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방대, 생존 위한 ‘개명(改名)’…지역명 빼고 ‘국립’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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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방대, 생존 위한 ‘개명(改名)’…지역명 빼고 ‘국립’ 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9.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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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 대학 신입생 미달 사태에 인지도 높이기 안간힘
- '교명 변경’ 생존 전략…대학명에 ‘국립’ 추가
- "지잡대 이미지 벗어야"
- 자체 경쟁력부터 높여야 지적도

 

지방대학들의 교명 변경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과거에는 재정 여력이 부실하고 학생 모집이 어려운 일부 전문대나 사립대가 ‘교명 세탁’ 차원에서 이름을 바꿨다면, 최근에는 비수도권 국립대들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교명에 ‘국립’이라는 단어를 넣어 잇따라 개명을 추진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으로 대학마다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특히 모집난을 겪는 지방대학들이 이름 바꾸기에 한창이다. 생존 전략의 하나로 개명을 해서라도 인지도를 높여 모집난을 해소해보겠다는 절박한 움직임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학교 이름을 바꾼 대학·전문대학 27곳 중 국립대학은 3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방 국립대조차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위기극복을 위해 교명 변경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대학 이름에 아예 '국립'이라는 글자를 넣는 방식이 인기다. 대학들의 교명 교체 현상을 두고 단순한 ‘간판 바꿔달기’ 보다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남 진주에 있는 경상대학교는 지난 3월 ‘경상국립대학교’란 이름으로 새로 문을 열었다. 개명의 직접적 계기는 경남과기대와의 통합이지만, 학교 측은 ‘국립’을 넣기 위해 노력했다. 당초에는 ‘국립 경남대’라는 교명을 희망했다. 국립대이면서 교명에 광역자치단체인 도의 약칭을 넣은 경북대, 전남대, 충남대 등과 비교했을 때 경남지역 국립대인 경상대가 ‘경남대’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사립대인 경남대학교가 있어 우여곡절 끝에 경상국립대학교로 신청해 승인을 받았다. 

경상국립대의 등장 이후 각지에서 '국립'이라는 명칭을 넣으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목포'라는 지역명은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지잡대'로 인식되어 
지원을 꺼리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목포해양대 해사대 학부모 연합회)

▶ 국립대인 목포해양대학교는 지난달 '해양국립대학교'로 교명을 바꾸겠다며 교육부에 신청서를 냈다. 인가를 받으면 1950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목포'가 이름에서 빠진다.

14일 목포해양대에 따르면 지난달 교육부에 학교명을 ‘해양국립대학교’로 변경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목포해양대의 교명 변경 요청에 따라 교육부는 전국 타 대학과 지자체 등을 통해 교명 변경에 대한 의견조회 절차도 진행했다.

목포해양대는 1950년 ‘목포상선고등학교’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70년 동안 목포라는 지명을 교명에 사용해왔다. 해사대학과 해양공과대학 등 학부생 정원 691명 규모로 목포를 대표하는 국립대학교다.

목포해양대는 2015년부터 교명 변경을 추진했다고 한다. 서울·인천·대구·포항·광주 등 전국 동문을 대상으로 명칭 변경에 관한 의견서를 접수받았고 2018년부터 총장 설명회, 총동창회 업무협의 등 본격적인 절차가 이뤄졌다.

목포해양대가 새로운 이름으로 원하는 해양국립대라는 명칭도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7차례에 걸친 설문조사 끝에 결정됐다. 지난 6월 말 목포해양대는 교수회의를 열고 ‘해양국립대학교’ ‘한국해양과학기술대학교’ ‘해양과학기술대학교’ ‘국제해양대학교’ 등 4가지 후보를 놓고 의견을 물었고, 55%가 해양국립대학교를 새 교명으로 채택했다. 최현준 기획처장은 “교직원과 재학생도 압도적으로 교명 교체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목포해양대는 부산의 한국해양대학교와 교명에서 식별력이 있다고 보고 교육부도 승인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목포시는 지난 3일 교육부가 전남도를 통해 목포해양대 교명 변경에 관한 의견조회를 했는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목포시는 시민 1만3275명이 서명한 ‘목포해양대 교명 변경 반대 서명부’도 교육부에 전달했다. 목포해양대는 국립대학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얻으려면 지역성 탈피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목포시는 교명에서 지역명이 빠지면 역사와 전통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고 있다.

목포시 관계자는 “목포 지역명을 가진 해양대학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이 크다”면서 “목포와 함께 성장해 온 목포해양대학교가 지역명을 지워버리는 것은 70년 동안 지켜온 학교 명성과 지역민을 무시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목포해양대는 “목포라는 지역에 국한된 대학교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양 분야에 국가적 전문가를 육성하는 국립대학교가 아닌, 특정 지역에 있는 하나의 단과대학으로 오해받아 타 대학과 입시 경쟁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주장도 한다.

목포해양대는 입학생들이 목포나 전남 출신 만이 아닌,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올해는 △전남 21.3% △경기 16.5% △광주 10.2% △서울 9.1% △경남 6.8% 등 출신 신입생이 입학했다. 목포해양대 관계자는 “한국해양대와 한국교통대, 한국체육대, 한국교원대, 한국방송통신대, 한국복지대 등처럼 특수목적으로 설립된 대학 중 우리 학교만 유일하게 지역명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포시는 교육부의 교명 변경 추진상황을 지켜보면서 승인 혹은 부결 시 대응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목포시 관계자는 “목포해양대가 지역명을 썼기에 시민들이 더욱 애정을 가졌던 것”이라며 “목포시도 목포해양대가 추진하는 사업이나 용역 과제 위탁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의 ‘국립한국해양대학교’도 교명이 유사하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해양대는 목포해양대보다 재학생이 2.5배쯤 많다. 도덕희 한국해양대 총장은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 집중화 현상이라는 ‘쓰나미’를 대학 이름 바꾼다고 피할 수는 없다”며 “대학 자체의 경쟁력을 먼저 갖추는 게 우선이라, 목포해양대의 교명 교체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국립부경대? 부경국립대?”

