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존을 넘어 비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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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존을 넘어 비전으로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0.0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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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지난 9월 3일 교육부는 3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일반대학의 경우 136개교가 일반재정지원 대학으로 선정되었고, 25개교는 탈락되었다. 선정된 대학들은 2022년부터 3년간 대학혁신지원사업을 통해 연평균 약 48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어 고무된 모습이다. 미선정대학들은 ‘부실대학’이란 이미지가 가져올 후폭풍에 심각하다. 여러 총장들이 사퇴 의사를 밝히고, 대학 수시모집에서 비수도권 소재 대학은 경쟁률이 일제히 하락했다. 근소한 진단점수 차이로 기본역량조차 갖추지 못한 대학으로 전락된 것에 대한 불만도 고조되었다. 

3년을 주기로 시행하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은 2015년 도입된 ‘대학 구조개혁 평가’를 이어가는 사업으로 2018년에 명칭을 바꾼 것이다. 이 진단은 기본적으로 정원감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탈락한 대학을 중심으로 여론이 심상치 않자, 교육부는 최종 결과 발표 후 바로, 탈락대학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그런데 대학 기본역량 진단 자체가 고등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들이 나오는 가운데, 이러한 역량진단 자체가 필요한가에 대한 국회에서의 대정부 질문에 교육부총리는 제도개선을 언급하였다. 국회 교육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대학 평가에 대한 전면적인 논의가 국회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대학의 80% 이상이 현재 방식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은 불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2021년도 기준 3년간 국민 세금 2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고등교육 정책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많은 대학들이 지원을 받으면서도, 이러한 진단은 왜 하느냐고 질문을 하고 있다. 그러면 연평균 약 48억 원을 지원받는 대학들은 무엇을 쌓아가고 있는 것일까? 대학 스스로는 ‘동’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재정지원 받기 위해 방향을 타협한다면, 제대로 발전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진단이 불필요하다면, 대학들이 진단을 받지 말아야 한다. 평판과 재정지원 받는 것 자체를 위한 것이라면, 국민과 학생들에 대해 무책임한 것 아닐까?

정부와 사회는 대학 혁신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감축이라는 구조조정도 중요하지만, 교육이 먼저다. 불확실한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학생들의 잠재력을 제대로 이끌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경제포럼의 2018년 조사에서 우리나라 대졸자의 비판적 사고력은 140개 국가 중 90위이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주었을때 한국 기자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대학들이 그동안 창의성,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력, 의사소통 능력 등을 갖춘 미래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했지만, 단지 구호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성공적인 혁신을 이루는 대학으로 미네르바 대학, 올린공대, 스탠포드 디스쿨, 에꼴 42 등이 소개되어 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대학 운영은 한 학생의 성장, 성공에 초점을 두고, 자신이 배운 내용을 사회 현장과 연계시키는 체험활동을 통해 미래 어떤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 특히 프로젝트 중심으로 토론, 협업 능력을 키우며 자기주도적 학습을 경험하게 한다. 교수-학습 과정도 학생에게 기대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섬세히 기획하고, 교수는 가르치지 않고 조력자로서의 위치에 선다.

정부와 사회는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이 크게 전환되는 시기에, 대학의 혁신에 대한 노력이 전임교원 확보율, 학생 충원율, 교육과정 및 각종 프로그램 운영 등 이제는 큰 의미가 없는 외형적 지표의 관리와 상투적인 보고서 작성에 매몰되게 해서는 안 된다. 대학 혁신은 학생별로 어떠한 변화를 이루어가게 할 것인가에 초점 맞춰야 한다.

대학도 ‘우수한 학생’이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기존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 지식을 빨리 이해하고, 정답을 빨리 찾는 것보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질문 또는 문제를 만들어내고, 실수, 실패를 하면서도 도전하며 그 답을 찾아내는 태도와 능력이 더 중요하다. 시키는 일만 열심히 잘하기보다, 꿈을 가지고 자기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남과 비교하며 더 잘하기보다, 자신만의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서게 해야 한다. 명문대 졸업장보다는 생각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 협업하며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능력이 인정받음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정부와 사회는 대학들을 줄 세우기보다, 디지털 비대면 시대에 대학별로 특성화와 창의적 인재 양성에 집중하여 자신만의 성공모델을 만들도록 도와줘야 한다. 대학들도 서로 비교 경쟁하기보다, 각자의 강점을 공유하며 서로 도울 때 큰 시너지를 내며 윈-윈 할 수 있다. 요즈음 관심이 커지고 있는 대학 간 공유의 정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협력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처럼 재정관리 차원에서 줄 세워 일부 탈락시켜 대학 간 경쟁 분위기 조성하기보다는, 일본처럼 학생 수를 감안하며 모든 대학에 경상비를 보조하여 상호보완하며 서로 도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이는 대학의 혁신에도 제대로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일부 부정비리에 대해서는 크게 책임을 묻더라도, 대부분의 건강한 대학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자율적으로 대담하고 다양하게 특성화를 펼쳐나가도록 규제들도 빨리 풀어주고 격려해줘야 한다. 이제는 세계 대학, IT 기업 등과 플랫폼 경쟁도 해야 한다. 국민 세금을 잘 관리해야 하지만, 잘 쓰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하다. 사실 관리만 잘 하려고, 잘 쓰지 못하면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 팬데믹에 따른 대전환의 시대에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는 빠르게 다가온다. 현 대학생이 졸업 후 갖게 될 직업 중 80%는 오늘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어떠한 능력과 소양을, 어떻게 키워줘야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사실 이들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로 만드는 일, AI, 유전자 기술과 공존하며 인간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 지속가능한 지구촌, 동·서양을 넘어 국가 간의 화합을 이루는 일들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대학들이 오늘의 생존을 위한 평가지표 관리가 아니라, 미래의 꿈과 비전을 제대로 세우도록 해야 한다. 대학은 역사가 증명하듯이 ‘비생산적’이고 ‘비실용적’인 학문의 가치를 더욱 강조해야 하며, 우리 사회와 미래를 책임지는 역할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학생, 대학, 국가, 지구촌의 미래를 제대로 신속하게 대비해야 할 위기의 때가 바로 지금이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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