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포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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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포 안티고네
  •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 승인 2021.10.1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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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구 년 전쯤 터키 국립극장이 내한하여 공연한 『안티고네』를 본 적이 있다. 복제된 이미지가 세상을 잠식하는 시기에 연극이 주는 아우라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더불어 고전작품을 통하여 내적 대화를 나누는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체감한, 무척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 나의 인생장면이다. 그때 안티고네라는 매력적인 인물에 푹 빠져 그녀와 관련된 자료들이란 자료들을 죄다 끌어 모으기도 했더랬다. 훗날, 유진 오닐이 엘렉트라라는 인물로 재창조하기도 했던 안티고네, 그녀는 아직도 내 사랑.

   『안티고네』는 현대에 자주 상연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내용이 정치철학적이어서 그런 듯하다. 신의 법과 인간의 법, 국가와 가족, 정치와 도덕과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들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이 주요 요인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현실원칙을 준수하는 통치자와 그에 맞서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뚜렷한 세계관의 대립이 오늘날의 현실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서양 정치철학사 수업에서 필독서로도 꼽히는 『안티고네』는 이렇듯 인간적인 한계를 고뇌하는 문제와 함께 인간 사회에서 갈등을 초래하는 근원적인 질문들을 다루고 있어, 무조건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
   『안티고네』는 앞서 이야기한 『오이디푸스 왕』의 뒷이야기이다.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사이에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가 있기는 하다. 제작 연도는 『안티고네』가 가장 앞서고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가 소포클레스 비극의 마지막 작품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상으로는 『오이디푸스 왕』이 1부,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가 2부, 『안티고네』가 마지막 3부처럼 이어진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시작된 오이디푸스 집안의 이야기는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를 거쳐 『안티고네』에 이르러 완결되는 것이다. 마치 기획된 3부작처럼 연결되는 작품들은 소포클레스가 남긴 걸작들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삶의 진실에 스스로 눈을 멀게 한 오이디푸스가 크레온에게 어린 두 딸을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고 나라 밖으로 길을 떠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어지는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는 딸 안티고네와 함께 방랑길에 오른 오이디푸스와, 그가 떠난 집안에서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권력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반목과 질시를 주축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이디푸스는 아들들이 일삼는 만행을 비난하면서 그들과의 화해를 거부하고,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의 도움으로 평안을 회복한 후 죽음을 맞이하고 신의 반열에 오른다. 오이디푸스의 죽음으로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는 종결되지만, 오이디푸스가 죽고 난 후에도 『안티고네』에서 오이디푸스의 집안 이야기는 계속된다.

 

스스로 눈을 빼내고 왕위에서 물러나려는 오이디푸스와 그를 끌어안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안티고네, 장 안투안 테오드르 지루스트 作,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1788.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찌르고 나라를 떠난 다음에 그의 두 아들이 일 년씩 번갈아 가며 나라를 다스리기로 한다. 그런데 에테오클레스가 약속을 어기고 왕권을 내놓지 않자, 폴뤼네이케스가 이웃 나라 아르고스 동맹국들과 연합해 테바이로 쳐들어왔고, 결국 그 전쟁에서 둘 다 죽고 만다. 이후 그들의 외삼촌 크레온이 왕위에 오르고, 그가 나라의 질서를 위해서 엄중한 포고를 내리는 데서 비극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에테오클레스는 나라를 지키다 죽었으니 장사를 지내 찬양하고, 폴뤼네이케스는 외국 군대를 이끌고 조국으로 쳐들어온 반역자이니 장사를 지내지 말고 주검을 그냥 방치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죽은 폴뤼네이케스의 누이인 안티고네는 매장으로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그 영혼이 구천을 떠돌아 저승으로 가지 못한다는 믿음 때문에 그 명을 어기고 오빠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른다. 그리스인들에게 대지에 묻히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만큼이나 두려운 일이고, 망자의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방치하는 행위는 신의 법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 일 때문에 안티고네가 죽게 되고, 크레온도 나락에 빠지는 것이 『안티고네』의 파국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앞의 『오이디푸스 왕』처럼 일곱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구성을 헤아리면서 읽는 것도 극적 재미를 더하겠다.

