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에 나타난 현대 도시인의 허기와 그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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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에 나타난 현대 도시인의 허기와 그 치유
  • 한충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 승인 2021.09.12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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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철학하기]

 한때 우리 사회에서 요리하는 방송과 먹는 방송이 유행했습니다. 그 유행의 선두에 있던, cook放과 먹放을 결합한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를 저도 정말 즐겁게 시청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방송이 유행한 이유는 우리의 배고[아]픔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빈부 간의 격차가 점점 커지면서 빈곤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먹는 요리도 달라졌고, 맛있는 고급 요리를 먹지 못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배를 고프게 하면서 동시에 심리적으로 배를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고픔아픔 그리고 그 바탕에 놓인 슬픔을 재미있는 쿡방과 먹방이 위로해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로는 치유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치료가 아니라 진단만 하는 철학은 그 픔들을 다스려 낫도록 하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그 방법이 예술에 있다고 합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쿡방과 먹방의 요소를 골고루 지니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영화와 관련된 가장 많이 시청된 동영상으로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리틀포레스트’ 먹방 모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화는 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서 막역한 친구로 자란 세 명의 젊은이(혜원, 은숙, 재하)의 삶과 사랑을 애틋하게 보여줍니다. 혜원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후 남자 친구와 함께 치른 임용고시에서 자신만 시험에 떨어지자 고향 마을로 도망치듯 옵니다. 은숙은 마을 가까이에 있는 전문대학을 마친 후 그 마을 농협에서 일합니다. 혜원을 찾아온 은숙은 왜 갑자기 돌아왔냐고 캐묻습니다. 혜원은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은숙은 “어유, 배가 아파서가 아니라?”라고 쏘아붙입니다. 혜원은 고프고 아프고 슬픈 현대 도시인의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영화는 그녀의 픔들이 상인商人이 아니라 농인農人을 통해서 서서히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재하는 도시로 가서 대학을 마치고 취직했으나 곧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와 농부가 됩니다. 슬그머니 귀향한 혜원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다음날 찾아와 혜원에게 “밤에 혼자 자면 무섭잖아.”라고 말하며 어린 강아지를 한 마리 주고 갑니다. 실제로 혜원은 전날 밤에 겁이 나서 잠을 설쳤습니다. 원래 그녀는 사나흘 후에 다시 서울로 가겠다고 생각했지만, 겨울이 다 지나고 다시 겨울이 되었을 때야 떠나갑니다. 그리하여 농촌의 사계절 풍경 속에서 혜원의 먹고사는 모습이 맛있고 예쁘게 스크린에 펼쳐집니다. 그녀는 직접 재배한 건강한 농작물을 가지고 어머니께 배운 요리법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습니다. 혜원은 여름의 어느 날 저녁 친구들과 정다운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서울에 있는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늦었지만 합격을 축하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배고픔과 아울러 배아픔도 치유된 것입니다.

그런데 혜원의 슬픔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녀가 서울에서 겪은 고픔과 아픔의 근본 이유는 어머니와 고향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상실의 슬픔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면 기쁨으로 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귀향한 혜원은 이미 고향을 다시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찾으려 해서 찾은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찾아온 것은 홀연히 떠나갈 수 있으므로 혜원은 다시 상경해 서울에서 떠나오기가 아닌 고향에 돌아오기[아주 심기]를 준비합니다. 준비를 마친 후 귀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이제 떳떳합니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고 당당하게 고향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옵니다. 나갈 때 닫아두었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그리운 어머니가 돌아왔음을 혜원은 예감합니다. 그녀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번지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저의 건조한 설명을 읽는 것보다 생생한 영화를 직접 관람하는 것이 혜원의 치유 과정을 훨씬 더 잘 볼 수 있고, 또 관람자 본인도 치유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시간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 영화가 다른 수많은 쿡방이나 먹방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속도에 있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은 두 명의 요리사가 주어진 시간 동안 자신만의 요리를 먼저 완성하는 경쟁 구도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요리가 시간의 압박을 받아, 즉 시간에 쫓기며 만들어집니다. 이에 반해 영화 속에서 혜원은 여유롭게 시간을 따라가며 요리합니다. 가령 수제비를 만들 때 그녀는 반죽을 재워 놓는 두 시간 동안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정말로 맛있는 곶감을 먹기 위해 겨울이 오기를 느긋하게 기다립니다.

혜원과 그녀의 친구들은 사랑도 그렇게 합니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재하를 좋아한 은숙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고백하지 않습니다. 재하는 혜원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도 그녀가 말없이 서울로 떠났을 때 전혀 걱정하지 않고 그녀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으며 기다립니다. 그는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온 혜원을 보았을 때 너무나 기쁠 터인데도 그저 씩 웃으며 말없이 떠납니다. 이들의 시간은 도시인의 시간과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아마 그들은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자연의 시간時間에 따라 기다리며 생활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과 달리 도시인은 이삼 년마다 이사를 해야 하고 자본의 시각時刻에 쫓기며 생존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는 누구나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치료할 시간도 없이 경쟁은 계속됩니다. 어디서 그 시간을 구할 수 있을까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자연이 그 시간을 선물해줌을 잔잔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신비로운 시간의 힘으로 상처는 저절로 아뭅니다. 자연은 강인한 치유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충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한 뒤 동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2015년에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하이데거 철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와 란다우대학교에서 강의했고,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에 몸담고 있다. 저서로는 독일에서 출판된 박사논문 『Erfahrung und Atmung bei Heidegger[하이데거의 경험 개념과 숨 개념]』(Ergon, 2016)이 있고, 역서로는 한병철의 『선불교의 철학』, 하이데거의 『철학의 근본 물음』, 야스퍼스의 『철학적 생각을 배우는 작은 수업』,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샘』(근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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