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의 계절에 유목문화를 생각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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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의 계절에 유목문화를 생각하다(1)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9.23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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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65)_ 천고마비의 계절에 유목문화를 생각하다(1)

 

힌두교도들의 성지인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바라나시는 기원전 7~5세기에는 카시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왕국이었다. 카시는 ‘빛’이라는 의미의 말이다. 그런가 하면 페르시아어로 카시(kashi)는 ‘타일’을 가리킨다. 그리고 파미르 고원 동단에 위치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도시 카시가르(Qasighar)는 줄여서 카스(喀什)라 불린다. Qasighar는 qasi ‘玉’과 ghar ‘도시’의 합성어로 ‘옥의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다.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몽골제국 제 2대 대칸(大汗)이 된 보르지긴 오고타이(孛兒只斤窩闊台, 1186~1241)의 장남 혹은 다섯 번째 아들의 이름도 카시(1215~1236[1239?])다. 카신(Qašin)으로도 불리는 그는 술을 워낙 좋아하여 24세에 주독(酒毒)으로 숨졌다. 혹은 21세에 세상을 떴다고도 한다. 그러나 몇 살 차이가 뭐 그리 중요할까? 어떻게 봐도 유목 전사로서는 그의 죽음이 자랑스러운 것이 못된다. 

카시는 중국 문헌에는 合失, 哈沙 등으로 표기된다. 대원제국의 쿠빌라이 칸과 50년간 대칸 위를 두고 경쟁한 보르지긴 카이두(Qaidu)가 그의 아들이다. 보르지긴은 씨족명이고, 카이두는 몽골 군대의 ‘영광’이라는 뜻을 지닌 개인 이름이다.  

 

이름이 카시인 건 그가 조부인 칭기즈칸의 서하(西夏) 원정 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은 서하를 하서(河西) 즉 ‘카시’라고 불렀다. 『흑달사략(黒韃事略)』에는 그의 이름을 카시타이(하서대河西䚟)라고 기록하였다. 이 이름이 몽골인의 작명방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적어도 당시의 성풍속 내지 결혼습속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몽골 제종족의 특징적 작명 인습을 고려할 때, 카시타이라는 이름은 타타르족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카시의 모친 이름 보라쿠친이 그녀가 바르쿠이(발야고(拔也古, 拔野固), 발예고(拔曳固)) 타타르 출신이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하기 때문이다. 발야고는 철륵(鐵勒) 부족 중 하나로 고비사막 북쪽에 정착해 살았다. 

카시(타이)의 모친은 오고타이 칸의 첫 정궁황후(正宮皇后) 즉 정실부인인 보라쿠친 카툰이었다. 중국어로는 孛剌合眞 可敦으로 전사되는데, 우리식 한자음은 패랄합진 가돈이라고 읽힌다. 보라쿠친은 족명 바르쿠(이)와 여성 인칭어미 ‘-친’의 합성어로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카시타이는 타타르 출신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이름 카시에 ‘-타이’(남성 인칭어미)를 붙인 것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몽골사회에서는 출신성분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라시드 앗딘의 『부족지』 중 타타르 종족편을 보면 널리 알려져 있고 각기 군대와 군주가 있는 타타르 종족이 6개가 있는데 투툭리우트 타타르, 알치 타타르, 차간 타타르, 쿠인 타타르, 타라트 타타르, 바르쿠이 타타르가 그들이다. 이 중에서 투툭리우트 타타르가 가장 중요한 종족으로 이 종족 출신은 누구라도 남자면 투툭리타이라고 부르고 여자면 투툭리진이라고 부르는 것이 관습이었다. 또 알치 타타르 출신이라면 알치타이 혹은 알진, 쿠인 출신이면 쿤타이 혹은 쿤진, 타라트 출신이면 타라타이 혹은 타라우진이라고 불렀다.

1241년 오고타이가 죽고 나서 1246년 장남 구육이 칸으로 선출될 때까지 몽골제국의 섭정을 한 이는 제2황후였던 나이만 부족 출신의 퇴레게네 카툰(Töregene Khatun, 탈열가나가돈 脫列哥那 可敦, 1186~1246)이었다. 제국의 최초 여성 통치자였던 그녀는 페르시아어로는 투라키나(Turakina)라고 표기되며, 나이만족 출신이라 내마진후(乃馬真后)라 부르기도 한다. 오고타이에게는 황후만 6명, 황비만 9명이 있었다. 여기에 60명의 첩이 더 있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유목민의 흥미로운 풍습 중 하나는 여성의 혼인 전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레게네는 처음에는 칭기즈 칸의 두 번째 황후가 된 크란 카툰의 아버지 우하즈 메르키트족의 족장 다이루 우순의 비였다가 1204년 칭기즈 칸이 메르키트족을 기습 토벌할 때 포로가 되어 오고타이에게 주어졌다.

몽골 사회에서 카툰(khatun)은 칸(khan)의 배우자나 귀부인에게 붙이는 일상적인 칭호였다. 이보다 앞서 몽골초원의 지배자였던 돌궐제국에서는 카간(khagan)의 비와 귀족 부인에게 사용되었다. 후일 중앙아시아에서 소그디아나와 페르시아를 거쳐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주해 간 돌궐족의 한 부류인 셀주크 투르크와 그 휘하에 있다가 반기를 들고 마침내 대 제국을 건립한 오스만 돌궐제국에서는 카툰이라는 칭호의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황제를 위한 여인들의 기숙학교라고도 할 하렘의 뭇 후궁들이 직급에 상관없이 카툰으로 불렸다. 조선조 궐내의 여인들끼리 김상궁, 최나인이라고 부르듯, 혹은 오늘날의 김양, 김여사처럼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황제를 가리키는 용어도 칸에서 술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황비는 물론 황제의 어머니, 여자 형제도 술탄으로 불렸다. 물론 여성형 어미 ‘–a’를 덧붙여 술타나라고도 불렀다. 여전히 칸을 사용하던 지역에서는 칸의 배우자를 카눔 또는 하눔(khanum)이라고 했다. 

 

 

◀ 아이 하눔 유적지에서 발견된 접시
사자머리를 한 두 필의 말이 끄는 전차 위에 대지의 여신 퀴벨레(Cybele)가 앉아 있고, 위쪽에 초승달과 별이 새겨져 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곳 아프가니스탄 동북부 타카르(Takhar) 주, 아무다리야 강의 지류인 판지 강과 콕차 강이 만나는 지점 언덕 위에 동방의 알렉산드리아 에우크라티데이아(Eucratideia) 유적지가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멀지 않은 곳으로 현지인들은 ‘Lady Moon(달의 여제)’이라는 뜻의 우즈벡어 아이 하눔(Ai Khanum)으로 부른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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