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을 건설한 유목민, 그들 술탄의 사랑노래 ‘가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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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을 건설한 유목민, 그들 술탄의 사랑노래 ‘가잘’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10.1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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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67)_ 오스만 제국을 건설한 유목민, 그들 술탄의 사랑노래 ‘가잘’

 

중동 남자들의 구애 문화가 유별나다는 얘기를 들은 건 꽤 오래 전 레바논 여행길에서였다. 현지에서 유학하는 우리나라 여학생 가이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레바논 남자들의 애정 표현을 들으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여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랑의 수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근래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무대로 한 터키 드라마를 보며 그를 십분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이 지닌 마력을 재삼 생각하게 되었다.

 

(좌) 록셀라나가 1540년 폴란드 지그문트 2세에게 보낸 편지, (우) 고향인 우크라이나 로하틴에 세워진 록살라나 상

오스만 제국의 황제 술레이만 술탄(1494~1566)은 현재의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루테니아 출신의 노예로 하렘 후궁이었던 여자와 결혼하고(1533년) 여섯 명(5남 1녀)이나 되는 자식을 낳았다. 오스만 제국 최초의 황후 본명은 ‘알렉산드라 리소프스카(Aleksandra Lisowska, 1500/1502~1558)’였다. 술레이만 1세의 황후이자 셀림 2세의 모후로 서방에서는 ‘록셀라나(Roxelana)’ 또는 ‘록셀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이 두 이름은 슬라브인 여성 이름인 ‘루슬라나(Ruslana)’에서 따왔다는 설과 ‘러시아 여자’라는 명칭에서 비롯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아랍에서는 카리마(Karima) 혹은 후람(Khurram) 술탄으로 부르기도 한다.

 

                                                          술레이만과 휘렘 술탄

오스만 제국의 황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술탄 술레이만은 록셀라나를 휘렘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무히비라는 필명으로 사랑하는 황비 휘렘에게 수많은 사랑의 시를 지어 바쳤다. 아래와 같은 시구를 보면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술탄(황제)의 찬사 내지 수사가 너무나 멋들어져 오히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흉내를 내보려 해도 오글거려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진정성이 없이는 이런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다정하게, 눈을 마주치고 전달한다는 게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 싶다. 

내 외로운 벽감의 왕좌, 나의 재산, 나의 사랑, 나의 달빛
나의 가장 진실된 친구, 내가 믿는 사람, 나의 존재 그 자체, 나의 여왕, 나의 하나 뿐인 사랑
아름다운 여인들 중 최고의 미인
나의 봄날, 즐거운 얼굴의 내 사랑, 나의 낮, 나의 달콤한 연인, 웃는 잎새
나의 화분, 보드라운 장미, 이 방에서 나를 슬프게 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 
나의 이스탄불, 나의 카라만, 아나톨리아 대지
나의 바닥샨, 나의 바그다드, 호라산
아름다운 머릿결의 여인, 비스듬한 이마의 내 사랑, 슬픔 가득한 눈길의 내 사랑
나 언제나 당신을 찬양하는 노래 부르리
나, 무히비, 고문당하는 심장의 연인, 눈물 가득한 눈망울의 무히비는 행복하여라

한 마디로 “대단하다”. 그런데 이런 남사스러운 언어유희(?)를 술레이만의 아버지인 셀림 칸도 똑 같이 즐겼다는 것이다. 밀어(密語)의 대상은 물론 황제의 어머니였다. 부전자전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술레이만 부자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매 조련사였다가 재상이 된 이브라힘 파샤(재상)도, 술탄의 딸 미흐리마흐와 결혼한 천출 루스템 파샤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꿀보다 더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여인들 또한 뒤질세라 연인에 대한 감정을 글로 쏟아내었다. 이런 감상의 언어적 표현을 문학이나 예술 분야에서는 ‘가잘(ghazal)’이라고 부른다.

                                (좌) 파르갈리 이브라힘 파샤, (우) 오스만 제국(1299년~ 1922년)
       페르시아 국민시인 하페즈 

사랑시 혹은 연애시에 해당하는 가잘을 터키어로는 가젤(gazel)이라고 부르는데 7세기 아랍어 시에서 유래한 애모 시 또는 오드(ode)의 한 형태로, 상실이나 이별의 아픔,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페르시아 가잘 문학의 최고봉에 하페즈(?-1390)가 자리하고 있다. 하페즈는 괴테(1749-1832)와 칼데론(스페인 황금시대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 시인, 1600-1681)을 비롯한 일부 유럽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괴테는 중세 페르시아 문학을 ‘위대하고 엄청난 문학’으로 말한 바 있다. 그는 하페즈의 시에 대한 화답으로 『서동시집』을 지었고, 이를 통해 동방과 서방의 연결을 시도했다. 괴테에 의해 가잘은 19세기 독일에서 아주 성행하는 장르가 되었다.


필명 무히비인 술레이만 대제가 술탄 휘렘에게 바친 연애시에 등장하는 밀어는 반복적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용 새롭다. 때문에 연인의 귀에는 아침 이슬처럼 청량하게 귓전을 울린다. 
 
나의 동반자, 나의 사랑, 빛나는 나의 달빛이여,
나의 목숨과 같은 벗, 나의 가장 가까운 이, 아름다움의 제왕인 나의 술탄.

나의 생명, 내가 살아가는 원인 되는 나의 천국, 천국의 강을 흐르는 나의 포도주여,
나의 봄날, 나의 즐거움, 나의 낮의 의미, 내 가슴속 깊이 새겨진 그림 같은 나의 사랑, 나의 미소 짓는 장미여,

나의 행복의 근원, 내 안의 달콤함, 유쾌한 나의 잔치, 밝게 빛나는 나의 빛, 나의 불꽃.
나의 오렌지, 나의 석류, 나의 귤, 나의 밤, 침실의 빛이여,

나의 식물들, 나의 사탕, 나의 보물, 이 세상에서 내게 고통을 주지 않는 단 한 사람.
나의 성자 유수프, 나의 존재의 이유, 내 가슴속 이집트의 귀부인이여,

나의 이스탄불, 나의 카라만, 나의 루멜리아의 마을과 대지들.
나의 바다흐샨이자 나의 킵착이자 나의 바그다드이자 호라산,

머리카락은 아름답고, 눈썹은 활과 같고,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나를 아프게 하는 연인이여,
설사 내가 죽더라도 그 이유는 그대 때문이리니, 나를 구해주시오 오, 비무슬림인 아름다운 나의 사랑.

그대의 문에서 계속 그대를 찬양하리. 그리고 노래하리.
사랑 때문에 아픈 가슴을 지닌, 눈물이 가득 찬, 나 무히비는 행복하도다.

 

                                       19세기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받은 하렘에 대한 그림

무히비(Muhibbi)는 아랍어로 ‘사랑에 미친 남자’라는 의미를 지녔다. 휘렘은 페르시아어로 ‘즐거움’이라는 뜻의 말이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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