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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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 읽기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10.04 0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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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교양서20 제 5강〉_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의 「마키아벨리 〈군주론〉」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여덟 번째 시리즈 ‘교양서20’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교양서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인간 교육, 즉 교양 교육이나 인성 함양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도서다. 교양의 내용은 자기 수양의 지혜를 넘어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의 문화적 전통을 넘어, 인간과 세계와 자연과 우주에 관계되는 넓은 독서를 포함한다. 전체 20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자기 수련과 타자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필요와 삶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우주의 구성을 느낄 수 있고 알게 하는 기초적인 교양 도서 20권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1. 서양사상 제 5강 박상훈 연구위원(국회미래연구원)의 강연 중 서론과 결론부를 발췌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마키아벨리 『군주론』 읽기


박상훈 연구위원은 이론과 현실 측면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마키아벨리즘에 대해 “어떤 경우에라도 좌절하지 않고 통치의 기회를 선용해보겠다는 ‘변화의 정치학’을 만들고자 한 것”에 그 가치가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저자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이라는 “이 특별한 책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 바가 아닌가”라고 말한다. 요컨대 “도덕적 인간론으로 정치나 통치의 문제를 판단할 수는 없다”면 그처럼 “실천될 수 없는 정치 윤리론을 고집하기보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정치의 세계 안에서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짚고 있다. 그렇게 볼 때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혁신”이란 “인간의 정치에는 인간의 정치만이 갖는 윤리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열었다는 데”에, 그리고 “기존의 사회 윤리나 종교 윤리를 연장해서 정치 행위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 정치의 자율성을 인간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구현할 수 있게 했다는 것”에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가 “어쩌면 인간의 정치사상에서 처음으로 노예의 도움, 정확히 말해 생산을 전담해주는 계급의 희생 없이 자유로운 정치 체제를 상상할 수 있게” 한 점에 그 특별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8월 21일, 박상훈 연구위원이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교양서20>의 5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왜 『군주론』을 쓰게 되었을까 

『군주론』은 헌정사와 26개 장(章)의 본문으로 이루어진 작은 책이다. 누구에게 헌정했을까? 로렌초 데 메디치다. 누가 출간했을까? 마키아벨리가 집필은 했지만 출간은 못했다. 마키아벨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필사본 원고로만 회람되었다. 저자 사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출간되었다. 원고를 집필한 뒤 14년 정도 더 살았는데 왜 출간하지 않았을까? 애초 공직 진출을 간청하기 위한 보고서로 시작했고 메디치 통치자에 대한 정치 자문의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 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적 상식에 반하는 책 내용 때문에 출판사가 꺼렸을 가능성도 크다. 

저자 마키아벨리가 염두에 두었던 독자는 누구였을까? 장 자크 루소는 그 유명한 『사회계약론』 3권 6장에서 마키아벨리를 매우 높이 평가한 것으로 유명하다. 거기서 루소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정직하지 못한 독서” 때문에 오해받고 있는 것을 개탄하면서, 『군주론』은 “왕들에게 조언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민중에게 교훈을 주는” 책이라 말했다(장 자크 루소, 90). 어쩌면 루소 말대로 『군주론』의 진정한 독자는 군주가 아니라 일반 민중이었는지 모른다. 16세기 활동했던 젠틸리나 보칼리니 등 이탈리아 학자들도 『군주론』의 진정한 독자는 “군주가 아니라 민중”으로 보았고, 17세기 활동했던 스피노자는 마키아벨리의 “저술 동기가 불분명”하다면서도 그가 “자유의 애호자”로 알려져 있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군주론』은 “자유 대중들이 스스로의 안녕을 절대적으로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희망에서 쓰인 것”이라 보았다(곽차섭 2020, 91에서 재인용). 18세기 활동했던 장 자크 루소 또한 『군주론』이 “정직한 인간이며 선한 사람”인 마키아벨리가 “자유에 대한 사랑을 위장”한 책이라 보았고, 오늘날 예일대 정치사상 분야를 대표하는 스티븐 스미스 교수는 “이 책의 진정한 수취인”이 로렌초가 아니라 “자신의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잠재적 군주”였다고 말한다(스티븐 스미스 2018, 206). 적어도 로렌초나 메디치 가문에게 한정된 글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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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주론』의 헌정사: 새로운 통치론을 말해보겠다 

『군주론』은 “대 로렌초 데 메디치님께 마키아벨리가”라는 제목의 짧은 헌정사로 시작된다. 첫 문장은 이렇다. 

“군주(Principe)로부터 호의를 획득하려는(acquistare) 자들은 관례에 따라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이나 군주가 가장 기뻐할 만한 것을 가지고 그 앞에 나서려 합니다.”

