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의 시대, 지금 우리는 어떤 정치리더십이 필요한가?
상태바
대전환의 시대, 지금 우리는 어떤 정치리더십이 필요한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0.04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국가경영은 세종처럼: 세종대왕의 국가경영법과 리더십 이야기 | 박영규 지음 | 통나무 | 319쪽

 

훌륭한 인격과 능력을 갖춘 위대한 인간이었고, 성군이라는 칭송이 아깝지 않은 뛰어난 통치자였다. 그래서 다방면에 걸쳐 기적 같은 업적을 일구며 조선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이 책은 세종의 통치행위를 국가경영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국가 최고 책임자로서 세종이 국민들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고, 어떤 비젼을 갖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했는지, 그 정치 리더십의 본 모습을 저자는 정확한 왕조실록의 사료에 근거하여 알려준다. 

이 책에는 세종이 남긴 업적의 면면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세종은 재상 정치를 중심으로 정치 체제를 안정시키고 행정 조직을 확립하였으며, 혁신적인 조세 제도를 확립하여 국고를 늘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농업을 비롯한 경제의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사군과 육진을 설치하여 영토를 확대하고 국방력을 증대시켰으며, 집현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학문을 발전시키고 미래의 동량을 키웠다. 나아가 이들의 능력을 기반으로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이 이루어져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되게 했는가 하면, 훈민정음의 보급, 농작법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의 발전과 음악의 정리 등등 열거하기 벅찰 정도의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어 이 책은 이러한 국가경영의 성과가 가능할 수 있었던 최고경영자인 세종의 종합적 성격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다. 즉 세종이라는 인물의 인성적 측면,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고 백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그의 정치관, 그리고 적재적소에 알맞은 관리 등용으로 알 수 있는 그의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리더십의 원천, 이것들을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목덕을 위해 이 책은 1) 세종이라는 그 인간에 대하여, 2) 군주로서의 세종에 대하여, 3) 세종의 인재경영과 그 시대 인물군들에 대하여 등 3부로 나눠 구성하였다.

1부는 세종의 인간적 면모를 그의 성장 과정과 사생활, 정치 행위와 정책, 사람에 대한 태도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세종의 위업 뒤에는 왕을 훌륭하게 보필한 신하들과 당대의 학자들의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도 세종이 이들의 보필을 수용할 만한 인성과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세종은 인정 많고 정의로운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고통에 함께 눈물 흘릴 줄 아는 정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앞뒤 재지 않고 인정에만 매달려 덤벼드는 그런 감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냉철하며 해결책을 추구하는 매우 이성적인 인물이다.

또 세종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학문적 능력을 갖춘 통섭형 지식인이다. 여러 학문을 탐닉하면서도 모든 분야에 대한 깊은 소양을 갖췄으며, 옳다고 믿는 일은 과감하게 추진하여 기필코 일궈내는 탁월한 실천가이기도 하다. 거기다 학문을 현실 생활에 적용하여 백성의 편리와 생활의 안정을 이끌어내는 실용주의자이고, 결코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 실리주의자이며, 원칙을 중시하되 유연성을 잃지 않는 가슴 넓은 원칙주의자이다.

2부는 군주로서의 세종이 견지하고 있는 정치관, 경제관, 법사상이 무엇이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고 구현되었는지 알아본다. 세종시대 조선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사회는 왕도(王道)정치가 구현되는 나라였다. 왕도정치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덕 있는 자가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힘으로 나라를 지배하고 형률로 백성을 다스리는 패도(覇道)정치와 대비된다. 왕도정치의 목표는 백성들이 모두 조화롭게 잘 사는 태평성세를 일구는 것이다. 조선의 국시 성리학은 왕도정치 실현을 위해 가장 중시되는 개념으로 중용을 내세웠다.

세종이 추구하던 중용의 정치는 곧 왕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하되 신하들의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여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하는 것, 신하의 죄는 벌하되 믿음과 의리는 저버리지 않는 것, 문(文)을 숭상하되 무(武)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 실리를 중시하되 명분을 잃지 않는 것,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것 등이었다.

이런 중용의 정치관은 그만의 독특한 경제관과 법사상을 낳았다. 경제 정책을 실시함에 있어서는 현실주의의 기반 위에서 국고의 안정과 민생의 균형을 추구하였으며,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억울한 백성이 생기지 않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인간의 도리와 법 규정, 그리고 사회적 환경의 조화를 꾀하는 방식을 택했다. 세종의 민본사상과 민생 위주 정책의 투철함은 다음과 같은 그의 발언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백성이란 것은 나라의 근본이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과 같이 우러러보는 것이다.”民惟邦本, 食爲民天。(세종 1년 2월 12일 교지)

3부는 세종의 인재 경영의 특징을 분석하고, 황금시대를 만든 당대 인재들의 면면을 살피는 한편, 세종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한글 창제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한글인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와 훈민정음의 문자 기원에 대한 논의는 흥미롭다. 훈민정음 기원설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망라되어 설명된다.

세종은 스스로가 당대의 뛰어난 인재였을 뿐 아니라 주변의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남다른 용인술이 있었으며, 신분이나 국적보다는 능력을 살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다른 왕 아래선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던 인물도 세종을 만나 날개를 달았고, 다른 시대엔 쓸모없는 지식으로 여겨지던 것들도 세종의 시대엔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다. 덕분에 그들 인재들은 당대의 보석이 되고, 조선 왕조의 주춧돌이 되었으며, 역사의 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곧 세종의 성공 뒤에는 탁월한 인재 경영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세종의 국가경영 리더십의 요체는 바로 인재경영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