 

프랑스 화가 세바스티앵 노르블랭의 1825년 작 ‘폴리네이케스에게 제주(祭酒)를 바치는 안티고네’. 프랑스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소장.

   폴뤼네이케스의 매장을 둘러싸고 벌이는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 곧 신의 법인 불문법을 크레온 왕의 명령보다 우위에 두는 안티고네와, 이보다는 국법인 실정법을 고수하는 크레온의 갈등이 『안티고네』의 비극을 이끌어가는 근원적인 동력이다. “인간들을 다스리는 신의 정의는 당신의 명령이나 법과는 무관합니다. 저는 인간인 당신의 명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에 우선할 만큼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의 법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그 어느 누구도 말할 순 없지만, 신의 불문율은 과거나 현재의 것이 아니라 항상 살아 숨 쉬는 영원한 법이지 않습니까? 인간의 뜻을 따르기 위해 신의 불문율을 범할 수는 없습니다.” 안티고네가 크레온에게 맞서는 대사이다. 안티고네가 보이는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실이 지닌 위대성을 부각시키는 투영한 목소리.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인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인물 됨됨이를 비교하며 읽는 것도 극의 흐름 속을 내밀하게 유영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안티고네』를 무척 좋아했다는 헤겔은 두 인물 모두가 나름대로 옳은 선택을 한 것으로 여겼다고 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직관력으로 그 어떤 고난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는 안티고네라는 인물이 지닌 우뚝함이다. 그녀는 객관적인 이성으로 행동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진리를 만나는 직관적인 감각으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의지와 자기 확신이 그녀를 빛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직관적인 감각이 우세한 그녀에게 자기 행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이기는 한다. 그래서 그녀의 약혼자 하이몬이라는 인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작품에서 하이몬이 안티고네가 직관에 따라 실천한 것을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므로. 또 마음의 눈으로 진리를 꿰뚫는 테이레시아스도 반드시 등장해야 할 인물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에서 테이레시아스가 안티고네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종교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므로. 그러니까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크레온에 맞서기 위해 안티고네는 안티고네와 하이몬과 테이레시아스를 합친 또 다른 안티고네로 화한 것은 아니었을까.

   안티고네의 이러한 특성은 크레온과 비교해야만 두드러진다. 이 작품의 제목이 ‘안티고네’여서 안티고네가 주인공 같지만 사실상 이 작품은 ‘두 주인공 극’으로 보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무대에 나와 있는 시간이라든지, 대사의 분량으로 보면 오히려 크레온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주인공이 사실상 둘이라는 사실에서 많은 독자들이 오해하게 되는 계기가 발생하는데,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비극의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비극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하마르티아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란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때 그 원인을 하마르티아로 꼽는다. 하마르티아(hamartia)는 비극적인 흠 또는 실책, 나아가 죄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러한 하마르티아 때문에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조금 전에 말한 ‘오해’란 바로 하마르티아를 안티고네에게서 찾는 일에서 빚어진다. 왜냐하면 책 제목이 ‘안티고네’이므로 그녀가 주인공이라 여겨서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극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안티고네보다 또 다른 주인공인 크레온이 훨씬 더 비극적인 인물이다. 행복과 불행의 거리를 가늠하면 안티고네보다 크레온이 훨씬 더 크다. 크레온이 지닌 남성 중심의 국가주의적 합리성은 안티고네로 발현된 여성의 직관과 확신, 하이몬으로 드러난 자식의 부모에 대한 합리적인 반박, 테이레시아스로 규명된 예언자의 권위와 깊은 지혜 들에게 공격을 받고 결국은 하염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안티고네와 비교해 볼 때 크레온이 지닌 문제점은 그가 지나치게 합리성을 추구했다는 사실에 놓인다. 물론 크레온도 왕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려 했기에, 원칙을 중시했다는 사실이 설득력을 지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융통성 없이 편협하게 해석하는 사람이고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신들을 향한 경건함도, 국가 안보에 대한 관심도, 준법의 기준도 모두 너무 편협하게 설정한 것이 그가 범한 하마르티아다. 무엇보다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이 부재한 탓이다. 그래서 신들이 정한 불문율의 영역까지 서슴없이 침범한 것이다. 급기야는 “제우스라 해도 나를 막지 못한다.”고 말하기까지 하는데, 이는 테바이 전쟁에서 이와 유사한 선언을 하다 벼락에 맞아 죽은, 단테의 『신곡』에도 나오는 카파네우스를 연상시킨다. 이렇듯 크레온은 정치적이고 윤리적이며 심지어는 종교적인 면에서까지 한도를 넘어서고 만다. 그리스인들이 가장 경계하던 과오, 곧 선을 넘는 과오를 크레온이 범하고 그 결과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이다.