▶ 부산의 국립대인 부경대 역시 '국립부경대'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고려 중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위기 상황 속에서 대외적인 인지도를 제고하고 국립대학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게 부경대가 밝힌 교명 변경의 이유다. 다음 달 교육부에 교명 변경 신청을 할 계획이다.

부경대는 지난 7월 ‘부경대 교명 변경을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부경대가 교명 변경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것은 지난 1996년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가 통합해 현재 부경대가 된 이후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설문조사에서 대학 측이 제시한 새 교명은 ‘국립부경대학교’와 ‘부경국립대학교’, ‘부경대학교’(현 교명 유지) 등 3가지다. 이와 함께 “교명 변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국립을 표기해 인지도 및 위상을 높임” “국립을 표기해 국립대학으로서의 공공성 및 책무성 강화” “대학분위기 쇄신 및 이미지를 개선시켜 새로운 도약의 기회 마련” 등을 답변으로 나열했다.

장영수 부경대 총장은 “현재 부경대 교명에는 공식적으로 ‘국립’이 빠져 있어서 교명 변경도 이 부분을 염두에 둔 것이다”면서 “부울경에서는 부경대가 국립대인 사실을 누구나 알지만 부울경만 벗어나면 사람들이 이를 잘 몰라서 개명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 총장은 특히 교명 변경을 계기로 최근 창의적인 혁신으로 각종 교육‧연구 성과를 거두고 있는 위상을 대외에 적극 알리겠다는 의지와 함께, 창학 100년을 앞두고 융복합 교육을 위해 학사조직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고, 외부 연구비를 역대 최고로 확보하는 등 ‘제2의 창학’을 기치로 혁신에 나선 대학의 강력한 위상 강화 의지를 피력했다.

 

'국립' '한국' 등 명칭으로 인기…종교색 빼기도

▶ 지금까지의 교명 변경 관련 사례를 보면 ‘국립’ 외에도 '한국', '서울'과 같은 단어가 인기였고, 종교계열 대학들은 종교적 색채가 덜한 교명으로 바꾸는 것이 추세였다.

2013년에는 공주영상대가 한국영상대로, 2020년에는 침례신학대가 한국침례신학대로 이름을 바꿨다. 2010년대 초반에는 '과학기술대' 열풍이 불어 서울과기대·경기과기대에 이어 부산과기대(구 부산정보대학)·동원과기대(구 양산대)·대전과기대(구 혜천대) 등이 탄생했다.

중앙일보 보도(2021.09.20)에 따르면 한국복지대와 통합하는 한경대는 ‘경기국립대’나 ‘경인국립대’ 등의 이름을 쓰기를 원하며, 올해 1월 교육부에 통합 신청서를 내면서 두 가지 교명을 함께 제출했다고 한다. 한경대는 10여년 전에도 ‘국립경기대’로 이름을 바꾸려 했지만 사립대인 경기대와의 소송전 끝에 실패한 바 있다.

한편, 국립대가 아닌 대학들은 지역 명칭을 빼는 방식으로 지역색을 버리고 있다. 최근 10년간 교명을 바꾼 대학·전문대학(대학원대학교 제외) 27곳 중 10곳이 학교 이름에서 시·군·구 단위 지역명을 뺐다.

충북 영동군(영동대→유원대), 충남 천안시(천안연암대→연암대), 경북 김천시(김천과학대→경북보건대)나 경산시(경산1대→호산대), 경남 양산시(양산대→동원과학기술대) 같은 지역명이 대학 이름에서 빠졌다.

이외에도 신입생 모집율이 하위권에 머물러 온 종교계열 대학들도 종교적 색채가 덜한 방향으로 교명을 바꾸고 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한영신학대학교·그리스도대학교는 각각 아신대·서울한영대·케이씨(KC)대로 이름을 바꿨다.

▶ 대학명에 ‘국립’을 추가하는 교명 변경에 대해 지역 대학의 한 관계자는 “자체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고,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부터 완화하는 게 급선무일 것 같다”면서 “교명에 국립을 넣는다고 학생을 더 많이 끌어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교명 변경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 대표적인 예로 ‘차의과학대’를 들 수 있다. 차의과학대는 2009년 포천중문의과대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면서 ‘경기도 포천’이라는 지역보다 ‘차병원 그룹’이라는 재단을 강조할 수 있게 됐다. 불교 학교로 오해받기도 했던 ‘대불대’는 2008~2011년 정원내 신입생 충원율이 평균 93%였지만 2012년 ‘세한대’로 이름을 바꾸고 입학 정원을 줄인 뒤 충원율 100%를 유지했다.

다만 입학 자원 감소는 교명 변경만으로 막기 힘든 거센 흐름이기도 하다. 유원대는 ‘영동대’였던 개명 이전 5년 충원율(평균 96.76%)보다 개명 이후 5년 충원율(평균 97.74%)이 소폭 상승했지만, 올해 신입생 충원율은 75.8%로 뚝 떨어졌다. ‘아신대’도 교명변경 전인 지난해 충원율(81.7%)보다 올해 충원율(58.1%)이 떨어졌다(중앙일보 202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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