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어떻게 탄생했는가…그 세계사적·문명사적 의미를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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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떻게 탄생했는가…그 세계사적·문명사적 의미를 탐구하다
  • 편집국
  • 승인 2021.09.1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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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_ 『태평양의 발견 대한민국의 탄생』 (고정휴 지음, 국학자료원, 370쪽, 2021.07)

 

▲ 저자가 직접 디자인한 책의 표지이다. 하단의 지도는 독일의 마르틴 발트제뮐러(Martin Waldseemüller, 1475-1522)가 지구의를 만들기 위하여 그린 12폭의 세계지도이다. 이 지도의 오른쪽은 아메리카대륙, 왼쪽은 아시아대륙이다. 두 대륙을 떼어 놓음으로써 그 사이에 대양의 존재가 드러나도록 했다. 아직 아무도 그 실체를 알 수 없던 미지의 대양 즉 태평양이 지도 위에 처음 형상화된다. 
상단의 타원형 지도는 세계지도사에서 기념비적인 걸작품으로 평가받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의 「곤여만국전도」(1602)의 저본을 이루는 「여지산해전도」이다. 이 지도 하단에 겹쳐진 두 개의 반구는 최한기(1803-1877)와 김정호(?~?)의 합작품인 「지구전도」와 「지구후도」이다. 이리하여 조선에도 바다를 통하여 하나로 연결된 세계의 모습이 알려진다. 

이 책은 시론적인 글이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매우 도전적이다. 한국 근대사의 체계를 새롭게 세워보려는 투지가 담겨 있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에서 30년 동안 과학도를 상대로 한국사를 강의해 온 고정휴 교수가 사회와의 소통을 위하여 내놓는 책이다. 그는 “요즈음 지나치게 흥미 위주의, 또는 이념적·정파적인 입장에서 한국 근현대사, 특히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하여 논하는 것을 보고, 이 분야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하여, 이제는 ‘강단사학자’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하게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도 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강의록을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반만년의 한국사에서 대한민국의 탄생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의 세 가지 논점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공간혁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혁명은 태평양의 발견에서 비롯된다. 이 바다의 발견과 항로 개척으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지구적 차원의 이 공간혁명은 근대의 자본주의 문명을 탄생시키는 발판이 된다. 

조선은 1882년 태평양 건너편의 미국에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을 맺는다. 그리고 이로부터 70년이 지난 시점에 대한민국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음으로써 태평양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수천 년 동안 대륙과의 연결과 소통에만 주력해 왔던 한국사의 방향이 극적인 전환을 이루었던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세상의 경영이 크게 바뀌어 
물산을 만국에 교역하여 통하고 모든 가르침이 천하에 뒤섞이고 
육지의 시장이 변하여 바다의 시장이 되고 
육지에서의 전쟁이 변하여 바다에서의 전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마땅히 변한 것을 가지고 변한 것을 막아야 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변하는 것을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 조선 후기에 실학과 개화사상을 연결시킨 학자로 평가받는 최한기의 『기측체의』(1836) 중 「바다에 선박이 두루 통한다」에 나오는 구절로 바야흐로 해양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간파하고 조선 또한 그러한 시대 변화에 따라가야 할 당위성을 제시한다.

 

두 번째는 체제혁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고조선 이래의 왕정체제가 어떻게 근대적인 국민국가로 전환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한국학계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한제국의 계승이라든가 그 연장으로 보는 시각과 해석이 있는데, 이는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반영한 견해라고 보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왕조(대한제국 포함)의 연속선상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혁명적 과정이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구한말과 식민지 시대에 이루어진 한인 디아스포라에 주목한다. 만주와 시베리아 그리고 태평양 건너편의 미주대륙에까지 뿌리를 내린 한인공동체에서 대한제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 수립 구상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백 년을 지탱해 온 조선왕조가 한순간에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밖에서 지켜보면서 이제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주권자가 되는 공화제 국가를 꿈꾼다. 이것이 바로 ‘나라 밖의 나라’인 외신대한(外新大韓)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세 번째는 세계관/문명관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고조선과 고구려까지는 만주와 한반도의 북부를 아우르며 ‘중원(中原)’에서 발생한 국가들과 마찰을 빚었지만, 이른바 삼국통일 이후에는 대체로 중국적인 천하 질서와 문명 속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고려가 그러하고, 조선 또한 그러했다. 이러한 중화주의적인 세계관은 청일전쟁(1894) 후 급격히 무너져 내린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동아시아를 지배해온 중화제국이 변방의 섬나라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이때 중국 못지않게 조선의 지배층과 지식인들도 충격을 받는다. 그들에게 일본의 승리는 곧 동양문명에 대한 서양문명의 승리로 받아들여진다. 이리하여 폐쇄적인 조선에도 본격적으로 서양문명이 유입된다. 그 핵심은 공화주의와 기독교(개신교)였다. 주로 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교회를 통하여 그러한 사상과 신앙이 전파된다. 이제 미국은 중국을 대체하는 문명의 중심이자 표준으로 한국민에게 서서히 각인된다.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현상을 아주 거칠게 말하면 이렇다. 중국 중심의, 대륙 중심의, 유교 중심의, 그리고 자급자족적인 농경사회에 뿌리를 두었던 한국이 서양 중심의, 해양 중심의, 기독교 중심의, 그리고 상업과 산업 본위의 사회로 옮겨간다. 고종을 비롯한 조선의 지배층이 이러한 시대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고 적응하지 못했던 반면에 해외로 이주한 한인들은 개방적인 자세로 이질적인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것은 자신들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일종의 망명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성립 당시에는 미국식 공화제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는다. 해방 후 남한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로 편입되고, 그들의 문명을 세계의 ‘표준’으로 삼게 된다. 이른바 중화(中華)에서 미화(美華)로 바뀐 것이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탄생은 태평양의 발견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러니까 이 발견에서 시작된 공간혁명 속에서 조선은 신대륙에 터 잡은 미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왕정이 아닌 공화정에 기초한 근대 국민국가 수립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곧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로의 이행과정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와 그들이 표준으로 내세우는 문명관에 안주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평양으로 가는 길이 열렸을 때 우리는 중세적인 왕조체제를 근대적인 국민국가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 바탕 위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지요. 이제는 다시 대륙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대륙과 해양, 해양과 대륙을 연결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우리의 독자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가 아시아와 태평양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양자를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접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접점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안적 문명과 공간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공간의 확장은 곧 사고의 확장으로 연결되며, 사고의 확장은 새로운 문명의 창출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대의 서구중심주의와 미국에의 일방적인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선이 중국 중심의 천하관과 중화주의에 빠져들면서 국가의 활력을 잃고 쇠잔해졌던 전례에서 역사적인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우리가 세계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제국에서 민국으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하여 애써온 우리의 발자취를 뒤돌아본다면 그러한 꿈이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자: 고정휴 포스텍·한국 근현대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이승만과 한국독립운동』(월봉저작상 수상), 『현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숨은 주역』 등이 있으며, 『이화장소장 우남이승만문서 동문편』(전 18권)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전 51권) 편찬에 참여했다. 2001년 와세다 대학의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방문학자로 지내면서 환태평양 국제관계와 지역학 성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태평양의 발견과 조선인의 세계 인식을 다루는 세 편의 연속 논문을 발표하고 단행본 출간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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