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이 ‘ㅇ’ 되고, 학생의 학생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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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이 ‘ㅇ’ 되고, 학생의 학생이 되기까지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0.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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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2020년이 왔다. 벌써 한 달 남짓 흘러가 11개월 남았다. 아직 새 학기 시작 전이라서 올해 어떻게 선생이란 직업을 감당할지 점검해본다. 지나온 과정과 행적이 만족스럽지 않은 터이다.

우선 졸업식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다. 문득 내 졸업식 때는 교수님들에 대해 어떤 감정이었는지 돌이켜보니 단편적인 기억만 있다. 어쩌면 군부체제 시절에 폐쇄된 학교에 얼쩡거리지도 못했고 ‘민중선동’을 빌미로 ‘알바’도 금지되었던 터라 상당 기간을 등록금 내고 과제물 우편 발송을 통해 학점 받고 학위증 받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에게 면목 없음은 그렇게 학위 취득한 선생이 요새 ‘청탁금지법’을 이유로 출결과 온갖 졸업요건을 교육부 기준에 맞춰 따지자니 드는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다. 교육한답시고 대다수 입에서 ‘쉰내’ 나게 일하는 학부모와 학업, 알바, 취업 준비를 힘겹게 병행한 학생들에게 비싼 등록금 받아놓고, 이제 교육 기간 마쳤다고 허울 좋은 수여식을 통해 삶의 기본권과 생업의 터전도 여의치 않은 사회로 내모는 것도 미안하다. 더욱 면목 없음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결여된 철부지 선생으로서 지식팔이 직장인처럼 많은 학생에게 개별 맞춤형이 아닌 일률적 교육을 강제했음이다. 마치 타조나 닭에게 날개가 있다고 날기 훈련을 강요하면서 날지 못함에 대해 좌절케 하고, 독수리와 매에게 다리가 있다고 걷고 헤엄치는 법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하면서 낙심케 하듯, 전공의 이름으로 지식과 방법론을 무차별적으로 강제해왔다. 귀한 개성의 개개 학생에게 지혜 없는 선생이 우를 범했기에 무렴하건만, 잘못을 교육시스템에 돌리면서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우리 교수들은 쉽사리 변할 기세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과 아울러 학령인구감소와 등록금동결이라는 한국적 난제가 가중된 상황임에도, 2030년경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는 토머스 프레이 같은 미래학자들의 경고에 대부분 교수들은 근본적 대안을 추진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스카이캐슬’ 같은 기득권 체제는 불행히도 상당히 오랫동안 존속될게고, 그 체제의 혜택을 누리는 자들이 상부구조 유지에 필수적인 하부구조가 쉽게 와해되도록 관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묘한 자조적 안심도 한편에 자리한다.

돌아보니 교육자로서 받아든 낙제점은 내가 아직 ‘사람’인 탓이요, 여전히 ‘선생’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음에다. 사람은 ‘람’의 받침인 ‘ㅁ’이 ‘ㅇ’이 되어야만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곧 사람의 ‘ㅁ’이 ‘ㅇ’받침이 되어 ‘사랑’이 되어야만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그가 곧 나 자신인 양 사랑으로 보고 대할 수 있어야만 온전한 사람이란다. 그리되자면 ‘ㅁ’이 ‘ㅇ’이 되도록 구르고 닦고 엎드리고 단련하며 날카로운 ‘ㅁ’의 각들이 깎여야만 한다. 교육계에 20년을 재직하면서 비로소 체휼하는 것이 ‘사람’인 선생이 다양한 학생을 이해하고 통찰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이 되지 않는 한, 지식전수는 가능하나 교육은 불가능함이다. 하물며 이제 개별 지식전수 및 최적합 맞춤형 교육과 취업 준비까지 모두 인터넷 교육과 AI 로봇 교사로 대체 가능해지는 세상이다.

이렇게 보면 각고의 자기 수행을 통해 지와 덕과 사랑을 겸비할 뜻은 없이 나름 빼어난 지식과 날 선 세 치 혀로 국정을 논하고, 선생들의 선생인 양 교육계와 학생을 가르치려는 유아독존식 지식인 교수들이 동분서주하는 이 나라의 교육은 암담하다. 선생의 선생이 되어 교육 혁신 명목으로 외형 시스템 교정만 계속한다면 근본적인 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선생인 내게 이로운 개혁이 아니라, 차세대의 주인인 학생에게 절실한 혁신이 필요하다. 선생에 의한 선생 중심의 변혁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학생 중심의 혁신이 절박하다. 이를 위한 실천으로 올해는 ‘ㅁ’이 닳아서 ‘ㅇ’이 되기를 감당하고, 학생의 학생이 되는 것이 가능할까. 그들은 수십 년 전의 나였고, 나는 수십 년 후의 그들인데, 그 ‘나’를 위해서라도 애써볼 수 있지 싶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of Delaware)에서 미술사석사와 철학박사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객원강의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대미술사학회 회장과 미술사학연구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원광대 국제교류처장과 한국문화교육센터장,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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