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이 불러 낸 중화주의 유령…중국공산당 100년 역사의 성과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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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이 불러 낸 중화주의 유령…중국공산당 100년 역사의 성과와 한계
  • 신봉수 고려대 중국학연구소·중국정치
  • 승인 2021.09.13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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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현대와 중국: 충돌/굴절/변용』 (신봉수 지음, 나무발전소, 496쪽, 2021.07)

 

14억 인구의 중국을 공산당이 100년 동안 통치하고 있다. 공산당은 단순히 권력만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초강대국 미국과의 무역전쟁, 세계적 전염병인 코로나19의 영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중국의 국가발전을 이끌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중국의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는 현대가 추구하는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중국공산당은 이런 비판에도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사회주의 강대국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연구기관들은 앞 다투어 향후 10년 내에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시진핑이 공언한 대로 2050년에는 중국의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공산당의 이런 성공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역학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지역학적인 시각은 분과학문을 통해 습득했던 지식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가능하게 만든다. 전 세계 대부분의 대학들이 철학,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분과학문에 의지하고 있다. 분과학문체계는 서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식론적 철학, 정치적 민주주의, 경제적 자본주의, 현실주의 국제관계 등과 같은 이론적인 성과들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서구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분과학문에 의지하여 중국이라는 지역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철학,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과 같은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만을 습득하는 분과학문체계로는 중국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은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말한 기축문명이 탄생한 국가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중국의 유교문명은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생각과 제도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분과학문체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철학,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의 지식들을 통합하는 지역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로 번역되는 영어의 “모던(modern)”은 기축문명의 하나인 기독교문명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5세기경에 처음 사용됐던 “모던”이라는 단어는 이교도의 시대가 끝나고 기독교의 시대가 새롭게 시작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물론 1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모던”이라는 단어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상당히 탈색돼 있다. 현대문명은 르네상스에서 싹을 틔운 인문주의가 종교개혁, 프랑스혁명, 산업혁명 등을 거치면서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의 새로운 가치관을 토대로 삼은 현대문명은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는 자각을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천부인권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가치관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으로 프랑스혁명을 통해 국가에 대항하는 시민계급이 형성됐으며, 경제적으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자본주의가 발달했다. 그리고 신대륙에 도착할 수 있었던 항해술의 도움을 받아 현대문명은 자신의 패권을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확장했다.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지역에서 식민주의를 심었던 현대문명은 마침내 중국에도 닻을 내렸다.   

 

                     위키사전에서 한자문화권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사진(출처=위키백과)

이 책은 서구열강들의 강압에 못 이겨 자신의 문호를 개방했던 중국을 지역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 집필했다. 당초 출판 의도는 “현대중국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교재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현대를 이해하기 위해서구의 현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서구사회가 현대화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과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런 다음 서구의 현대적인 가치관,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에서 축적했던 경험과 지식들이 중국에서 수용될 때 일어났던 사건들을 충돌, 굴절, 변용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역사적으로 비교 분석했다. 이를 통해 현대중국에 담긴 특징들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중국공산당은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미국 등 서구국가들이 비판해 온 일당독재를 지키기 위해 그동안 수세적인 입장에서 방어에 전념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 일인 지배체제가 강화되면서 중국공산당은 그동안의 수세적인 방어에서 공세적인 방어로 태도를 바꾸었다. 시진핑은 공산당 창당 백 주년 기념식에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괴롭히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런 변화는 중국이 현대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으로 반식민지 상태에 처한 이후 1949년 사회주의국가를 수립하기까지 백 년의 시기를 “굴욕의 세기”로 기억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체제가 수립된 이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거쳐 이제는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면서 시진핑은 그동안 취했던 수세적 방어에서 공세적 방어로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세적 태도는 중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국가발전을 이룩한 성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강대국 중국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현대적인 가치마저 자신들의 가치관으로 포섭하려는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시진핑은 집권 이후 신시대라는 접두어를 붙인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내걸고 있다.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해 온 중국이 현대를 극복하고 신시대로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담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신시대의 대안으로 삼고 있는 담론들을 보면 권력집중을 합리화하는 유교민주주의, 개발독재의 성과를 정당화하는 유교자본주의, 유교에서 자원을 빌려온 신형 국제관계 등이 똬리를 틀고 있다. 심지어 유교의 인문주의적인 특징이 현대문명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담론들은 전통시대 유교의 가치관을 자원으로 삼은 중국이 자신의 패권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디딤돌로 활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중국이 과거의 제국질서를 재현하기 위해 중화주의를 복원하고 있다는 주장을 단순히 착시현상으로 보기 어려운 대목들이다.    

이 책은 결론에서 현대문명을 대하는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하는 현대적인 가치와 공동체를 우선했던 유교적인 가치는 공존돼야 한다. 그런데도 중국은 유교문명에 담긴 전통적인 자원을 발판으로 삼아 현대문명의 가치관을 포섭하려고 한다. 이런 패권적인 태도는 공존에 필요한 화이부동이라는 유교적 지혜를 부정하는 것이다.   


신봉수 고려대 중국학연구소·중국정치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베이징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고려대 중국학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마오의 사회주의 중국과 대안적 근대성」, 「국제규범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사회구성: 주권, 민주주의」, 「과학에서 신화로: 중국공산당의 마르크스주의」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마오쩌뚱-나는 중국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중국은 제국을 꿈꾸는가』, 『정치 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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