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사 만들기…역사 과잉이 초래한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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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사 만들기…역사 과잉이 초래한 오류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9.1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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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최근 이슈]

 

- 중국이 만들고자 하는 과거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

중국은 과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이 약화됨에 따라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90년대 이후 관련 연구와 애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애국주의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국가주의, 사회주의, 중화민족주의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로 강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역사학은 중국 애국주의의 핵심 분야다.

중국은 신화상의 인물인 황제, 염제, 요, 순, 우를 신석기 혹은 청동기 유적과 연계시켜 역사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동북아 역사·영토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학술회의는 이들 신화상의 인물이 고문헌자료와 고고유적과 연계되어 전설이 역사화하는 과정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중국학계의 관련 연구지형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기획되었고 그 연구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 바로 《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이다.

 

■ 『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128) | 김인희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1년 07월 30일 | 315쪽

 

▶ 왜, 중국의 고대 만들기에 주목하는가?

E. H. 카는 “우리가 어딘가로부터 왔다는 믿음은 우리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믿음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중국이 만들고자 하는 고대사를 보면 중국이 가고자 하는 미래를 볼 수 있다. 중국은 고대 중국이 세계 최고의 문명고국이었으며, 문명으로 야만 세계를 교화했다고 한다. 고대 시기 세계를 이끌었으니 당연히 미래에도 세계를 이끌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사회가 도달할 미래사회의 모습을 중국몽(中國夢)이란 몽환적인 단어로 제시했다.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좀 더 구체적인 의미는 현대화된 중화질서의 구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따라서 중국이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는 한국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중국의 고대사 만들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따라서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이영호)은 고대사 만들기와 중국의 애국주의 강화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로 《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를 발간했다. 

김인희 연구위원(동북아역사재단)은 황제가 춘추 시대 말기 문헌에 등장한 이래 신화화와 역사화 과정을 반복해서 거치며 의미가 증폭되었고, 현재는 애국주의 강화를 위해 역사화와 신화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학계 일각에서는 황제가 신석기 시대 국가를 건설하였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주나라 왕을 모델로 형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김 연구위원에 의하면 현재 황제는 중화민족의 조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역사적 실존도 학문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황제를 중화민족의 공동 조상으로 만들어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한 중국 정부의 정책은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배현준 연구위원(동북아역사재단)은 황제와 함께 중국(중화) 문명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염제 관련 문헌자료와 고고학 자료를 살펴보고, 고고학 자료와 문헌 기록이 서로 접목되어 역사적 실체로 구체화 되는 원리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심재훈 교수(단국대)는 요, 순, 우의 본향으로 알려진 산시성에서 이들이 뿌리내리는 계기와 과정, 즉 ‘전설의 역사화’라는 역사 만들기의 흥미로운 궤적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유표 연구위원(동북아역사재단)은 ‘역사와 전설’, ‘역사와 고고’, ‘역사와 애국주의’라는 틀 속에서, 소위 ‘중화제일왕조’인 하나라가 과거에 어떻게 설정되었고, 현재 어떻게 인식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 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 애국주의 강화를 위해 고대사를 만들다

중국 정부는 톈안먼 사건의 발생 원인을 역사허무주의와 민족허무주의의 잘못된 사상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역사허무주의는 중국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고, 민족허무주의는 중국 전통문화를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정부는 역사허무주의와 민족허무주의를 비판하고 애국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고대사는 애국주의 역사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고국이라는 타이틀은 애국주의 강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상주단대공정은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가 존재했던 구체적인 연대를 증명하는 프로젝트였다. 중화문명탐원공정은 중화문명의 시원을 찾는 공정으로 하상주 이전의 신화시대를 역사시대로 만들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대상인 염제, 황제, 요임금은 중화문명탐원공정의 대상이고, 우임금은 하상주단대공정의 대상이었다.

신화상의 인물을 역사적 인물로 바꾸는 방법은 비교적 단순하였다. 문헌상의 기록과 유사한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면 “누구의 도읍지다”, “누구의 출생지다”라고 결론 내렸다. 문헌 기록과 실제 고고 유적 사이에 존재하는 수천 년의 시간적 거리는 문제되지 않았다. 문헌 기록 중 유리한 것은 취하고 불리한 것은 무시하였다.

염제와 황제에게 역사허무주의와 민족허무주의를 극복할 의무가 주어졌다. 역사허무주의 극복을 위해 연구자들은 염제, 황제의 흔적을 찾았는데 가장 이른 것은 기원전 5,500년 경 신석기 중기 유적이고 가장 늦은 것은 기원전 1,900년경 청동기 초기 유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염제, 황제 유적은 중국 남부를 제외한 중국 전역에서 발견되며, 시간적으로도 3,600년의 역사를 포괄한다. 염제와 황제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이처럼 다양한 지역에서 3,6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생존할 수 없으니 염제와 황제의 역사화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 중국이 허난성 정저우시 황허(黃河)변에 만들어 놓은 거대한 '염황상'. 신화 속 인물인 염제와 황제를 역사적 실존 인물로 둔갑시켰다.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염제와 황제에게 부여된 임무는 역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민족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중화민족의 공통 조상으로서 중화민족을 통합할 의무도 부여받았다. 중국 각지에서는 염제와 황제의 조각상과 사당이 증축, 건립되고 대규모 의례를 거행하기 위한 제전도 개최되었다. 허난성의 황제고리와 산시성(山西省)의 황제릉에는 각종 정치적인 표어가 전시되고, 제왕의 기념일에는 유력 정치인들이 참여하여 중화민족의 통합을 독려하였다.

요임금과 우임금은 염제와 황제에 비해 후대의 인물로 인식되기 때문에 주로 역사허무주의 비판에 동원되었다. 요임금과 우임금의 흔적은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 찾았다. 두 임금의 실존을 증명하는 유적으로 제시된 것은 타오쓰(陶寺, 기원전 2,300년~기원전 1,900년) 유적과 얼리터우(二里頭, 기원전 1,800년~기원전 1,500년) 유적이다. 이들 유적은 궁성, 성곽, 계급의 분화, 청동기 사용을 보여 주어 초기 국가 단계에 진입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들 두 유적 또한 요임금과 우임금의 궁성임을 증명할 수 있는 문자 자료가 출토되지 않아 해당 유적이 두 임금의 도읍지였음을 증명할 수 없었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중국의 고대사 연구를 종합하면 염제는 문명의 시조이고, 황제는 제왕의 시조다. 요임금 시기 ‘중국’ 개념이 처음 등장하였고, 우임금 시기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가 건립되었다. 고문헌 기록에 의하면 염제와 황제는 전국시대 기록에 처음 등장하고, 요임금은 춘추시기, 우임금은 서주시기 금문에 등장한다. 의고(疑古)학파가 지적한 바와 같이 늦은 시기 문헌에 등장하는 제왕들이 더 이른 시기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총체적으로 뭔가 자꾸 중복되고, 논리에 맞지 않는 느낌이 있는데, 이는 전설상의 인물을 역사화 하는 과정에 발생한 오류다. 황제가 제왕의 시조라면 당연히 황제 시기 국가가 성립되어야 하나, 요임금 시기 초기 국가단계에 진입하였고 최초로 중국 개념이 등장하였다고 한다. 다시 우임금 때 최초의 중국 왕조인 하나라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중국 고고학이 지나치게 역사를 중시하는 현상, 즉 역사의 과잉이 초래한 오류다. 따라서 중국의 고대사 만들기는 절반의 성공만 거두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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