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정의를 가로막는 생계형 부정부패와 국가개혁의 과제
상태바
공정과 정의를 가로막는 생계형 부정부패와 국가개혁의 과제
  • 임운택 편집기획위원/계명대·사회학
  • 승인 2021.09.09 0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운택 칼럼]

* 장면 1 : “대한민국 국정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 엘리트 계층의 부정부패입니다. 권력기관 개혁의 성과와 과제는 1%의 사회 핵심 엘리트 계층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것이고, 이것이 공정사회로 가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국정개혁을 위한 여느 토론회의 주요 요지)

* 장면 2: “지역에서 고생하시면서 자녀 3명을 모두 국내 유수의 명문대에 보내시고, 그중 한 명은 S대 로스쿨까지 보내셨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어느 지역 정책 담당 공무원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덕담 – 참고로 이 당사자 공무원의 직급은 주사)

얼핏 보기에 별 상관없는 이 두 개의 장면은 우리 사회에서 공정과 정의를 왜 실현하기 어려운지 보여주는 아주 흥미로운 한 쌍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87년 체제의 성립 이후 우리 사회의 개혁과제는 항상 재벌개혁과 상위 엘리트 계층의 부패 척결에 초점을 맞춰왔고, 문민정부 등장 이후 번갈아 권력을 쥔 보수-진보세력 모두 정권유지를 위해서라도 노골적으로 이 문제를 외면하겠다고 한 적도 없다. 그러나 성과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였고, 심지어 지난 정부는 정경유착에 기반한 권력남용으로 정권의 명줄을 앞당기기조차 하였다. 

당연히 국내외에서 한국의 부패수준에 대한 평가 또한 그리 후하지 않은 편이다. 경제력은 이미 규모에 있어서 세계 11~13위권에 들어섰지만, 2020년 국제투명성기구 부패인식지수(CPI)에서 33위인 것으로 드러났고, 아시아에서조차 싱가포르와 일본 뒤에 서 있다는 점은 아시아 민주화의 선도국가로서 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도 2016년 CPI 지수가 52위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많이 좋아진 셈이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의 흑역사를 가진 만큼 우리나라가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를 타산지석으로 삼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민주화의 그 도도한 흐름과 촛불로 상징되는 아래로부터의 변혁의지에도 불구하고 공정사회와 사회정의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은 무엇인가? 나는 그 원인을 우리 안의 들보에서 찾아본다. 그래서 부러 장면1과 장면 2의 어색한 대비를 끌어냈다. 장면 1은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 사회 부패지수의 공식적 원인이다. 얼핏 부패와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장면 2는 우리 사회 중산층에게서 가장 흔쾌히 동의를 구하는 감동 서사 중의 하나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부모는 땀 흘려 일하고, 부모의 희생에 보은하는 가장 값진 자식의 노력은 명문대 입학 아닌가? 가족의 영광을 넘어 가문의 영광이 되는 첫 출발이 된다. 게다가 벅찬 감동이 넘쳐나기 위해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와야 하고, 그래서 지역에서 자식 농사 성공스토리는 감동 서사의 끝판왕처럼 들린다. 

아무튼,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이런 스토리는 생생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 누구도 월급만 가지고 자식을 치열한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게 하였는지는 묻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지만, 웬만한 고위 공직자나 기업의 중견간부도 월급만으로 자식 몇 명을 적절한 사교육도(예체능 포함) 시키면서 소위 명문대에 들여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세칭 말하듯 할아버지의 재력이 뒷받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혹간 전두환 집권 이후 사교육이 전면금지 되었던 특정 기간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말 그대로 예외일 뿐이다. 

이 서사를 조금 비틀어서 보면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의 한 축이 완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부모와 자식의 ‘노오력’이 개천에서 용 나는 서사를 만들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재정적 지원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부모의 노력은 대체로 합리적인 부패구조와 맞닿아 있었다. 금융기관에서 대출이 임계점을 넘어서도 우리 사회에서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부동산투기와 관행과 관습으로 미화된 부패의 자원이 있다. 공공이나 민간부문에서 격려금, 위로금, 전별금, 신속한 일 처리를 대가로 한 급행료 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했고, 특히 명절이 되면 역시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으로까지 격상된 특별 상여금, 부의금, 축의금은 김영란법 등장 이전까지 그 액수를 묻지 않았다. 과거 80년대 보수신문이 운동권 학생들의 비뚤어진 세계관을 분석하기 위해 시위에서 붙잡혀온 학생들 호구조사를 해봤더니 놀랍게도 선생, 공무원 등 전형적인 중산층 자녀들이 많더라는 이야기는 실제 이러한 서사구조와 맞닿아 있다.
 
