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반일·반제 연대투쟁으로서 한국독립운동과 동아시아 연대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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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반일·반제 연대투쟁으로서 한국독립운동과 동아시아 연대의 의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9.0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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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독립운동과 동아시아 연대: 중국·타이완·베트남 민족운동 및 일본 반전운동과의 조우 | 한상도 지음 | 역사공간 | 684쪽

 

일반적으로 ‘동아시아’라는 명칭은 동서로 일본열도에서 티베트고원까지, 남북으로 베트남에서 몽골고원까지를 가리키며, 유교문화권인 중국, 남북한, 일본, 베트남, 타이완을 포함한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정치적·문화적 공동체 구조를 유지해 왔다. 중국 주변의 국가와 민족들은 ‘중화체제’로 불리는 수직적인 국제관계를 골간으로 하면서도 나름대로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는 소중화적 질서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질서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일본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동아시아는 일본의 침략전쟁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이 지역 민족과 국가는 해방과 독립을 위해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야 했다.

20세기 초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국권 상실 상황에 직면했던 한국인들이 바란 동아시아 공존에 대한 염원을 보여주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선진·부강한 것으로 평가되는 일본의 선도 아래 한·중·일 세 나라 민족이 공생의 길을 찾자는 메시지였다. 일본에 대한 경계와 기대가 뒤섞여 있던 안중근의 비전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중화체제가 무너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실이기도 했다.

아울러 유럽제국주의국가들의 식민지가 된 동남아시아 민족운동세력의 일부가 피신처로 삼으면서 중국대륙은 동아시아 반제·민족운동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대륙 내 한인독립운동가들은 동아시아 반제·반일 민족운동가들과 조우하게 된다.

무릇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법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타협과 배려의 의미를 깨닫고 공존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남과의 관계는 나의 생장 조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한 사람의 주체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국가나 민족 간에도 적용될 수 있을 터인데, 상호작용하는 힘의 차이에 따라 수직적인 관계가 될 수도, 수평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때 흔히 쓰이는 ‘자주’와 ‘독자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된다. 진정한 ‘자주’란 배타적인 자세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힘과 실력을 갖추되 그것을 폭력이 아니라 포용으로 발휘할 때, 비로소 자주적인 상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적’이란 말 역시 마찬가지다. 주변의 것들과 공통점을 나눠 갖는 토대 위에서, 자기 나름의 개성을 발휘하고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독자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남과 경쟁하되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자존과 자신에 기반하는 능력과 실력을 갖추었을 때, 독자성을 지닐 수 있으리라는 뜻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개인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 온전히 독자적이고 자주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도 더 명료해진다. 이웃한 국가나 민족과의 관계를 도외시하고, 홀로 생장발달해온 민족이나 국가는 설령 있다해도 지속 불가능하다. 즉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온전히 영위하려면 연대해야 한다. ‘승전’, ‘해방’, ‘독립’이라는 목표를 공유한다면 연대의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이 책은 연구 범주를 좀 더 넓혀 동아시아 피식민지 민족의 독립운동사와 한국독립운동사의 연관성에 착안한 시도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동아시아 각국의 독립운동세력이 자기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타민족과 힘을 합해야 한다고 생각한 연대활동의 의미를 반추해보고자 했다. 

일제침략기 한·중 양 민족 간에는 공동 항일에 뜻을 모은 연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와 더불어 유럽제국주의국가들의 식민지가 된 동남아시아 민족운동세력의 일부가 중국대륙을 피신처로 삼으면서, 중국대륙 내 한인독립운동가들은 동아시아 반제·반일 민족운동가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반제’, ‘반파시즘’, ‘반일’을 공통분모로 한 이들의 활동은 중국 항일전쟁 역량의 한 부분으로, 중국의 승리를 통해 자기 민족의 해방을 이루고자 했다. 동아시아 피압박민족과 반제·반파시즘의 가치를 지향했던 제국주의 및 파시즘 체제 내 시민사회는 반패권·반강권·반침략의 가치를 공유하였다. 이러한 가치는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지향이라 할 것이다.

이 책은 일제침략기 중국대륙을 무대로 전개된 한인독립운동과 중국·타이완·베트남 민족운동과의 관계 및 연대활동 등을 통해 동아시아 근대사의 일부로서 한인독립운동의 일면을 담았다. 한국독립운동을 ‘동아시아 연대’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접근은, ‘저항적 민족주의’의 강렬한 표현에 치중하는 항일독립운동 연구의 단선적인 이해를 극복하고, 독립운동가들이 지향했던 열린 민족주의의 실타래를 풀어가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이 책을 통해 독립운동기 동아시아 민족운동세력과의 연대 사실이 갖는 현재적 의미와 교훈을 곱씹어 보고, 나아가 한국사회가 열어가야 할 동아시아 연대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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