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인가? “잘 알지만, 사실 잘 모르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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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 “잘 알지만, 사실 잘 모르는 한국인”
  • 이명진 고려대·사회학
  • 승인 2021.10.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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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한국인의 사회 정체성』 (이명진 지음,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76쪽, 2021.08)

 

이 책은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종합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최근에 많은 한국인의 심정을 비유하자면 아마도 마라톤 평원에서 42.195km를 달려온 아테네 전사의 심정이 아닐까 싶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상황에서 앞뒤를 살필 겨를 없이 달려왔고, 이제는 지쳤지만, 주위를 둘러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일제 침략, 남북분단, 6·25전쟁, 경제발전, 민주화 같은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이 가장 절실한 문제였다. 제국주의 침략과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했고, 경제적 번영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제한받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의 경제적 급성장에 따라 한국인의 물질적 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 중 하나였던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발전을 통하여 2017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할 때 세계에서 12번째, 1인당 국민총소득(GNI per capita)도 3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많은 사람에게 자고 일어나면 더 나아지는 삶을 제공해 주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쳐서 1996년 OECD 가입 무렵에는 곧 우리가 선진국의 관문을 곧 통과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기회와 희망을 주었던 사회가 1997년 IMF를 기점으로 급격히 변화하였다. 많은 사람에게 ‘헬조선’으로 불릴 정도로 절망을 안겨주는 사회로 변화하였다. 

정치 부문에서 민주주의의 발전도 경이롭다. 냉전 시대와 남북 대치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제도적인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체계화하였다. 1987년 대통령제 직선제 개헌 이후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하드웨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비춰져 왔다. 적어도 민주주의 제도와 체제의 형식은 유지되는 것으로 믿어왔다. 문제가 있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되고 있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일련의 사태와 시위 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러한 낙관적인 상황이 계속 지속될지는 미지수이다. 마치 1997년 IMF 경제 위기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경제 현실처럼, 2016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정치 현실이 그 민낯을 드러내게 되었다.

