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 데 지식은 왜 필요한가…음악적 분석과 문화적 분석의 조화로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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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는 데 지식은 왜 필요한가…음악적 분석과 문화적 분석의 조화로운 만남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0.04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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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중음악: 민스트럴시부터 힙합까지, 200년의 연대기 | 래리 스타·크리스토퍼 워터먼 지음 | 김영대·조일동 옮김 | 한울 | 648쪽

 

이 책은 재즈, 컨트리, 포크, R&B, 록, 펑크, 힙합 등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태어나고 변형되고 발전해온 음악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은 음악 또는 음악인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모아 소개함으로써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다른 많은 책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저자는 철저히 음악에 집중해 음악의 겉면을 둘러싼 문화적·사회적 요소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친절하게 안내하는 한편, 각 장르와 시대를 대표하는 곡들의 속살을 마치 클래식 음악 악보를 분석하듯 잘게 쪼개 보여줌으로써 음악을 듣는 내공을 한층 업그레이드 해준다.

음악을 듣는 데 지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식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확장해줄 때가 있다. 이는 몰랐던 혹은 낯설었던 음악에 다가설 때만 적용되는 논리는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들어온 음악도 새로운 앎을 통해 미처 맛보지 못한 매력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 책이 기여하고자 하는 바 역시 거기에 있다.

누구나 알듯이 재즈, 블루스, 컨트리, 스윙, 포크, R&B, 로큰롤, 소울, 록, 디스코, 펑크, 힙합 등 우리가 익히 듣고 연주하는 대중음악 장르는 대개 미국을 발상 또는 발전의 근거지로 한다. 물론 이민자의 나라답게 미국 음악의 근원을 따지자면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등 이민자들의 고향까지 탐사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형성되어 발전된 대중음악을 다루지만, 그 음악이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음악 및 문화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자 이 책 전반에 깔린 대전제다.

어쨌든 오늘날 대중음악이라는 상위 범주를 말하는 데 미국 대중음악이라는 하위 범주를 비켜갈 수 없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음악 자체의 매력 때문이든, 막대한 상업적 힘 때문이든 간에 미국 대중음악이 오늘날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음악이자, 지금 우리 땅에서 만들어지는 음악과도 가장 깊고 광범위한 영향 관계를 맺고 있는 음악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책 제목에 붙은 ‘미국’이라는 수식이 조금 번거롭게 느껴지는 이가 있다면, 아마 이러한 연유에서일 것이다.

이 책은 19세기에 유행한 민스트럴시라는 다소 낯선 이름의 음악적 장르부터 힙합, 얼터너티브 록 등 비교적 최신의 장르에 이르기까지 미국이라는 땅에서 대중음악이 밟아온 길을 연대순으로 차근차근 짚어본다. 이때 특히 저자의 접근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 중 한 명인 래리 스타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중음악 연구의 대가로, 이 책을 통해 대중음악 형식과 스타일의 변천을 분석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선보인다. 그는 한 시대의 음악이 어떤 형식이나 스타일, 악곡 구조였다가 여러 가지 다른 환경에 의해 다른 시대에 다른 형태의 장르로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냄으로써 장르와 장르 간, 또는 곡과 곡 간 영향 관계와 차이, 그 변화 과정에 담긴 의미를 명료하게 설명한다. 또 다른 저자인 크리스토퍼 워터먼은 음악인류학자답게 여기에 문화사적 접근을 강화한다. 그는 주로 음악과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를테면 특정 인종, 민족, 문화, 성, 정체성 등의 요소가 음악과 어떤 식으로 만나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중음악을 추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화성, 선율, 리듬, 가사 등 음악의 언어를 활용해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한편, 여기에 역사, 문화, 사회, 경제, 정치, 기술 발전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맥락을 부여함으로써 설득력을 더한다는 점이야말로 이 책이 지닌 가장 중요하고도 차별되는 강점이다. 

책은 미국 대중음악의 다양한 스타일과 형식을 분류할 때 사용되는 용어와 표현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장르, 그리고 그 시대와 장르를 대표하는 곡과 음악인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분히 분석해나간다. 이렇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 책은 19세기부터 21세기 초에 이르는 대중음악의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하나의 큰 줄기로 엮어낸다. 그 조각들 속에서 우리는 루이 암스트롱이나 행크 윌리엄스, 프랭크 시나트라, 밥 딜런, 레이 찰스, 지미 헨드릭스, 마이클 잭슨, 너바나 같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할 것이고, 찰리 패턴이나 로버트 존슨, 루스 브라운, 빌 헤일리, 팻시 클라인 같은 조금은 낯선 이들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대중음악에 가해진 사회의 억압적 시선과 이에 맞선 반항과 일탈, 대중음악의 예술성과 상업성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 새로운 기술 도입을 둘러싼 논란, 주류 음악과 주변부 음악의 상호작용 등 한국 독자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 미국 땅에서도 그대로 펼쳐졌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내 인종적·정치적·종교적·성적 문제가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에 관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맥락들을 미국인의 시점에서 서술된 예민한 지적을 통해 접하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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