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흐름에 대학은 어떻게 반응했으며 어떻게 변화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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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흐름에 대학은 어떻게 반응했으며 어떻게 변화했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0.0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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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의 역사 | 남기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340쪽

 

대학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사회제도 중 하나다. 또한, 현재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고등교육 기관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서양에서조차 소수의 엘리트만 허락된 특별한 곳이었다. 이 책은 중세 대학 탄생 이전 서양 교육의 전통부터 21세기까지 대학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중세 유럽에서 처음 출현한 대학이 천 년 가까이 존속할 수 있었고 유럽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를 찾는다. 

이를 위해 고대 그리스의 지적 교육적 전통이 중세 대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12세기 사회의 어떠한 변화와 특성들이 대학을 형성하도록 했는지 추적한다. 또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절대주의 국가, 과학 기술의 혁신, 세계대전과 신자유주의의 확산 등과 같은 세계사의 흐름에 대학이 어떻게 반응했으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로마제국 멸망 이후, 유럽 전역을 휩쓸던 이민족의 침입이 11세기 무렵 종식되자, 유럽은 오랜 암흑에서 벗어나 안정과 번영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12세기 중세 유럽 사회는 안정을 되찾았고,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었다. 농업 생산성의 향상으로 잉여생산물이 발생했으며, 남아도는 농산물은 교환을 위해 시장에 나왔다. 또한 인구의 증가는 재화의 수요를 증가시켰으며, 그 결과 자연스럽게 상업과 수공업의 발달로 이어졌다. 이러한 중세의 활력을 견인한 것은 도시였다. 교통의 요충지에 형성된 도시에 각지에서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몰려들었고, 도시민들은 대성당을 세워 그 위세를 과시했다.

사회가 안정되고 체계를 잡아갈수록 성직자, 법률가, 행정가, 교사 등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일들이 날로 늘어났으며, 지식 그 자체를 갈망하는 사람 또한 많아졌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전문적이고 고등한 지식의 중요성이 커지고, 지식인을 필요로 하는 부문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지식을 매개로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도시로 이동했다. 즉, 고등한 지식에 대한 욕구와 필요는 사람들을 파리, 볼로냐, 로마, 살레르노 등과 같은 도시로 몰려들게 했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교육에 대한 갈망은 이러한 도시에서 대학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최초의 대학들은 특정 시기, 특정 공간에서 설립된 것이 아니었다. 배움을 원하는 학생들이 지식의 권위를 인정받은 학자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자연발생적인 모임이 조금씩 확대되고 체계를 갖추어 나간 것이 최초의 중세 대학들이었다.

중세 대학은 교회가 독점하던 지식을 대학으로 가져옴으로써 이후 서양 학문의 발전을 이끌었다. 물론 최초의 대학들에서는 교회의 영향력이 막강했고 교수와 학생들 역시 성직자에 가까웠지만, 대학이 추구했던 학문적 지향은 보다 세속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문주의, 종교개혁, 과학혁명 등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근대 지성이 싹틀 수 있었다. 대학은 지식 분야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세 유럽의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중세를 지나고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대학은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 응답하지 못했다. 학문의 체계, 교육 내용, 학부의 구성 등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 16세기의 종교적 분열은 대학을 더욱 경직시켰다. 학문은 철저하게 종교에 종속되었고, 종교적 차이는 대학에서 배척당했다. 무엇보다 근대 사회의 발전을 견인할 과학 기술의 혁신이 대학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연과학이나 기계공학을 연구하는 인력이 늘고 공간은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대적 요구는 대학에서 무시되었다.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며 이론 중심의 학습에 초점이 맞춰진 대학의 분위기에서 과학과 기술이 교육 과정에 편입되기 어려웠다. 

중세 이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들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대학과 전혀 다른 새로운 기관들이 사회 발전을 견인하는 상황은 대학이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으며,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의미했다. 대학을 위기로 몰아넣은 원인은 한마디로 대학과 사회의 괴리 때문이었다. 대학이 가르치는 학문과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 사이의 괴리, 대학이 지키고자 하는 전통과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 사이의 괴리가 더는 용인하기 어려울 만큼 벌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결국, 19세기가 되자 국가가 대학 개혁의 주체로 나섰다.

대학 개혁의 방향은 분명했다. 근대화를 위한 필수요건들을 수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력한 근대국가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 됐다. 실제로, 18세기 이후 대학에서는 지식이 현실의 삶을 개선하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공리주의적이며 실용적인 교육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정부와 산업을 이끌어갈 전문 인력 양성에 관심이 많았던 국가 역시 대학을 개혁하고자 했다. 개혁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프랑스의 사례처럼, 대학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대학을 대신할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독일의 경우처럼, 대학의 기능과 역할을 완전히 혁신해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해법이었다.

독일의 연구중심 대학 모델은 미국, 일본, 러시아의 대학들에 큰 자극을 주었으며, 유럽 여러 나라도 독일 대학들을 관찰하고 모방했다. 교육과 연구의 통합, 새로운 연구방법론 등의 학문적 실천이 큰 관심을 끌었다. 프랑스의 실용주의적 대학 모델은 나폴레옹을 통해 남부 유럽, 중남부 아메리카 등으로 전파되었다. 특히 엘리트 양성과 산업 발전에 박차를 가하던 국가들은 에콜 폴리테크닉을 비롯한 다양한 전문학교에 큰 관심을 보였다. 교육이 국민 통합과 강력한 국가 건설의 중요한 도구임을 인식한 여러 국가의 정부는 중앙의 강력한 통제에 기초하고 있는 프랑스 모델에 매력을 느꼈다. 영국의 대학 모델은 이원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중세 대학의 전통적 가치와 이념을 여전히 고수하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이 존재하며, 다른 한편에는 산업 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민립대학 모델이 있었다. 19세기 영제국의 식민지 확장과 함께 영국의 대학 모델, 특히 민립대학 모델은 인도를 비롯한 식민지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19세기 이후 각국 정부는 대학을 국가 발전의 도구로 여겼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문학과 역사는 국민의식 형성의 중요 수단이었으며, 사회과학 과목은 효율적인 국가 운영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무엇보다 군사력을 강화하고, 산업화를 이루는 데 관심이 많았던 국가는 대학의 과학과 기술 역량을 활용하고자 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각국 정부는 무기 생산을 비롯한 전쟁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대학을 이용했다. 대학의 학자들은 각종 분야에서 자문을 제공했고, 대학은 정부로부터 기금을 받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정부의 프로젝트를 많이 수주하는 대학의 발전 속도 또한 빨랐다. 20세기 최대의 전쟁은 20세기 대학의 판도를 흔든 셈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20세기 냉전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냉전의 시대가 지나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세계사의 주요 흐름이 되자 대학의 모습 또한 변화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이 축소되자 각국의 대학들은 생존을 위한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다. 대학들은 더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 교수들은 대학 내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다른 교수들과 경쟁하며,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다른 학자들과 경쟁한다. 대학은 다양한 평가와 인증에서 좋은 순위를 획득하고,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기금을 얻기 위해 다른 대학과 경쟁한다. 국가는 자국의 대학들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정책을 세우고 재정을 투입한다. 이렇게 자본의 지배 아래 놓인 그래서 시장에서의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학은 더욱 시장의 논리와 자금의 논리를 추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세 이래 지속된 대학의 보편성과 공공성이라는 가치는 무뎌지게 되었으며, 그러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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