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와 21세기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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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와 21세기의 미술
  • 전혜숙 이화여대·현대미술사
  • 승인 2021.09.1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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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듣는다]

■ 저자에게 듣는다_ 『인류세의 미술: 생태, 생명, 신체의 변화』 (전혜숙 지음, 도서출판 선인, 349쪽, 2021.08)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란, 그리스어 어원의 ‘인간’(anthropos, ἄνθρωπος)과 ‘화석(흔적)이 새롭게 나타나는 시기’라는 시간적 의미를 지닌 cene(καινός)를 합친 말로, 인간이 지층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지구에 큰 영향을 끼쳐 이제까지의 지질학적 시기였던 홀로세(Holocene)가 끝내고 새로운 지질시대를 시작했다는 뜻의 용어다. 지질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든 아니든 그와는 별도로, 이미 이 용어는 학계뿐 아니라 방송 등 대중매체에서도 널리 소개되면서 광범위한 의미로 현재 지구환경의 위기를 알리는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류세라는 말에 담긴 단순하고도 핵심적인 교훈은, 인간이 지질학적 한 시대를 끝맺을 만큼 자연 세계를 재설계하고 기후변화를 일으켰으며 그로써 지구 행성의 생태계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러한 사실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인류세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논쟁들이 뒤따랐고, 혹자는 기후변화의 본격적인 원인이 된 증기기관의 발명과 산업혁명의 18세기 후반을, 혹자는 더 거슬러 올라가 농업이 시작된 8천 년 전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보았으며, 혹자는 인간의 교류로 대륙 간의 생태학적 변화를 가져온 ‘콜럼버스 교환’의 시기를, 혹자는 핵폭탄이 사용되어 방사능 층이 지구 표면 위를 덮은 20세기 중반을 그 시작으로 보기도 하였다. 

인류세라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것에 미친 인류의 개입을 비판하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즉 인간의 기후변화, 미세플라스틱 등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자연의 역습을 먼저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용어에는 인류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릴 대상으로 상정하는 묵시론적 내용이 함축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인류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속함으로써 지구 행성의 유일한 생존 가능한 구세주가 되어야 할 존재임을 기대하는 또 다른 묵시적 조건이 암시되어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인류세의 의미가 사람들에 경종을 울리고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 같지만, 여전히 인간을 위험에 처한 지구와는 거리를 둔 초월적인 존재로, 혹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오해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인간을 탈중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구 행성의 미래에 대한 유일한 자연적 지배권을 지닌 대행자로서 인간을 다시 중심에 두게 되는 모순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인류세가 함축한 이러한 모순은 곧 많은 분야에서 비판을 받았으며,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전개되었고, 이 용어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대안적 용어로 자본세, 대농장세, 툴루세, 기온세 등의 명칭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어쨌든 지구 시스템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된 인류세는 인문학, 사회학, 예술 분야에서 각각 상이한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관점과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그러한 상황의 전개를 설명한다. 

이 책의 후반에서는 21세기의 미술가들이 인류세의 의미와 시대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미술 작품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인류세라는 관점에서 본 최근 미술에 대한 논의는, 전 지구적 시각을 통해 생태 문제를 다루는 거시적인 차원으로부터 시작해, 생명의 다양성과 새로운 생명 개념들의 발현으로 좁혀지며, 다시 인간 신체의 변화라는 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문제로 축소되면서 세 부분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하루(Haru Ji)와 그라함 웨이크필드(Graham Wakefield)의 <서식지(Inhabitat)>(2017년, MOXI Museum, Santa Barbara), 인터랙티브 혼합설치 인공생태계(Sand-sculpture augmented reality, head-mounted virtual reality, large-scale projection). ⓒ Haru Ji and Graham Wakefield.

우선, 인류세의 관점에서 생태의 위기를 다룬 미술들은 산업으로 훼손된 환경의 재현, 멸종 혹은 종의 감소에 대한 경고, 플라스틱과 포스트네이처의 미학, 생태적 바이오아트, 인공자연의 문제, 생태를 회복하는 ‘에코벤션(eco-vention)’의 활동, 손상된 지구에서 살아가기 등으로 실행되고 있다. 둘째, 인류세의 새로운 생명 개념들과 생명에 대한 이해의 확장 현상을 나타내는 미술들로는 미생물을 이용한 바이오아트, 생명기술의 다양한 면모를 DNA 분석방식 자체를 이용해 비판하는 바이오아트, 유전알고리즘을 통해 내생적이고 창발적인 인공생태계를 구축하는 인공생명미술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개방되고 혼성되어 비인간과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인간의 신체와 관련된 미술로는, 피부를 이용하는 미술들, 타자를 수용해 혼종성을 강조하는 작품들, 그리고 포스트휴먼적 경계 넘기를 함의하는 괴물과 사이보그로 재현된 신체로서의 작업들을 들 수 있다. 

인류세를 둘러싼 담론들과 인간을 포함한 지구 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인간이 지구의 생태계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혹은 무엇을 더 행할 것인가에 따라 각각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어 온 자본과 자연 개발,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전과 진보에 대한 반성적 재고(再考)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바로 그 진보를 향한 과학기술을 통해 기후변화마저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막연하게나마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알고 있다. 인류세를 사는 우리에게 문명과 진보라는 이상(理想)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고 생태계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미술 작품들을 통해 다루고 있는 것들은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기술발전 및 인간의 변화와 관련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류세의 미래를 살아갈 후속 세대들이 철학적, 예술적, 환경적 차원에서 계속 안고 가야 할 요건들이기도 하다. 미술이 항상 우리의 삶과 생각에 대한 거울의 역할을 하며 삶을 모방해왔고 더 나아가 시대의 변화를 가장 통찰력 있게 종합하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볼 때, 미술가들이 인류세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그들의 작업이 인간의 미래적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전혜숙 이화여대·현대미술사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미술사 전공으로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미술사학연구회회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미술사학연구회 편집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포스트휴머니즘과 관련해 뉴미디어아트, 신체변형미술, 바이오아트, 생태미술에 관한연구를 하고 있으며, 『포스트휴먼 시대의 미술, 신체변형미술과 바이오아트』, 『20세기말의 미술, 일상의 공간과 미디어의 재구성』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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