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과 오염의 역사 공간에서 일군 우리꽃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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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과 오염의 역사 공간에서 일군 우리꽃 정원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1.10.04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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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 경북 영양 일월산 자생화 공원

 

광산 전망 계단을 오르다 보면 일월산 자생화공원이 환히 내려다보인다. 계절마다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진다. 

햇빛이 비치고, 안개비가 나리고, 바람이 분다. 구름은 거대한 몸을 무겁게 끌며 동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가을을 마중하는 하늘은 조용히 수선스럽다. 영양읍의 논은 노란 빛을 띠기 시작했다. 밭은 더욱 짙은 초록이다. 사각의 논밭이 보여주는 색채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어루만져져서 활기를 띠게 된 육체처럼 빛난다. 읍을 지나면 곧 일월면이다. 길 어디에서나 코스모스를 볼 수 있다. 그것은 길을 인도해주는 별과 같았다. 반변천을 거슬러 일월산을 향해 간다. 매끄러운 정적의 길이다. 지나치는 집들의 마당마다 꽃들은 화려하게 자라고, 길가에는 이따금 붉은 단풍이 반갑고도 놀랍게 다가온다. 홍단풍이다. 태어날 때부터 붉은. 가을의 홍단풍은 기적적으로 구출된 사람처럼 한없이 긍정적인 얼굴이다. 여름의 홍단풍은 언제나 좀 막막했다. 

 

          풀 한포기 자랄 수 없었던 땅에 우리 꽃들이 자라고 물이 흐르고 각종 수생 생명들이 숨 쉰다. 

10년, 아마 그 이상일 듯하다. 오래된 어느 여름날 우연히 만났던 일월산 자생화 공원. 태풍의 나날 속에서 노란 애기원추리와 연한 청보라 빛의 벌개미취를 잔뜩 피워냈던 그곳을, 오래된 폐 광산의 매혹을, 잊은 적 없다. 참담을 삼킨 담담한 유적에서 피어난 꽃들이기에 그 아름다움은 특별했다. 내심 대단한 기대를 하였으나 오늘 꽃은 드물다. 너무 늦은 것도, 너무 이른 것도 아니다. 무지했다는 것이 옳다. 코스모스는 어김없이 피어 있다. 어느 한 순간도 아름답지 않을 때가 없는 코스모스. 또 보라색 부처꽃과 벌개미취도 피어있다. 땅 가까이 허리를 굽혀 자세히 바라보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들도 찾아낼 수 있다. 우리 꽃들은 소박하고도 품위 있고 우아하다. 무리지어 피어도 압도하지 않는다. 

일월산 자생화 공원. 오염되어 있던 폐 광산을 완전히 밀봉해 매립하고 일월산 일대에서 자생하는 꽃과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조성했다. 
                   용화광산 선광장.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광산으로 우리나라 유일의 선광장이다. 

일월산 자생화 공원은 일제강점기 때 제련소와 선광장(選鑛場)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땅은 30여 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심하게 오염되어 풀 한포기 자랄 수 없었고 가까운 계곡에는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었다. 2001년 오염원을 완전히 밀봉해 매립했다. 그 위를 깨끗하고 좋은 흙으로 덮고 일월산 일대에서 자생하는 순수 우리 꽃들을 심었다. 꽃향유, 하늘매발톱, 벌개미취, 일월비비추, 쑥부쟁이, 과꽃, 구절초, 낙동구절초, 상사화, 동지꽃 등 64종의 야생화와 만 그루가 넘는 향토수종의 조경수를 식재했다. 하늘말나리 같은 희귀한 꽃과 고산 지대에 자생하는 야생화도 볼 수 있다. 조르르르 물소리 들린다. 풀숲에 감춰진 수로를 타고 물이 흐른다. 연못에 일월산이 잠기었다. 조지훈의 시비가 서 있고 장승들이 굼실굼실 솟아 있다. 화살나무 이파리는 이글이글 붉다. 꽃무릇은 까맣게 바짝 말라 깊이를 살피는 듯 허리를 꺾고 있다. 사람 없는 정원에 정자들은 느긋하다. 비가 새 오줌처럼 내리더니 이내 햇살이다. 

                            전망계단을 오르다 보면 선광장 상부의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선광장 상부의 모습

옛 광산은 가파른 산에 가파르게 서있고, 가파른 나무계단이 광산을 둥글게 에워싸듯 놓여 있다. 촘촘한 계단은 조금 위험하다. 전진과 멈춤을 반복하며 계단을 오른다. 멈추어 뒤 돌아보면 꽃들의 정원이 한 눈에 보인다. 그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길의 부드러운 곡선도 보인다. 또 멈추면 소나무의 거친 몸 사이로 광산의 옆모습이 보인다. 입면을 가진 광산. 폐허가 된 크메르의 성벽 같다. 옛 이름은 용화광산 선광장이다. 선광장은 채굴한 광석을 기계적 혹은 화학적으로 골라내 광석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는 곳이다. 1939년부터 일제는 일월산에서 채굴한 금, 은, 동, 아연 등을 이곳으로 운반해 선별하고 제련했다. 

                                                  선광장 꼭대기 초입에 있는 광산의 입구
       용화광산 선광장의 꼭대기에 오르면 정원은 보이지 않는다. 눈앞은 오직 일월산과 하늘이다.

광산이 운영되던 당시에는 이곳에도 많은 사람이 살았다. 인근 주민은 천명이 넘었고 광산 노동자는 5백여 명에 달했다. 전기도 공급되고 있었다. 해방 후에도 광산은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계속 운영되었다고 한다. 폐광된 것은 1976년이다. 그리고 금속 제련 과정에서 사용한 비소나 청화소다 같은 화학성 독성 물질과 폐광석 등만 남은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참 이상하고 을씨년스럽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다니는 새소리도, 재빠르게 달아나는 다람쥐의 귀여운 발소리도, 솔방울이 떨어져 구르는 소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쪽으로 따로이 제 갈 길로 멀어지는 등산로 초입에 광산의 검은 입구가 있다. 입구에는 검은 수레가 오브제처럼 놓여 있다. 이쪽으로 몇 걸음 만에 선광장 꼭대기에 다다른다. 꽃들의 정원은 보이지 않는다. 눈앞은 오직 일월산과 하늘이다. 산자락에 구름이 신처럼 드리워져 있다. 메아리의 심연처럼, 고요하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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