이어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바칠 만한 것은 “오로지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에 대한 지식”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오랜 경험과 옛 역사를 다룬 저작들에 대한 꾸준한 독서를 통해 배우게 된 것들”이란다. 자신이 “오랫동안 이 주제를 매우 신중하게 검토해 왔는데, 그 결과를 이 한 권의 작은 책자로 줄여” 바치려 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된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 이는 중요한 주제다. 마키아벨리 통치론이 ‘철학적 이성’이나 ‘윤리적 덕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보다는 ‘인간 역사의 실제 경험으로부터 얻게 된 것에 대한 존중’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만의 통치론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실제의 인간과 실제의 역사로부터의 교훈’은 마키아벨리 통치론의 핵심이다. 통치자들에게도 역사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를 더욱 더 분명하게 표현한 곳이 『군주론』 15장이다. 너무나 유명하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목이다. 

“이 주제[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이미 많은 사람이 책을 썼음을 알고 있기에, 나 역시 같은 문제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걱정스럽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논의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제안한 체계(ordini)와 크게 다르기 때문에, 건방진 일로 여겨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내 의도는 이 주제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유익한 무엇인가를 쓰는 데 있다. 나는 사변적 상상(imaginazione; imagination)보다는 사물에 [실체적 영향을 미치는] 실효적 진실(verita effettuale; effectual truth)을 추구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아무도 본 적이 없거나 실존하지도 않은 공화국과 군주국을 상상해 왔다.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의 문제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의 문제는 너무도 다르다. 그렇기에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의 문제에 매달려 무엇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가의 문제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보다는 파멸로 이끌리기 쉽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세운 정치론의 체계가 새롭고 독창적이라고 확신했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인간의 정치에 대한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인식과 처방에서 『군주론』이 가진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가 어떤 현실주의냐”인가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리 위주의 처방을 그의 현실주의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정치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 있어서의 현실주의라고 하는 게 가깝고, 실천과 처방에 있어서는 오히려 맹렬하고 적극적이어야 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현실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을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천에 있어서 그는 도덕성에 가까운 의미의 비르투 개념을 변형해 사용했는데 이 점이 핵심이다. 그는 인간에 대한 현실주의적 인식에 기초해 자신만의 도덕적인 정치론, 새로운 정치 도덕론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글이 “진지한 인물”의 것인 동시에 “경박하고 변덕스럽고 음란하게 보일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인간의 실제 모습을 숨기고 도덕적인 외양을 따르라고 했던 기존 도덕론 때문이다. 자연이 만든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유익한 정치 도덕론을 다시 세우는 일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자연은 인간을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로 창조했다. 인간에게 무엇이든 갖고 싶은 마음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운명적으로 인간은 단지 그 일부만 가질 수 없었기에 늘 불만을 갖는다. 따라서 선할 필요가 부과되지 않는다면 선해질 수 없다. 통치자는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여겼다. 

인간은 사악하기보다 나약한 존재에 가깝다. 법과 제도의 적절한 도움이 있다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좋은 인간 행동을 이끌 수는 있다. 자연은 욕망을 인간 정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어놓았지만 그것을 없앨 수 있는 힘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욕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게 만들 수는 있다. 권력에 대한 야심을 없앨 수는 없어도 한 사람의 야심을 다른 사람의 야심을 통해 제어할 수는 있다. 이익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는 없어도 사익에 대한 관심이 공익의 파수꾼이 되게 할 수는 있다. 제도화의 힘을 잘 기획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효과적으로 지속될 수 있게 할 수도 있고, 정치 체제가 부패하고 균형을 상실한다면 정치의 기술을 발휘해 주기적으로 혁신할 수도 있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정치관은 대충 이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도덕에서 분리시키거나 도덕과 무관한 정치론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다른 인식론에 기초를 두고 새로운 정치 도덕을 개척해보고자 했다. 

마키아벨리가 여러 관점에서 통치의 문제를 보려 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통치자의 시각’과 ‘민중의 시각’, 그리고 그 두 시각 사이에서 문제를 보겠다는 것, 이 점에도 『군주론』의 특별함이 있다. 

“저같이 낮고 비천한 지위(stato)에 있는 자가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지침을 제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례한 소행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땅의 형세를 그리고자 하는 사람은, 산이나 다른 높은 곳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고 낮은 곳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산 위로 올라가지요. 그렇듯 민중의 특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의 입장에 서볼 필요가 있고, 군주의 특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민중의 입장에 서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이 군주의 관점, 민중의 관점 모두에서 통치의 문제를 볼 줄 알고 있으며, 또 두 관점 사이에서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마지막 문단도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그러니 “이 책을 자세히 읽고 숙고하신다면”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이해할 것이라 한다. 메디치 통치자에게 “부여된 운명(fortuna; fortune)과 그 밖의 다른 탁월한 자질이 기약해 주고 있는 저 위대함”에 도달하시라고 한다. 도달해야 할 “저 위대함”이란 『군주론』의 마지막인 26장에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듯이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이 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끝맺는다. 

