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사람이 있는’ 미래가 필요하다…‘삶을 지키는 과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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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사람이 있는’ 미래가 필요하다…‘삶을 지키는 과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0.12 0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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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의 자리 & 사람의 자리 | 전치형 저 | 이음 | 각 244쪽, 280쪽

 

『로봇의 자리』는 미래 테크놀로지와 관련된 저자의 에세이 모음이다.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페이스앱 등 최근 이슈가 되었던 테크놀로지 관련 주제들을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한 미래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로봇의 자리』는 미래에 대한 극단적인 전망이 난무하는 가운데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길들여’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고민한다.

미래 테크놀로지가 그리는 미래는 산뜻하다. 우리는 우리보다 뛰어나고 오류 없는 테크놀로지를 기대하며 사람보다 공정한 인공지능 판사,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보다 안전한 자율주행차, 사람 없이도 잘 돌아가는 시스템을 꿈꾼다. 수많은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더 나아가 대체하기까지 할 완벽한 해결책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언젠가 완벽한 기계장치가 나타나 말 그대로 ‘데우스-엑스 마키나’처럼, 현재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말끔하게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정말 인간은 미래의 걸림돌일 뿐일까?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모든 테크놀로지 뒤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우리가 테크놀로지의 이용자이거나 피해자이기 이전에 ‘책임자’임을 상기시킨다. 로봇은 미래에서 온 이방인이 아니라 현재의 인간이 ‘만들어가는’ 존재이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로봇에게 윤리를 묻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로봇, 혹은 로봇으로 대표되는 미래 테크놀로지의 알고리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연구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사용하고 규제할 것인지 의논하는 것이다.

테크놀로지 뒤의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고 할 때 ‘사람’이란 고급 테크놀로지를 개발하는 개발자나 기술자 혹은 그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테크놀로지가 이 사회를 유지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돕고 있다. 이른바 ‘메인테이너(maintainer)’들이다. 메인테이너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술을 운용하고 관리하고 보수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메인테이너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정도로 그 인식이 열악하다. 일하던 중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한 김용균 씨와 이민호 씨의 사례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장에서 기계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이 안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성찰하지 않고서 4차 산업혁명과 미래를 말하는 일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저자는 지적한다.

 

『사람의 자리』는 과학이 수많은 재난 속에서 우리의 삶을 지키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묻는다. 이를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사회가 과학기술을 통해 무엇을 “알아내고 마련하려” 했는지 관찰한 기록이다. 특히 2019년에서 2021년이 되는 동안 코로나19라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지켜본 팬데믹 시대 역시 생생하게 담겨 있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과학을 향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과학 열풍’ 밑바탕에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서 과학이 그나마 믿을 만한 정보이며, 우리를 지켜줄 보루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과학을 공부한다면, 과학이 발전한다면 우리는 더 안전해질까?

저자는 K-방역에 대한 칭찬을 뒤로하고 해결되지 않는, 또는 피할 수 있었던 ‘K-재난’에 눈길을 준다. 이를테면 “한국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자를 빠르게 찾아내는 나라이면서 약 20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망한 사람이 몇 명인지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다. 또한 “2015년 메르스 사태의 교훈을 코로나19 대응에 활용할 줄 아는 나라이지만,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씨가 기계에 끼어 사망한 일을 두고 특별조사위를 만들어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다짐했음에도 2020년 9월 같은 곳에서 또 사람이 죽게 만드는” 나라이다.

K-방역을 가능하게 하는 과학과 K-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인 과학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의 삶을 지키는 과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과학과 사회가 맞닿는 다양한 접점에 다가선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과학은 통념처럼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과학은 “한 사회의 앎의 의지”고, “어떤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이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공개적으로, 물질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과학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민주주의의 위기가 곧 과학의 위기이기도 한 이유이다. 우리의 과학이 막을 수 있는 재난은 막고, 어쩔 수 없는 재난 속에서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여부도 여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그러니 과학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단독으로 우뚝 서 언제 어디서고 우리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삶을 지키는 과학’이란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노벨상을 받아오는 추상적인 과학이 아니라 얼굴이 있고 이름이 있으며 사회 구석구석과 맞닿아 있는 과학이다. 그런 과학은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깊이 관여한다.

저자는 크고 작은 재난과 사회적 참사가 벌어지는 현실에 절망하기보다 ‘삶을 지키는 과학’이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야기하기를 택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창립, 재난 현장에서 각자의 소임을 다 한 끝에 산불 현장에서 모두를 구할 수 있었던 또 다른 4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친 끝에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던 방역체계… 어려운 가운데서도 바뀌어 가는 것들이 있다. 반성하고 바로 잡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꿈꾸고 기대하는 ‘삶을 지키는 과학’이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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