사회 부문의 변화도 특별하다. 전통적인 강한 가족주의와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수직적인 농업사회에서 대부분 사람이 대도시에 살면서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더욱 수평적인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농업사회, 산업사회, 정보사회로의 변화가 한 세대 혹은 두 세대 만에 이루어졌다. 인구구조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높은 출산율로 인한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강제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폈지만,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의 출산율로 인해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사회로 변하였다. 급격한 고령화는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 추세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단일민족이라는 혈통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인으로서의 전통적인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이러한 ‘압축 성장(compressed development)’ 혹은 ‘응축 성장(condensed development)’ 과정을 통해서 한국인들은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하고, 서구로부터 제도와 함께 다양한 가치관이 유입되었다. 이러한 가치관과 문화적인 혼란은 많은 문제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 급속한 사회 변화는 개인의 가치와 행동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으면서 정체성의 전환을 겪고 있다. 과거의 전통적 가치관과 사회적 행위 양식이 실행 의미를 상실하고, 사회적 역할과 행동 방식이 재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양적 성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과거를 돌이켜 보고,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현재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2020년 초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19라는 전 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에 따라 이런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부문에서 전통적인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경제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지만 주식 시장이 활황을 보이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와 공중보건의 필요성이 충돌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사실은 물리적 거리) 두기가 중요한 삶의 원칙이 됨에 따라 개인 사이에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사회 정체성 기준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공동체적 정체성과 이에 기반을 둔 사회적 유대의 의미를 감소시키며, 사회적 공감대의 약화를 가져온다. 이는 또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며,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비효율성을 초래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치적 대립, 노사 갈등, 지역 갈등 같은 많은 사회적 문제들도 사실 정체성 혼란의 관점에서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이 책은 사회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한국 사회와 그 사회에서 살아오고 있는 한국인의 특징을 포착하고자 하였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사회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한 사람의 평가가 단순하고 일시적인 개인의 느낌이나 편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즉 개인이 특정한 대상에 관해 갖는 느낌도 다른 사람과의 의견교환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계속해서 조정되는 일종의 체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사회에서 일반적인 개인이 갖는 사회 정체성이 그 사회 자체 혹은 그 사회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사회 정체성 이론에 의하면 개인이나 한 사회의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진 사회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사회나 혹은 문화에 대한 논의처럼 다소 추상적이고 막연한 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체성을 측정함으로써 한 사회나 그 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여러 사회나 문화를 객관적으로 비교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이 책에는 사회 정체성에 기반한 분석만 포함된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부분에서 변화하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 특성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1부에서는 사회 정체성 개념에 대한 소개와 몇 개 분야에 대한 분석 결과를 소개하였다. 2부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대표적인 한국인의 가치와 태도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3부에서는 다양한 가치와 태도의 변화는 어떠한 사회적 문제와 과제를 만들고 있는가를 논의하였다. 마지막으로 4부에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미래에 사회통합을 지향하기 위해서 구체적 어떠한 방안이 있는가를 검토하였다. 특히 결론 부분에서는 사회 신뢰와 사회 통합을 높이기 위한 요소를 강조하였다. 첫 번째 요소는 기회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의 증가 추세를 조정하기 어렵다면 한국 사회의 장래는 그리 밝지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장 주목할 분야는 교육, 노동, 복지이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분야의 연계가 단선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방안은 이러한 교육, 노동, 복지 부문을 통합하는 방안이다. 즉 노동시장에서 고용의 유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퇴출과 재진입의 유연화를 동시에 가능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것이 가능해지려면 무엇보다도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연공서열제의 원칙을 허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존 조직에 있는 근로자가 지나치게 이익이나 권력을 가질 수 없도록 조직 원리를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러 부문에서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와 태도를 볼 때, 이러한 원리가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근로자의 노동시장 재진입은 교육과 복지를 통해 이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복지가 최소한 수준의 도움을 제공하는 것에서 머물지 말고, 재교육을 통해 근로자를 노동시장에 투입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공공교육 시설과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면 시설과 인력에 대한 재구조화도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 요소는 소통과 협업이다. 협력은 일종의 행위적인 측면으로 개인이 만나서 연계를 하여 성과와 결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은 성공적인 협업을 통해 협업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이들 사이에 신뢰가 증가하고 소통을 확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 융합시대에 협업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전체적인 교육체계에서 협업의 가치를 보다 강조할 필요가 있다. 최근 추세는 경쟁의 확산과 세계화로 인해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외부와의 협업과 협력이 더 필요한 추세이다. 비교과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점이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 교과 내에서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성취가 우선이 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교육 방향은 미디어 융합 기술과 결합하여 더욱 내집단의 강한 응집력과 배타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인터넷은 공론장으로서 잠재력이 활성화되기보다는 사회갈등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중요한 이유는 개인적 경쟁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 환경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교육 현장에서 협업을 통한 성취가 더욱더 강조된다면 자연스럽게 개인 행위에서 협업의 가치가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구성원들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과 사회적 자본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요소는 사회에서 보상 원리의 재구성이다. 다양한 이유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승자독식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사회 여러 부문에서 최상위에 속한 사람에게만 대부분의 사회보상을 보장하는 경향이 크다. 특정한 기준을 세우고 여기에 포함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 차이와 차별이 너무 크다. 이러한 경향이 결국 기득권이나 텃세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게 선천적인 능력이든 후천적인 노력이든 심지어는 타고난 운이든 그 원인과 상관없다. 물론 이러한 보상의 극대화는 경쟁을 강화하고 결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이 개인의 이익의 극대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보상의 과정과 결과의 불공정성에 대한 불만을 느끼고 있다. 소수의 사회 구성원만이 만족할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경쟁을 통한 결과의 극대화나 효율성의 증가를 현실적으로 무시하기 어렵다. 다만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물질적인 혹은 비물질적인 사회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4위나 5위도 심지어는 아래 등수의 성취에 대해서 낮은 수준이지만, 이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러한 원리를 여러 부문에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이명진 고려대·사회학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대학교(University of Iowa)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육군사관학교와 국민대학교 교수, 《한국사회학》 편집위원장, 《조사연구》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관심 분야는 사회계층론, 정보사회학, 양적방법론 등이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 2030 신세대의 의식과 사회정체성》, 《사회정체성 평가차원에 대한 국제비교조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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