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개헌, 그리고 자연의 법적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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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개헌, 그리고 자연의 법적 지위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1.10.1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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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_ 대학직설

대선을 치르는 2022년은 격변의 시기가 될 것이다. 큰 변화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탄소를 지상으로 불러올린 화석에너지의 시대를 끝으로 탄소중립의 시대가 열릴 것이고, 지구온난화를 막아 기후변화를 억제하려는 운동에 힘이 모이고 있다. 이런 기조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사태는 분명 아니다. 모든 국가의 정치적 의제로 떠오른 지 오래며, 그 바탕에는 지구라는 행성에 관해 지배적이었던 가치관과 믿음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와 우리의 관계가 어디인가 어긋나고 있다는 인식이 늘었으나 우리의 규범과 실천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과학과 가치관이 진화하듯이 이제, 우리의 법, 제도, 문화, 그리고 우리의 실천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위대한 과업》의 지은이 토마스 베리는 ‘비인간을 포괄하는 모든 생명 형태를 지구공동체’라고 한 바 있다. 그렇다. 인간은 그런 지구공동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비록 독자적이긴 하지만 자연과 상호의존적이다. 물질문명의 성장은 오롯이 그 몫만큼을 인간이 자연을 착취한 데서 비롯한다. 인간은 매년 이 지구에서 천억 마리의 동물을 죽인다고 한다. 지난 200년 동안 10억의 인구가 75억 명으로 늘어난 만큼 그 성장도 폭발적이다. 100년 전 1조 달러였던 국내총생산의 총합이 100조 달러를 넘는 성장의 힘은 오로지 숲, 토지, 물, 야생동물 그 밖의 자연 자원에 대한 인간의 착취가 증가한 탓이다. 그 배경에는 ‘식물은 동물을 위해 존재하며,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언급이나 동물은 인간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칸트의 인식이 상징하는 인간중심주의가 있다.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벤담의 성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요즘도 그런 관념은 지배적이다. 1992년 리우정상회의에서도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전략의 중심에 인간을 세워놓았을 정도다. 이 인간중심주의의 결론은 자연의 모든 것을 인간의 재산으로 삼는 규범을 구축하는 데 있다. 사적 소유이든 국유이든 또는 집단적 소유이든 자연은 언제나, 아니 처음부터 인간의 재산이었던 셈이다. 

천성산 도롱뇽, 군산 검은머리물떼새, 설악산 산양과 그 친구들의 이름으로 제기한 환경소송에서 한국의 법원은 자연 또는 자연물 자체에 대하여 당사자능력을 인정하는 법률이나 관습법이 없다는 논거를 내세우며 원고의 소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판시하는 등 한국에서 자연의 법적 지위란 그저 인간의 재산이 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한국도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듯이 최근, 정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하는 등 변화의 기미는 확인된다. 경청 자체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다행스럽지만 21세기의 시대적 소명을 받들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다. 이 개정법률안에 따르면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하면서도 법률에 특별규정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엔 어쩔 수 없더라도 동물에 관해서는 기존 규범대로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는 것이다. 즉, 자연 전체는 아니더라도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하여 별도의 법률을 제정할 것을 국가와 시민에게 요구하는 지혜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사실 사람과 법인의 법적 지위를 다루는 《민법》 자신이 동물의 권리능력 여부를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 모습은 비겁한 태도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장류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연구를 금지하고 모든 동물에 대한 화장품 실험 역시 금지하며 축산업에서 항생제 사용을 막고 모든 아쿠아리움에서 고래를 해방해야 한다는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정부가 생태와의 상생적 공존을 향한 위대한 발걸음을 내딛고자 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큰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새로운 규범을 찾아보려는 법원의 적극적 사법이 눈에 띄는 영미법 국가의 경우와는 달리, 성문법 국가인 한국에서는 법률의 변화가 없는 한 법원이나 정부에게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변화의 대상인 법률은 한두 개의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라 법체계 전체의 변혁을 의미하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셈이다. 결국 법률의 상위 규범인 헌법을 고쳐 그 헌법의 이행으로서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힘든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는 순전히 법률운동일 수도 있지만, 그 본질은 정치운동이며 생태운동이다. 《대한민국헌법》은 ‘광물이나 자원 등 자연력이 법률의 절차에 따라 채취, 개발 또는 이용’할 수 있는 대상임을 명확히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하는 등 환경 또는 환경권에 대한 인식 역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자연은 언제나 재산권의 대상일 뿐이다. 이제 이런 헌법의 반자연적 태도는 극복되어야 하며, 그 계기는 2022년 대선을 거쳐 진행할 개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에게 쓸모가 있든 없든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본원적 가치를 지니며 지구의 주인이다. 인간은 그저 그 속에 존재하는 하나일 뿐이다. 《법정에 선 나무들》의 지은이 크리스토퍼 스톤 교수가 주장하듯 ‘자연이 자신의 권리를 갖는 법적 주체라는 점을 가로막는 법적 장애물’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부분적인 동물복지, 동물학대 등의 금지, 《생물다양성법》의 제정이나 《민법》의 개정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간헐적이고 다소 즉흥적인 입법으로는 에너지전환과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데 한참 부족하다. 모든 대선후보와 정당은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대안을 담은 개헌의 기조를 제시하여야 한다. 이미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는 2008년과 2009년에 헌법을 개정하여 이른바 ‘좋은 삶’(vuen vivir), 즉 사람-자연-사회의 조화로운 공존을 그 핵심가치로 설정하고, 자연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산업자본주의의 성장주의와 소비지상주의의 폐해를 반대하며 다양성을 토대로 사람-자연-사회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경제기반으로서 유기농업, 재생에너지, 생태관광, 자원 재활용을 촉진하자고 하였다. 특히 《에콰도르 헌법》 제7장(자연의 권리)에 따르면, ‘생명이 재생산되고 발생하는 곳인 자연은 그 존재를 온전히 존중받고 그 생명 주기와 구조, 기능, 진화과정이 유지·재생되도록 할 권리를 가지며, 모든 개인-지역사회-부족-민족은 정부에 자연의 권리가 집행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당연히 ‘자연은 복구될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종의 멸종, 생태계의 파괴, 자연 주기의 영구적 변화를 초래하는 활동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여야 한다.’ 더욱이 ‘개인-지역사회-부족-민족은 그들이 좋은 삶을 누리도록 해주는 환경과 자연적 풍족함으로부터 유익함을 얻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

물론 이 헌법만으로 ‘멋진 신세계’가 도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입법이 이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 법원과 관료들의 혁신이 요구된다. 또한 시민 스스로 팽창한 소비를 줄여 공유지를 확대하고 생명의 경외감을 나의 목숨처럼 여기는 등 나 자신이 지구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야 한다. 이제 세계시민은 인권과 시민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발가벗은 생명’은 자연이 아니라, 이 자연을 외면하는 성장주의자, 그 끝을 모르는 소비지상주의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인간의 삶이 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이른바 생태 감수성을 갖춘 시민이다. 따라서 자연과 조화로운 좋은 삶을 기획해야 하는 2022년 대선은 ‘지속성장과 공정’ 또는 ‘공정과 상식’을 화두로 삼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부의 욕망을 부추기는 선동은 자연을 여전히 착취하고 마찬가지로 사회소수자를 버리겠다는 정치선언 다름 아니다. 

지금 수준의 물질적 삶이 유지되려면 지구의 1.6개 필요하다고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지구는 언제나 1개였다. 이제라도 성장의 유혹을 멈추고 자연과 함께 춤을 춰야 한다. 그런 대선 후보와 정당을 기대한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대학평의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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