“그 높은 곳에서 어쩌다가 여기 이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리시게 된다면, 제가 그동안 얼마나 엄청나고도 지속적으로 악의적인 운명(fortuna)에 시달려 왔는지를 아시게 될 겁니다.” 

이게 헌정사의 끝이다. 메디치 통치자의 ‘상서로운 운명’과 자신의 ‘악의적인 운명’을 함께 연결한다. 구직 부탁을 천박하지 않게 표현한 그의 수사학 기법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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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치사상사에서 『군주론』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하여 

끝으로 ‘정치에 대한 생각의 역사’를 통해서 지금껏 살펴본 마키아벨리의 생각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살펴보자. 

인간의 현실에서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최선의 윤리적 결정을 고수하는 일은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면 악을 줄이는 차악의 선택도 최선처럼 여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실천될 수 없는 정치 윤리론을 고집하기보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정치의 세계 안에서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선하게 개조하는 허망한 일보다 악을 행사하는 일에 두려움을 갖게 해서 결과적으로 선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은 왜 좋은 정치론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일까?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혁신은 인간의 정치에는 인간의 정치만이 갖는 윤리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열었다는 데 있다. 기존의 사회 윤리나 종교 윤리를 연장해서 정치 행위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 정치의 자율성을 인간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구현할 수 있게 했다는 것에 있다. 

그간 많은 이들이 마키아벨리의 정치론을 도덕에 반하거나 혹은 최소한 도덕에 무관한(amoral) 인간 활동으로 이해해왔다. 사르트르의 ‘더러운 손(dirty hands)’을 인용하며 “결백하고 순결하게 통치할 수 있다고 보나?”라고 반문하거나, “열기를 참을 수 없으면 부엌에서 나가라”고 하듯, “정치가 이런 참혹한 곳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정치하지 말라!”라고 강박하는 수단으로 『군주론』을 이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정치의 현실에서 “도덕적 환상을 제거”해줬다는 평가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군주론』을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마키아벨리도 지독할 정도로 도덕적인 정치를 말하고 있다. 다만 고전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도덕이나 기독교적 윤리와 다른 정치적 도덕을 그 누구보다도 더 크고 강력하게 세우고 있을 뿐이다. 착한 사람은 정치 못한다? 정반대다. 착한 사람이 정치하되, 기존 도덕론과 다른 착함으로 정치하라. 악한 사람들에 의해 사회가 지배되지 않도록 해라. 착한 사람들은 더 착하게 사악한 사람들은 착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라. 이런 정치론을 이해한다면 —말로는 선한 정치를 내세우는데 실제로는 선한 질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모르거나 혹은 무관심한— 위선적이고 무기력한 정치가 아니라 좀 더 인간의 실제에 가까우면서도 결과적으로 더 도덕적인 정치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 얼마든지 『군주론』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당시에는 통치론/정략론을 다룬 책이 많았다. 당연히 그들은 르네상스의 정신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세네카 등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적 논의를 복원하는 데 몰두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런 지배적 견해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따라서 『군주론』을 그리스-로마 시대 정치 고전의 복원으로 말하는 것은 적어도 절반은 맞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의 새로움은 어떤 하나의 교리나 전통으로 설명되기가 어렵다. 어떤 때는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이나 고대 로마의 공화주의와는 배치되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이를 위해 고전-고대 이전, 즉 신화의 시대 다신론의 정치관조차 자유롭게 불러들일 때가 많다. 

어떤 교리나 교조에도 굴종하지 않는 것,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현실 속에서 교과서적인 고전 사상가나 철학자들의 주장을 재검토하는 것, 역사 속에서 실제 있었던 정치적 성공과 실패 사례를 중시하는 것, 기존의 정치사상에 의해 부도덕하다고 부정되었던 것들조차 인간의 자연적인 측면임을 받아들이는 것, 인간의 실제 삶을 개선하고 바꿀 수 있었던 지극히 인간적인 실천을 존중하는 것, 그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인식의 토대를 확립하는 것, 마키아벨리가 했던 일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 결과, 앞선 정치철학자나 당시의 지배적인 통치론자의 경우는 순수한 도덕성과 진정성을 중시하며 선한 영혼을 위태롭게 만들 일을 권할 수 없었던 반면, 마키아벨리는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 해야만 하는 정치적 불가피성(necessità)이 있다면 자신의 영혼을 내주더라도 그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는 적극적 통치론을 과감하게 말할 수 있었다. 기존의 선악 개념을 넘어 새로운 정치 윤리를 열어젖힌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정치론이 아무런 윤리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고 본다면 그것은 지나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천사가 아니고 또 천사에게 통치를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에 적절한 정치 윤리가 필요할 것이다. 선한 정치와 도덕적인 정치를 말한다고 정치가 더 선해지고 도덕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네체시타(necessità)라고 부르는 과거의 정치 개념을 불러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본문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네체시타 개념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상의 논의를 마무리해보자. 

