러한 문화산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콘텐츠 중에서도 특히 문화콘텐츠가 새로운 디지털 매체에서 적극 요청되었다(1부, 문화콘텐츠의 등장과 인문학의 역할).

이러한 새로운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빨리 수용되었다. 2000년에 콘텐츠 논쟁과 문화콘텐츠 용어의 출현, 2001년 국가기관으로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이 있었으며, 2002년 인문콘텐츠학회가 결성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모든 것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전개된 한국인의 놀라운 순발력이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라는 용어도 기본적으로 한국적 용어이며, 문화콘텐츠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조어이다. 문화콘텐츠를 구현하는 기술을 모색한 CT(Culture Technology)도 한국에서 나온 용어이며, 인문콘텐츠라는 용어도 한국에서 출현한 것이다(1부, 문화·콘텐츠·인문학).

 

현재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오징어게임>. 이 속에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하여 다수의 한국 전통놀이가 차용되었다. 인문콘텐츠의 핵심은 적절한 창작소재 잡기와 그 소재가 갖는 현재적 콘셉트 설정이다. 

인문콘텐츠학회는 모든 문화콘텐츠의 핵심 동력은 인문학이라는 점을 공감한 학자들이 모여서 결성하였다. 어떠한 장르의 문화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시작은 기본적으로 인문학에서 출발한다. 흔히 문화콘텐츠 산업의 프로세스는 기획-제작-마케팅으로 요약된다. 기획은 제작을 위한 일종의 설계도이다. 기획단계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발상), 무엇을 갖고 이야기할 것인가(창작소재),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콘셉트),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스토리텔링)로 구성된다. 결국 기획단계의 시작은 적절한 창작 소재 잡기와 그 창작 소재가 갖는 현재적 콘셉트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창작 소재는 제한이 없지만, 대부분은 전통문화에서 차용된다. 그 때문에 디즈니에서는 외국의 전통 소재와 이야기를 사들이고 있는 것이며, 이미 디즈니 작품의 90% 이상은 다른 나라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이다. 1990년대부터 전 세계적 현상으로 나타난 ‘인문학의 위기’를 고민하던 일단의 인문학자들은 2000년대부터 새롭게 등장한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기획 단계의 인문학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전통 소재에 대한 전문적 이해와 그것이 갖는 현재적 콘셉트는 문학, 철학, 사학이라는 인문학이 담당해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인문학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공감대를 형성한 인문학자들이 모여 인문콘텐츠학회를 결성하였다(1부, 인문학과 문화콘텐츠).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일본 애니메이션산업의 성공은 요괴학(妖怪學)이라는 인문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2000년대 한국의 <문화원형 디지털화사업>도 전통소재의 인문학적 활용을 통해 문화산업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br>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일본 애니메이션산업의 성공은 요괴학(妖怪學)이라는 인문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2000년대 한국의 <문화원형 디지털화사업>도 전통소재의 인문학적 활용을 통해 문화산업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문화콘텐츠 정책에서 전통 소재를 중심으로 한 창작 소재의 중요성은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2002년부터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화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사업은 문화콘텐츠 산업의 창작 소재를 제공해주기 위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대상으로 원천 소스를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이 사업은 인문콘텐츠학회의 창립 배경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이 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의뢰를 받아 인문콘텐츠학회는 <문화원형 창작소재 개발 중·장기 로드맵 개발>을 정리하였다. 이 사업은 2002~2010년까지 200여 개의 테마가 발굴되었고 문화콘텐츠닷컴을 통해 서비스되었다. 인문학과 문화콘텐츠 산업을 결합한 이 사업을 통하여 인문학 기반의 문화콘텐츠학과 및 대학원 설립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사업 자체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 사업의 결과물이 오픈소스화 되지 못하고 상업화로 설계된 점, 사업의 진행이 인문학 전문가보다는 지나치게 산업체 위주로 전개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어떻게 보면 인문학과 문화콘텐츠 산업의 공감대 형성이 미흡한 상태에서 너무 앞서서 사업이 진행된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반성 위에서 필자는 ‘문화원형 오픈소스화를 위한 디지털콘텐츠화 사업’을 다시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1부, 4차 산업혁명시대 ‘문화원형 소재 오픈소스화를 위한 디지털콘텐츠화사업’의 필요성).