당시 대학에 입학한 자녀들은 그래도 ‘청년 전태일’보다는 상대적으로 혜택 받은 계층이라 대학 입학 후에 쁘띠 부르주아적 성분에 대한 나름의 자아비판도 있었고, 투옥과 투신이 점철된 격랑의 시기에는 어떤 과감한 판단을 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했던 사람들이 던졌던 회색빛 색깔 논쟁도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기성세대로 진입을 하고 자신도 부모와 같은 입장에 서게 돼서 그런지 더 이상의 생계형 부패구조에 대한 자아비판을 듣기 어려워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 엄혹한 시절에도 내 부모의 부패가 안 보였을 리 만무하다. 그 시절에도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불렀을 당시이니 지금 돈으로 환산해도 등록금이 절대 싸지 않았고, 생활비까지 대려면 지금이나 그때나 중하층에게 대학교육은 부모에게 ‘등골 브레이커’였던 것이었다. 

사실 우리 세대의 상당수는 이런 현실을 당연히 인지했어야 했지만, 부조리하고 부패한 세상 탓을 하면서 소시민적 삶의 부패를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정당화했고, 부모님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한 부패를 가족 간의 사랑과 헌신으로 합리화하였다. 가족에 대한 자아비판은 반공 드라마에서 묘사되듯 북한 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불온한 것이었다. 일상의 소소한 부정부패는 재벌, 고위공직자와 같은 더 큰 도둑놈들의 만행 때문에 면죄부를 받았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적 정권 아래서 부패와 교육의 교환관계는 부패한 권력의 서민에 대한 상징적 증여방식이었고, 유감스럽게도 교육의 용익권은 공적이 아닌, 사적으로 전유되었다. 

부모는 자식의 출세와 입신양명, 가문의 부흥을 희망했고, 늦게 철든 자식은 뒤늦게 이에 보답했다. 그래서 교육자본의 위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점점 더 맹위를 떨치게 되었고, 강남-목동-분당으로 대변되는 현대판 맹모삼천지교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부정의 경로보다는 교육자본에 대한 부모의 헌신으로 미화되었다. 소작농이 아닌 한 시골의 농부도 선거에 눈이 먼 지역 국회의원의 도움으로 한동안 각종 작황에 대한 보조금, 영농손실보상금 등을 받아 자식의 학자금과 도시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모두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가능했으므로 오랜 세월이 지나 자식놈들이 만들어 놓은 민주정부 아래서 도덕적 비난이 주어지는 게 딱히 이해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에 미친 박정희 정권의 가장 큰 부정적 유산은 독재 아래 자행된 서슬 퍼런 국가폭력보다 우리 사회 다수를 부정부패의 공범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박봉을 이유로 연금제도를 권력의 중추 세력인 군인, 경찰, 공무원, 교사에게만 적용하였고, 기타 부족한 생활비를 부패구조 안에서 적당하게 조달하는 것을 용인해주었다. 오래전 은퇴한 부모 세대는 그런 환경 속에서 억척스럽게 자식 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적당히 도둑질하고 살았다. 독재정권 아래서 위아래로 모두 부패했기 때문에 사실 큰 권력의 부패를 비난하기가 쉽지 않다. 나눠 먹는 도둑질은 도둑질이 아니라 미덕이라는 걸 이미 우리 사회의 억척 생활인들은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종 부정부패로 감옥에 간 재벌 회장님을 경제의 구원투수로 쓰기 위해 사면해야 한다는 주장은 재계만의 것도 아니며, 오히려 생활부패의 경험에서 비롯된 국민 상당수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박정희·전두환주의자들은 생계형 보수를 강변한다. 살기 위한 ‘노오력’의 일환인데 진보주의자들 너희들은 다르냐고? 일리 있는 주장이다. 최소한 서구의 68세대가 ‘부친살해’(Vatermord)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부모세대와 전면전을 벌였던 반면,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소시민의 미담 속에 재벌과 고위 공직자 등의 큰 도둑놈 비난하면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익숙해졌다. 전쟁의 상흔과 독재의 시절을 헤쳐나온 부모 세대는 그렇다 치고 중장년의 현재 기성세대는 달랐나? 유감스럽지만 별로 그런 거 같지 않다.

