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가 선택일 수 있는가!”…전 세계 낙태권 투쟁의 역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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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가 선택일 수 있는가!”…전 세계 낙태권 투쟁의 역사와 미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0.12 0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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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몸, 나의 선택: 낙태권을 위한 투쟁 | 로빈 스티븐슨 지음 | 박윤정 옮김 | 율리시즈 | 188쪽

 

낙태는 기본권이며 더없이 중요한 문제다. 아기를 낳을지 말지를 결정할 힘을 갖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대한 결정은 나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안전하게 합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사람들은 열심히 싸워왔다. 이에 대한 반대는 격렬하고 폭력적이었으며, 승리는 어렵게 이루어졌다. 그 지난했던 오랜 싸움은, 이제 용기 있고 창의적이며 열정적인 세대가 이어받고 있다. 이 책은 그 투쟁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렇게 다져진 기반을 바탕으로 펼쳐질 용감한 미래를 응원한다.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존중하는 나라는 없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세계 어디에서든, 낙태권 반대자들은 기를 쓰고 입법을 결사반대한다. 하지만 불과 200여 년 전만 해도 세상은 낙태에 관대하거나 무심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식민화하기 전까지 아프리카에서 낙태는 개인이 결정할 사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미합중국 헌법을 채택할 때만 해도 미국은 낙태와 피임을 허용했다.

낙태를 범죄로 여기고 국가가 개입해 처벌해야 한다는 사고는 인종차별주의와 얽혀 있다. 백인이 계속 다수로 존재하기를 바랐던 입법자들은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는 동시에 인종차별적인 이민 정책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자격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한편, 남성이 지배적이던 의료계는 여성 의사나 산파들과의 경쟁이 못마땅해 도덕적인 문제와 위험성을 앞세워 법으로 금지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리하여 1910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낙태를 범죄로 못박는 법안이 통과된다. 낙태뿐만 아니라 피임약의 판매와 배포, 광고도 마찬가지로 위법행위로 간주됐다.

이 책은 낙태죄의 태동에서부터 이후 여성들이 겪게 된 엄청난 고통과 피해, 그로 인한 저항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훑는다. 불법 낙태의 시대에 감내해야 했던 끔찍한 상황을 지역별로 살펴보며,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 각각 다른 방식으로 가해진 야만적 행태를 사료와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낙태는 나이와 종교, 국적, 인종, 신념과 상관없이 일어난다. 원치 않는 임신에 직면한 여성들은 아무리 위험해도 결국에는 임신을 끝낼 방법을 찾아냈다. 억압이 있으면 저항이 생겨난다. 낙태가 불법이거나 금지된 곳에서는 당사자와 조력자들의 연대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성직자와 페미니스트 단체, 의료인들이 죽음의 위협도 불사해가며 위험에 빠진 여성들을 도왔다. 저자는 특히 한 장을 할애해 미국과 캐나다의 투쟁을 집중 조명한다. 1960~1970년대에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 그 한복판에 섰던 선구적 활동가들의 활약과 희생 덕분에 낙태권은 비로소 국가적 의제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안전한 낙태를 위한 투쟁은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많은 선진국에서도 치열하고 강력하게 전개됐다. 낙태라는 의료행위에 접근을 막는 법적 규제나 장벽들은 전 지구적 불평등을 양산한다. 안전하고 시의적절하게 임신중단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낙태 합법화는 사회 정의의 문제다. 낙태권에는 경계가 있을 수 없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시작하지만, 여성의 몸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담론에 정작 여성의 몸은 빠져 있다. 이 책이 전 세계 전 연령층의 여성에게서 실제 경험한 이야기를 채집하고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는 점은 그 부분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낙태를 둘러싼 적나라한 현실과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떤 논쟁과 정책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낙태 경험담을 공개하고 공유하기를 지지하는 웹사이트 ‘우리는 증언한다’를 만든 르네 브레이시 셔먼은 경험자들의 목소리를 재생산권 논의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최선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고 용기를 낸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솔직하고 당당한 목소리가 커질수록, 여성의 삶의 파괴하는 오명과 거짓말, 수치심도 잦아들 것이다.

이 책에는 경험자들의 목소리 외에도, 현재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젊은 활동가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아일랜드, 터키, 마다가스카르, 베네수엘라, 미국 등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이들은 십 대부터 관심을 갖고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작은 행동 하나에서 시작된 이들의 행보는 이제 큰 흐름을 주도하는 당당한 자리를 차지해 나가고 있다.

2021년 1월 1일자로 대한민국에서 형법상 낙태죄는 사라졌다. 이제 누구나 안전한 방법으로 의료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낙태가 ‘죄’가 아닌 세상에서 우리는 당연히 ‘재생산권’을 논의해야 하는 시점에 도착했다. 

낙태권 운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동안 치열한 투쟁이 전개됐고,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투쟁으로 다져진 기반을 지킬 책임이 있다. 뒤로 돌아갈 수는 없다. 기본권리가 위협받을 때는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그러한 싸움의 역사와 미래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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