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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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안장혁 동의대·독문학
  • 승인 2021.09.12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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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속도가 절대적 경쟁력이 되는 사회이다. 정보의 속도, 업무의 속도, 학습의 속도, 생각의 속도 등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믿음이 보편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속도중독사회에서 우리 몸은 어떤 형태로든지의 영수증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른바 ‘번아웃(burn out) 증후군’이라 불리는 완전 탈진상태이다. 이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태워버려 극심한 무기력감을 느끼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인의 일상은 '타임푸어(Time Poor)', 즉 ‘시간빈곤’이라는 말로 대변된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강도 높은 학습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물론이고,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희망고문이 되어버린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집단 피로사회의 희생물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시간빈곤에 빠뜨리는 주된 원인은 다름 아닌 속도경쟁이다. 속도경쟁의 바탕에는 인정(認定)투쟁의 치열함이 깔려있다. 사회라는 거대한 인정투쟁의 극장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존재감을 인정받기 위해 눈코 뜰 새 없는 일상을 보내야 한다. 사회는 이들에게 가정, 직장, 학교 등 수많은 무대를 옮겨 다니며 최상의 연기를 펼쳐 보이라고 요구한다. 주어진 대본은 성과, 성취, 성적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되기 위한 필수 덕목들로 짜여 있다. 이들의 잠재의식이 항상 누군가의 인정과 관심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따라서 하나같이 성공 강박증 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삭막한 경쟁논리가 첨예화된 환경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들러리 인생, 즉 패배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빠른 성과 위주의 평가 방식으로 인해 자신을 한번 실패자로 여기게 되면 자신의 잠재력과는 무관하게 실패자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큰 구조이다. 교육현장이 일종의 사회적 다윈주의의 시험대로 전락한 셈이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사회 안에서 작동하는 걸 묵인하는 논리이기에 인간의 서열화와 등급화를 정당화한다. 

아프리카 부족이 사용하는 말 중에 '우분투(Ubuntu)'라는 인사말이 있다. 그 의미는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으로 타계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강조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제안했다. 나무 옆에 딸기 바구니를 놓아두고 가장 먼저 뛰어간 아이에게 모두 다 주겠노라고. 앞 다투어 뛰어가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바구니에 다다르자 아이들은 모두 함께 둘러앉아 과일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인류학자는 아이들에게 “1등인 사람에게 모든 딸기를 다 주려고 했는데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지?”라고 묻자 아이들은 일제히 '우분투'라고 외쳤다. 그리고 한 아이가 되물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쁠 수가 있죠?” 

그렇다. 이 아이들은 우분트 정신을 토대로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온몸으로 체득해온 것이다. 일찌감치 ‘나’를 주어로 삼는 경쟁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를 주어로 하는 공존의 언어를 익혀왔기에 속도의 강박으로부터, 인정투쟁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대이다. 아울러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가 진행 중인 시점이다. 연대와 협업, 배려와 포용, 공존과 공유가 핵심가치가 되는 사회이다. 교육현장에서도 소수의 엘리트보다 ‘집단지성’에 주목하고 있다. ‘공동체(community)’라는 용어는 원래 ‘소통(communication)’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므로 미래사회의 승리의 월계관은 홀로 앞서가는 자의 머리 위가 아니라 함께 방향을 찾아가는 자들의 가슴에 씌워주는 것이 마땅하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니까.


안장혁 동의대·독문학

고려대에서 문학 석사, 독일 브레멘 대학교에서 괴테연구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동의대학교 문학인문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괴테학회 연구이사와 대한민국 독서박람회 조직위 자문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멘토인문학』, 『괴테의 친화력과 이성의 타자성』(독문), 『글쓰기와 표현』(공저), 『문학과 삶』(공저), 『독일 문학과 한국 문학』(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2019 노벨문학상 수상작),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늑대』, 귄터 그라스의 『양파 껍질을 벗기며』(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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