고대 그리스에서 불가피성 내지 숙명을 뜻하는 여신은 아낭케(Ananke)였다. 흔히 운명의 바퀴인 방추를 쥐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로마 인들은 그녀를 네케시타스(Necessitas)라고 불렀다. 이 네케시타스를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우연을 통제하는 힘으로 표현했고, 시인 시모니데스는 신들조차 그녀에 대항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로마의 법률 격언에도 “불가피성은 법을 가지지 아니한다(Necessitas non habet legem)”라는 말이 있다. 정치에서 불가피성은 강제력 내지 폭력을 정당화시켜주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고대 코린토스에서는 불가피성을 상징하는 여신이 폭력의 여신인 비아(Bia)와 같은 신전에서 숭배되었다고 한다. 막스 베버 역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어느 종교든 폭력을 소명으로 삼는 사람(대표적으로 군인)조차 그 영혼을 구제하는 특별한 장치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국가 운영과 정치에 있어서의 윤리성이 갖는 특별함을 탐색하려 했다. 

마키아벨리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즉, 기존의 도덕적 선악론이 아니라 어떤 불가피성이 어떻게 작용하고 또 그것이 정치가에게 어떤 행동을 요청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하며, 폭력이나 기만과 같이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결정을 하게 되더라도 그로 인한 윤리적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 목적이 선하다면 어떤 수단을 선택해도 좋다는 식의 천박한 결과론이 아니라, 달리 행동해서는 안 되는 네체시타의 요구를 어떻게 따를 것이냐를 깊이 생각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라는 데 있다. 이런 마키아벨리가 없었다면, 니체가 짜라투스투라에서 초인을 “[자신의 안위가 아닌] ‘자신에게 맡겨진 과업을 추구하는(trachtet nach seinem Werke)’ 사람”이라 한 것이나, 막스 베버가 책임 윤리를 강조하며 정치란 공적 대의와 좋은 신념을 추구하려 하나 이를 위해서는 악마의 무기를 부여잡아야 할 때도 있는 인간 활동으로 정의하는 일은 있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교황이나 황제처럼 현실의 권력자들이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은 물론이고, 철학자나 지식인, 문학가, 예술가, 사회 운동가, 혁명가 등 정말 모든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았다. 혹자는 애써 부정했고 혹자는 열광했다. 혹자는 음란한 난봉꾼의 책이라 하고 혹자는 민중의 친구이자 신사의 책이라 한다. 혹자는 나쁜 책이라 말하고 혹자는 슬픈 책이라 말한다. 혹자는 자신의 음모와 권력욕을 위해 이 책을 활용했고 혹자는 민중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이 책의 가르침을 중시했다. 혹자는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추천하고 혹자는 악을 가르치는 악마의 책이라 하면서도 『군주론』에서 말한대로 국가를 운영했다. 나폴레옹은 유일하게 읽을 만한 책이라 했고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조차도 그를 정직한 사람이라 여겼다. 독일 관념 철학을 대표하는 헤겔은 『군주론』에서 “천재적인 사상가의 위대하고도 진정한 정치 개념”을 볼 수 있다고 말했고, 피히테는 “국가 건설의 고귀한 마음에서 그것에 필요한 수단들을 제시한 책”이라고 보면서 “누구도 인간의 완전함을 전제할 권리가 없음”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이 책의 진정한 성격을 어느 하나로 규정하려는 노력은 무망한 일일지 모른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마키아벨리가 그랬듯, 인간 현실의 절박한 필요에 맞게 정치의 지혜를 그때그때 조건에 맞춰 응용하고 또 선용하면 될 일일 수도 있다. 운명의 힘은 통제할 수는 있어도 거부할 수는 없다. 인간 삶의 절반은 지옥이다. 어차피 늙고 병들고 죽기 마련인 비극적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을 개선하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정치적 실천 속에서 노력하다가 떠나면 된다. 그게 최선의 정치적 삶일 뿐,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뭘 더 바라겠는가. 

『군주론』은 ‘나쁜 책’이나 ‘센 책’이 아니라 얼마든지 ‘슬픈 책’으로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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