이처럼 문화콘텐츠 창출의 기본 원천은 인문학적 사고와 축적물이라는 것을 명확히 주장하고자 ‘인문콘텐츠’라는 개념을 새롭게 창안하고 출범한 학회가 인문콘텐츠학회이다. 인문콘텐츠란 또한 문화콘텐츠의 방향성을 담보한 개념이기도 하다. 모든 콘텐츠(내용물)에는 의식하든 안하든 지향성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오늘날 유행하는 문화콘텐츠도 원칙적으로 예전의 모든 의미 있는 내용물이 그러하듯이, 인류의 공동선(共同善)·인간화·인간해방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인문콘텐츠라는 용어는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인문콘텐츠는 인문학의 확장이요, 응용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세계는 가상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기술 발전까지 도달하였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의 확장 속에서 과연 인문콘텐츠의 효용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기술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기술은 항상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보편성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모든 기술은 사용하기 쉬워야 살아남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처음 출현하였을 때에 우리는 ‘콘텐츠’라는 용어에도 낯설었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들도 PC와 모바일을 쉽게 다룬다. 모든 기술은 결국 버튼만 눌러서 활용법만 알면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또 하나는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면 처음에는 기술 자체가 콘텐츠로 작용하지만, 잠시 시간이 지나면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즉 새로운 기술은 그 자체가 신기하여 마치 기술 구현 자체가 대단한 콘텐츠처럼 작용하지만, 진정한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과 같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출현은 항상 풍요로운 인문콘텐츠를 필요로 하여 왔다(1부, 4차 산업혁명시대 콘텐츠와 문화콘텐츠).

본 책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1부 인문콘텐츠의 개념과 방향성, 2부 인문콘텐츠 활용연구, 3부 인문콘텐츠 트렌드 탐색으로 나누어 지난 10여 년간 필자가 쓴 22편의 논문을 모은 것이다. 이 책은 인문콘텐츠라는 주제로 새롭게 작성된 저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일부 반복적 서술과 일관된 체계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하나의 학문은 연구방법론과 수업론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바탕의 문화콘텐츠, 즉 인문콘텐츠학이 앞으로 본 책의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켜 치밀한 학문적 정립을 이룩할 것을 희망한다. 

인문콘텐츠 연구방법론의 과제는 인문학적 소재를 발굴하여 문화콘텐츠분야에 접목시키는 기획단계의 고유한 방법론의 정립이다. 인문콘텐츠 수업론의 과제는 갓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어떻게 인문학 바탕의 문화콘텐츠 기획을 수행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필자와 같은 인문콘텐츠 1세대는 전부 오랜 세월을 인문학을 전공한 자들이었다.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은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이것을 단기간에 이해시키며, 더 나아가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입각한 다양한 매체와 결합시키는 능력을 배양시킬 것인가? 어떻게 보면 이러한 목표는 불가능해보이지만, 시각을 달리 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처럼 인문콘텐츠 1세대는 힘들고 어렵게 디지털기술을 이해하는 디지털 이주민이라면, 지금의 학생들은 출생부터 디지털기술의 세례를 받은 디지털 원어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인문학의 무게만을 생각하며 위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문학과 디지털 기술의 이해라는 총량에서는 인문콘텐츠 1세대와 현재의 신세대는 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긍정적인 관점에서 압축 인문학을 통한 수업론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인문콘텐츠 분야는 연구방법론 못지않게 적절한 수업론의 문제를 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3부, 인문학 기반의 ‘문화콘텐츠학’ 수업론 정립을 위한 시론).  


김기덕 건국대·인문콘텐츠학

건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상역사학’을 제창했으며, ‘인문콘텐츠’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인문콘텐츠학회’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인문콘텐츠학회 회장, 전국대학문화콘텐츠학과협의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고려시대 봉작제 연구』, 『한국인의 역사의식』(공편), 『우리 인문학과 영상』(책임편집), 『문화콘텐츠입문』(공저), 『영상역사학』, 『인문학과 문화콘텐츠』(공저), 『한국전통문화와 문화콘텐츠』, 『인문콘텐츠의 사회적 공헌』(공저), 『한국문화와 콘텐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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