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의 유용한 도구, 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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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의 유용한 도구, 정신분석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0.1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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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비평과 정신분석 | 김소연 지음 | 아모르문디 | 160쪽

 

대중문화를 정신분석적으로 탐구하려는 학자들은 대중문화가 의식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방식보다는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한다. 그쪽이 대중들의 근원적인 욕망과 사회 변화의 방향을 더 잘 알려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대중문화인 영화 역시 정신분석의 틀로 바라보면 한층 깊은 이해와 분석이 가능하다.

 

이 책은 영화 연구자이자 평론가로서 정신분석학을 매개로 영화를 분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저자가, 정신분석적인 영화비평에 입문하는 이들을 위해 펴낸 길잡이 책이다. 저자는 정신분석적인 영화비평의 개념과 역사를 소개하고 대표적인 분석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이 어떠한 방식으로 영화비평의 유용한 도구로 기능하는지 알려준다.

먼저 1장에서는 대중문화로서 영화의 영항력이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차원에서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는지 사례를 들어 보여주면서, 정신분석을 대중문화 분석의 방법론으로서 의미 있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2장에서는 정신분석의 선구자인 프로이트가 이미지를 중요한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설명하면서, 영화가 없던 시대에 시각예술 작품에 대해 어떻게 정신분석이 이루어졌는지를 다 빈치의 회화와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예로 삼아 제시한다.

3장에서는 프로이트의 전기적 접근을 뛰어넘어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본격적으로 발전한 정신분석적 영화이론의 대표적인 주장들을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영화이론들은 많은 부분 라캉 이론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핵심은 영화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관객의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의 수준에서도 작동하며, 그 과정에서 영화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므로 주류 상업영화와는 다른 대항영화를 통해 형식적 대안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영화와 관객의 주체성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보드리, 외과수술 용어인 ‘봉합’을 정신분석적 맥락에서 이론화한 밀레르, 밀레르의 봉합 개념을 영화 편집에 적용한 우다르 등을 소개하고, 진보적인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과 월른의 대항영화론, 그리고 존스턴과 멀비의 주도 아래 정신분석 개념을 도입했던 시네-페미니즘의 핵심적 주장을 들여다본다.

이어지는 4장에서는 침체기였던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정신분석적 영화비평을 다루었는데, 무엇보다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슬라보예 지젝의 이론을 살펴보았다. 지젝은 세계 인문학계에 ‘후기 라캉’을 새롭게 각인시키면서 정신분석학이 정치, 경제, 문화 분석의 방법론으로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유의미한 학문인지를 알려준 철학자이다. 저자는 회화 이미지를 비평하는 데 쓰인 라캉의 시각이론을 영화에 적용하면서 발전시킨 지젝의 관점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지젝이 〈사이코〉 등 히치콕의 영화들을 어떻게 분석했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마지막 5장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 영화를 분석하여 한국인들의 무의식을 좌우하는 욕망의 실재에 접근해보았다. 〈국제시장〉과, 2000년대에 등장한 분단영화들의 서사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국인의 무의식이 어떤 방식으로 영화에 투영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당신이 애써 추구하는 현실은 당신의 환상의 결정체이며 그 환상은 언제든 실재의 침입과 함께 무너질 수 있다. 영화는 언제나 동시대 사람들이 공유하는 환상 혹은 믿음의 기반을 드러내는 바, 영화비평은 그 기반을 침식시킬 실금들을 찾아내 그 모양과 깊이와 크기를 따지고 그것이 왜 생겼으며 어느 방향으로 갈라져 나갈 것이며 어떤 덧방으로 가려질 것인지, 이 모든 난리법석이 우리에게 어떤 (무)의식적 효과를 발휘할지를 알려주는 작업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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