 

                        기세페 디오티,  크레온의 명령으로 죽음을 맞는 안티고네, 1845

   이 작품에서, 아니 비극 작품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코러스가 나오는데, 이는 바로 「인간 찬양의 합창」이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다 하여도/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네.”로 시작하는, 332행 부분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코러스 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안티고네』가 환기하는 삶의 비극적인 묘미를 훨씬 더 잘 느낄 수 있겠다.
   그리스 비극의 원칙을 잘 드러내는 말 가운데 “행한 자는 당한다.”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한 행동 그대로 자신이 당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크레온에게 여과 없이 적용된다. 죽은 폴뤼네이케스를 저승으로 보내 주지 않고, 산 사람인 안티고네를 동굴 무덤에 가두려 했던, 곧 중음신(中陰身)으로 내몰았던 그가 결말에 가면 스스로 중음신으로 몰락하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가족의 권리를 무시하고 국가 또는 도시의 규칙만을 중시하던 그가 결국에는 가족을 모두 잃고 국가마저 잃는,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파멸하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안티고네가 지닌 영웅적인 기질을 강조해야겠다. 여성을 거의 인간 취급하지 않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웅적 기질을 부각시킨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당대 현실의 권력이자 질서였던 크레온과 대척점에 서 있어 더욱 눈부신 안티고네! 괴테도 지적했듯이 안티고네가 자기 행동을 변호하는 장면과 자신의 때 이른 죽음을 슬퍼하는 대목이 사뭇 이상하게 여겨지기는 하지만, 이 모든 행동들, 곧 변론도, 애곡도 스스로 해야만 하는 안티고네는 고난과 역경에도 우뚝 선, 그야말로 찬란하고 의연한 주체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안티고네』는 우리에게 삶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삶을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법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또 국가 안보와 양심의 문제나 범법자 처벌의 한계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아주 오래 전 소포클레스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찬탄할 만한 인물들을 통해 탄탄한 구조와 치밀한 세부를 갖춘 작품으로 우리에게 남겼다. 마지막 코러스, “지혜야말로 으뜸가는 행복이라네.”가 계속 쟁쟁거린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결코 가볍지 않아서 쉬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읽게 되면, 한 번 두 번, 거듭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하여 삶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예사롭지 않은 감동을 받는다. 고통이나 절망 없이 현명해지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은 인간이 지닌 한계일까. 그러나 고통이나 절망을 겪은 후에라도 지혜를 얻는다면, 그 또한 선물이 아닐까. 반목과 질시가 끊이지 않는 오늘날에도, 소포클레스가 이천 오백여 년 전에 쓴 『안티고네』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를 다시 한 번 되새길만한 근거가 되므로, 고전이 지닌 어마어마한 힘이란, 정말!
   그리하여 오늘도, 레퀴엠 포 안티고네!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시인·문학비평가.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현대시)을 전공하였다. 1990년 『문학예술』 제1회 신인상 시 부문 당선, 1991년 『심상』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익숙한 소리』(시집), 『현대시와 문화의식』, 『한국전쟁과 시』 등이 있으며, 그 외 공저로 『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한국 서술시의 시학』, 『한국 현대문학의 성과 매춘』, 『몸의 역사와 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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