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직 중인의 방대한 가계와 인적 연계 분석…내적 연결성, 사회적 유동성, 세전성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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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직 중인의 방대한 가계와 인적 연계 분석…내적 연결성, 사회적 유동성, 세전성 밝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9.13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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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의역주팔세보 연구: 중인의 족보 편찬과 신분 변동 | 이남희 지음 | 아카넷 | 468쪽

 

조선후기는 신분 변동이 급격한 사회로 인식된다. 또 일각에서는 그 같은 급격한 변동·해체는 없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기술직 중인(中人)들의 족보인 팔세보(八世譜)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견해 차이를 넘어서 신분 변동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보여주어, 조선후기 사회 변동의 전체적인 역사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8세대 250여 년에 걸친 의관(醫官), 역관(譯官), 산원(算員)의 의역주(醫譯籌) 기술직 중인 집안의 가계와 인적 연계를 분석하고 그들의 사회적 성격을 밝혀내어 기존 신분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술직 중인들이 독자적으로 족보를 편찬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의 높아진 사회적 지위가 반영된 결과였다. 중인의 족보 편찬은 그들의 자의식이 확대되고 가문 의식이 확산한 결과였으며, 그 자체 사회 변동의 일단을 보여준다. 기술직 중인들이 편찬한 팔세보 형식의 족보는 시조의 자손을 적어 내려오는 일반 족보와는 달리, 본인을 기점으로 8대조를 아래로 기재하여 그들의 가계와 연원, 사회적 계층으로서의 성격을 가늠하기에 유용하다. ‘의역주팔세보’는 출신이 다른 중인들의 족보(의팔세보, 역팔세보, 주팔세보)를 한데 묶어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또한 같은 이름의 책자를 일컫기도 한다.

여기서 지은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주학(籌學, 算學)’이다. 주학은 과거제도로서의 잡과(雜科, 역과·의과·음양과·율과) 출신이 아닌 하급 기술직 중인으로 회계와 재정에 관한 국가 사무를 맡았다. 그러한 주학 가계의 족보가 의학, 역학과 나란히 한 책자에 묶인 것은 그들 위상의 상승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 ‘의역주팔세보’ 가계에 대한 분석에서 드러나듯, 기술직 중인들이 대를 이어 세전(世傳)하고 혼인과 교육을 통해 집단화하는 경향은 ‘급격한 신분제의 동요와 해체’라는 조선후기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 결을 달리한다.

이 책은 기술직 중인들의 족보를 연구에 본격 활용했다는 점에서 중인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의역주팔세보’에 수록된 가계 구성원의 인적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잡과방목』, 『주학입격안』 등에서 시험 합격 여부를 확인해 자료 분석에 반영했다. 중인 족보별 성관(姓貫) 및 수록 기간, 잡과별 합격자 사례와 타과 진출 실태를 다룬 표와 중요 기술직 중인의 가계도는 자료의 분석 결과를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팔세보에 나타난 실제 인물과 가계의 사례를 통해 기술직 중인의 신분 변동의 성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기술직 중인 가계의 내적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다. 『주학팔세보』에 수록된 443명 가운데 타과인 의과, 역과에도 합격한 사례는 99건이 확인되며, 이는 다섯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전체의 20퍼센트가 넘는 수치였다. 또 기술직 중인 출신으로 무과(武科)와 문과(文科)에 급제한 사례도 있었다. 영양남씨(英陽南氏) 남기혁(南基赫)은 1850년 증광시 의과에 합격하고 1871년 알성시 무과에도 합격한다. 영양남씨 가계가 역학과 의학을 같이 세전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주학 출신의 태안이씨(泰安李氏) 이제선(李濟宣)은 1879년 18세의 나이로 주학에 합격한 이후 1891년 정시 문과에 병과(丙科)의 성적으로 합격한다. 이들 문무과 합격자의 존재는 조선후기 사회적 유동성의 일단을 보여준다. 한편 『주학팔세보』에 처음 등장하는 정읍이씨(井邑李氏) 이종협(李鍾協)의 사례는 기술직 중인의 세전성을 보여준다. 이종협 가계는 대표적 주학 명문 집안으로 『주학팔세보』에 기록된 정읍이씨 46명 전원이 한 가계의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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