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혐오사회, 과잉 능력주의가 낳은 ‘차별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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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혐오사회, 과잉 능력주의가 낳은 ‘차별 피라미드’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9.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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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 지방대를 둘러싼 거대한 불공정 | 제정임·곽영신 엮음 | 오월의봄 | 296쪽

 

이 책은 지방대 재학생·졸업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지방대를 둘러싼 거대한 불공정’에 대해 말한다. ‘학벌사회 대한민국’의 민낯을 드러내고, 경쟁과 승자독식에 짓눌린 교육 현실을 고발하는 책이다. 나아가 지방대 차별과 소외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 그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지방대 혐오가 지위권력 독점(대학), 지역불균형발전(지방 소멸, 공간), 줄 세우기 평가(시험, 교육 문제), 교육을 통한 세습(계급), 일자리 격차(직업) 등이 모두 걸려 있는 문제라고 말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스카이 대학 등 상위권 대학을 나올수록 더 많은 특권을 가진다. 상대적으로 대학서열이 낮은 대학이나 지방대를 나온 사람들은 차별을 받는다. 특히 대학서열에 따라 일자리 질과 생애임금이 달라지므로 경제적 불평등의 피라미드에서 한 칸이라도 나은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계급 유지를 위해 학력·학벌에 집착하게 된다.

한국 교육 현장의 가장 큰 문제는 전국 학생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고, 1등을 비롯한 상위권에게 모든 걸 몰아주는 방식에 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사들은 이 상위권 학생들에게 집중적으로 관심을 쏟아 수능과 내신점수, 상장, 동아리, 생활기록부 등 소위 ‘스펙’ 관리를 해준다. 그렇게 관리받은 학생들이 또 서열 높은 학교에 진학한다. 이들 학교에 정부의 재정지원이 과도하게 몰리면서 이 학생들의 경쟁력은 더 향상된다. 나중에는 이들이 대기업, 공기업에 취업하거나 전문직으로 일하면서 소득도 더 많이 받는다. 사회적 제도가 소수 상위권 학생들이 더더욱 발전하고,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은 갈수록 소외·배제되는 구조로 짜여 있다. 공정을 배워야 할 교육 현장에서 상위권 학생에게 모든 기회를 몰아주는 불공정이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국 교육 현실은 승자가 자원을 독식하고 그로 인해 더 강력한 승자가 되는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소수 상위권 대학과 학생들에게 각종 재정지원을 몰아주어 더욱 유리한 여건을 만드는 사이, 대학서열이 낮은 대학은 지원에서 소외돼 교육환경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때문에 대학서열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이 더욱 강해지고 지방대 등 하위권 대학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노골화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지방 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이에 대한 대안은 거의 없는 상태다.

지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담론은 ‘과잉 능력주의’이다. 시험 성적이 높은 학생이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하고, 그 학생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여기에 미치지 못한 사람은 차별과 배제를 당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런 ‘과잉 능력주의’는 자연스레 지방대 혐오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 지방대 혐오 현상이 작용하는 이유는 한국이 지독한 학벌사회이기 때문이다. ‘스카이 대학’, ‘인서울 대학’을 나와야 소위 출세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대학 간판만으로도 생애임금이 결정되는 모순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지방대 출신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대학서열이 뒤지기 때문에 이 차별의 피라미드를 쉽사리 뚫지 못한다. 이 능력주의는 슬프게도 지방대생의 내면에도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결국 이들의 내면에 패배주의가 깔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능력주의는 개인이 자신의 온전한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믿지만, 이는 세습·차별·행운 등의 우연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허상에 불과하다. 보상의 차등을 강조한 나머지 승자와 패자의 불평등을 정당화,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맹점이다. 지방대 차별과 소외는 이러한 능력주의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적용된 현상이라고 책은 주장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가 팽배하고 경쟁교육이 극심해진 이유는 뭘까? 김누리 교수는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일제강점기 사회진화론과 해방 후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이데올로기, 그리고 군사독재 정권의 권위주의가 결합하면서 적자생존·약육강식을 강조하는 경쟁지상주의가 자리 잡은 것이다. 둘째는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불평등이 심할수록 각축이 치열해진다’는 원리에 따라 경쟁이 격화한 것이다. 셋째는 근대화 과정에서 양반과 같은 기성 지배집단이 완전히 와해되면서 역설적으로 새로운 신분으로서 학벌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서열 자체가 중요하지 않도록 교육 자체의 개혁뿐 아니라 일자리 격차 해소, 증세·복지 확충 등의 경제적 불평등 완화 정책과 국토균형발전 전략 등 지역적 불평등 완화 정책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지방대 차별 문제는 이처럼 한국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 상황과 맞물려 있다.

1장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사이버 폭력 수준으로 일어나는 지방대 비하와 이로 인한 지방대생들의 상처, ‘과도한 능력주의’가 낳은 차별의 피라미드 등 ‘지방대 혐오사회’를 조명했다. 2장에서는 채용과 배치, 임금 등 노동시장에서 지방대생들이 받는 불이익, 즉 ‘불공정한 취업전쟁’을 다뤘다.

3장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2등 시민’으로 취급당하는 지방대생들의 처지를, 4장은 대학입시 때문에 왜곡된 고등학교 교육 현장을, 5장은 서울대 한 곳에 하위권 132개 대학 몫의 지원금이 집중되고 있는 ‘승자독식’ 교육재정 문제를 조명했다. 이어 6장에서는 대학서열 타파와 교육 수준 상향 평준화를 위한 ‘대학통합네트워크’ ‘공영형 사립대’ 등의 대안을, 7장에서는 일자리 격차 완화와 ‘메가 시티’ 구상, 지역균형발전 등의 개혁 과제를 다뤘다. 그리고 8, 9장에서는 ‘경쟁’ 대신 ‘연대와 공존’을 가르치는 교육 등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했다.

특히 6장에서는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제기돼온 대표적 대학구조개혁 방안인 ‘공영형 사립대’와 ‘대학통합네트워크’를 다루고 있다. 공영형 사립대는 이사진 절반 정도를 외부 공익 이사로 선임하는 등 대학 운영의 공공성을 높이고 국가 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모델이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지역거점국립대, 지역국립대, 공영형 사립대와 독립형 사립대가 참여하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동으로 입시·교육·학위 수여를 하자는 구상이다. 이들 정책의 공통점은 ‘각자도생’과 ‘승자독식’이 득세하는 고등교육 현장을 공공적 시스템으로 관리함으로써 연대와 협력, 격차 완화와 자원 분산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대학이 공공적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방법을 고민했을 때, 공영형 사립대와 대학통합네트워크는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영형 사립대는 대학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대학통합네트워크도 대학 간 연합을 통해 고등교육을 상향 평준화하면 서열을 완화할 수 있고, 극심한 입시 경쟁도 느슨하게 하는 효과도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한 대학생이 선호하는 양질의 교육 기회가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 고르게 퍼지게 되므로 지역 발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다. 경쟁력과 기득권을 잃을 것을 우려하는 서울대의 저항, 명문 사립대의 낮은 참여 가능성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갈수록 대학체제가 위기에 빠질 텐데, 소위 명문대들은 이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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