김영란법이 서슬 퍼런 요즘 세상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야기냐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세상에 편법과 자기를 위한 강변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현실의 모습은 좀 더 다양해졌다. 명문대를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한 사람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로(?) 하청업체 쥐어짜는 다양한 노력을 마다한 적 없고, 회장님을 위해 약간의 민망함을 감수하고 집사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 대를 이어 살 수 있는 엄청난 연봉과 스톡옵션이 보장된다. 그뿐인가? 소위 변호사, 의사, 교수도 이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의뢰인, 제약회사 직원, 용역과 심사로 나의 활용 가치를 띄워주는 공무원과 언론, 정치인 등과의 관계에서 전문가적 지식으로 무장된 합법적 거래의 길을 찾았다. 이전처럼 뇌물 형태의 화폐적 관계보다는 계약과 용역의 관계로 포장되어 있고, 전문가적 평가와 진단을 표방하였기 때문에 소위 능력주의와 성과주의는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민주화 이후 일련의 정부는 군부정권이 아니었으므로 독재에 부역했다는 비난은 받지 않겠지만 이제는 시장의 독재가 나의 욕망을 해방시켰다. 기업 담당자와 정부 부처 담당자는 자식 교육에 돈 들어가는 상황을 어찌 그리 잘도 알고 접근한다. 초기의 어색함만 감수하면 부모세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다시 내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하면 그뿐인 다양한 사회적 화폐관계가 형성된다. 주관적 판단이긴 하나 최소한 상위 1%에 속하지 않는다는 스스로 주문을 넣는 한 이른바 성과주의의 환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윗물이 이러니 아래라고 별수 있을까? 지역사회에서 토지개발, 건물증축 인허가, 지역의 각종 국가사업의 허가는 여전히 고위 공직자와는 무관한 하위관료의 업무소관이다.  LH사태에서 보듯 지역의 이권사업에 촘촘히 연계된 하급관료는 오늘날에도 큰 도둑놈 욕하면서 성실하게 ‘노오력’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사는 하위 공무원 아닌가? 

이제 다시 대선을 앞두고 수백 명의 교수와 전문가들이 후보를 지지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지자체별로 대선공약(엄밀히 보면 표 거래를 위한 지역민원)을 앞 다투어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큰 도둑들이 다시 일반 국민을 생계형 공범을 만드는 시기이다. 왜냐하면, 이 공약의 상당수는 짓고, 부수고, 인허가를 내주는 그야말로 개발 공약이 대부분이다. 5년 임기 대선공약에 나라를 몇 개 세울만한 온갖 공약이 동원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나 이것이 우리 안의 부패구조를 작동시키는 기회라는 걸 정치인들만 모르는 것일까?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었던 어느 시점에 인터뷰했던 어느 건설회사 대표의 능글맞은 웃음이 종종 떠오른다. “저희가 4대강 사업에 참여해서 돈 좀 벌었지만, 그때 만든 보를 허문다고요? 저희야 대 찬성이죠. 짓고, 부수는 게 다 돈 아닙니까? 그래야 저희 직원들 월급도 주고... 하하하”

권력구조의 개편, 특히 재벌과 엘리트 계급의 부정부패 고리를 끊는 지속적인 사회적 노력은 여전히 시급하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이 자식교육을 핑계로 인건비과 각종 사례비에 관대해지는 순간 이 사회의 큰도둑은 언제나 당신을 지켜볼 것이다. 그들은 시민의 약한 고리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사회와 정의를 실현하는 지름길은 우리 안의 욕망을 억제하고, 국가개혁을 통해 정의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다. 


임운택 편집기획위원/계명대·사회학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 사회학 박사. 현재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비판사회학회에서 발간하는 <경제와 사회> 편집위원장, 한국이론사회학회 부회장,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을 맡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정치경제학, 노사관계, 정치사회학, 현대 사회이론이다. 주요 저서로 <전환시대의 논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중위기>, <경제의 디지털화와 노동의 미래>, 공저로 <현대사회와 베버 패러다임>, <문화, 환경, 탈물질주의 사회정책>, <청년실업과 노동시장, 그리고 국가>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