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소설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과학소설 속의 포스트 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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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과학소설 속의 포스트 휴먼
  • 손나경 계명대·번역학
  • 승인 2021.10.04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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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과학소설 속의 포스트휴먼』 (손나경 지음, 계명대학교출판부, 282쪽, 2021.08)

 

과학소설(Science Fiction, SF)에는 인간성을 가진 미지의 존재들인 포스트휴먼이 등장한다. 포스트휴먼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과학소설에 등장하는) 유전적 생물학적 보강을 통해 현생인류로부터 진화되는 가상의 존재”†이다. 이 정의처럼 포스트휴먼은 미래의 진화된 가상의 인류, 혹은 인간적 요소를 가졌지만, 인간과는 다른 과학소설 속의 존재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예전에는 듣기 힘들었던 이 용어가 최근 많이 언급되는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포스트휴먼이 현실화될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며, 이런 가능성과 함께 지금의 인류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을지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소설 속의 포스트휴먼』은 과학소설의 시발점으로 평가되는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과학소설 작품에서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ibrary of America) 총서에 수록된 SF 작가인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작품까지 영국과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포스트휴먼적 존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이 책은 대학에서 과학소설 관련 교양과목을 운영하는 저자의 입장에서 과학소설이란 장르를 포스트휴먼이라는 시각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특히 과학소설을 가르치거나 읽으면서 학생들이 제기하거나 저자 본인이 가졌던 질문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한 예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탄생의 비밀을 알아내고 생명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이 생명체가 흉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이름을 붙여주기를 거부하고 생명체가 탄생하자마자 유기한다. 이런 프랑켄슈타인의 심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이 인간의 정의를 인간다운 생김새로 구별한 이유, 복제인간, 안드로이드를 다룬 다른 과학소설도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을 프랑켄슈타인처럼 생김새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와 같은 질문이다.

세부적으로는 1장 과학소설의 정의와 발전, 2장 근대과학의 성장으로 탄생한 괴물: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3장 시간여행을 통해 만나는 미지의 존재들, 4장 로봇이야기, 『아이, 로봇』, 5장 인간됨을 묻다: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에서 다루는 과학소설들은 포스트휴먼이 등장하는 영미권의 대표적인 과학소설들이다. 이 중 1장은 과학소설이라는 장르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과학소설 장르의 특성과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다루었다. 

우리는 과학소설에서 등장한 과학기술이 몇 년, 혹은 몇십 년 후 실현되었다는 말을 흔하게 들어왔다. 과학소설(scientifiction)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휴고 건스백도 과학소설의 기능을 가상의 과학적 산물을 예견하고 현실화하는 것에서 찾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소설의 상상력은 미래의 과학기술을 예견하는 이상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미래 사회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독자들이 겪는 현실적 문제와 미래에 대한 우려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과학소설은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을 다루며, 동시에 현재 사회가 가진 과학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로널드 에드워즈가 과학소설을 통해 예언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소설이 쓰인 당시의 동시대적인 성찰을 읽는 것‡이라고 했듯이 과학소설은 내일은 물론 오늘에 대해 말하고 있기도 하다. 조지 오웰이나 H. G. 웰즈의 과학소설이 독재나 나치즘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고, 냉전시대에 공산권의 과학소설 작가들이 공산국가의 사상통제에 대한 우회적 비판 수단으로 과학소설을 이용하기도 했었다. 그러므로 과학소설 속의 포스트휴먼이 맞닥뜨리는 문제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마주치는 문제와 맥락이 통하며, 이들이 사는 미지의 세계 역시 시공간적으로 낯설지만 현재의 우리 사회가 투영된 세계이기도 하다.  

『과학소설 속의 포스트휴먼』이 과학소설의 여러 주제 중에서 포스트 휴먼을 다룬 소설들로 범위를 한정한 것은 과학소설의 대상이 한 책에 담기에는 너무 넓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학소설의 본질적인 핵심이 과학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포스트휴먼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과학소설의 여러 상상의 대상을 살펴보며 우리는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고,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https://www.lexico.com/definition/post-human
‡ Ronald, Edwards. The Edge of Evolution: Animality, Inhumanity & Doctor Moreau. Oxford: Oxford UP. 2016. p. 259


손나경 계명대·번역학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영국 버밍엄 대학교에서 번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 계명대학교 Tabula Rasa College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서로는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 1』,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 2』. 『미 외교관 부인이 만난 명성황후·영국 선원 앨런의 청일전쟁 비망록』(공역), 『Global Citizenship for University Students』(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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