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는 자유주의 패권을 반복할 것인가, 역외균형으로 돌아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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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는 자유주의 패권을 반복할 것인가, 역외균형으로 돌아설 것인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9.0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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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외교의 대전략: 자유주의 패권의 연장인가, 역외균형으로의 복귀인가 | 스티븐 M. 월트 지음 | 김성훈 옮김 | 김앤김북스 | 432쪽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금, 미국의 외교의 대전략이 무엇인지를 놓고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 현실주의자들, 트럼프주의자들 간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비록 현실주의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지만 미국 외교의 대전략과 관련된 주요한 맥락들을 이 책을 통해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인 스티븐 월트 하버드 대학 국제정치학 교수는 시카고 대학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와 함께 대표적인 국제정치 현실주의 이론가이다. 그는 이 책에서 탈냉전기 미국 외교가 “자유주의 패권”이라는 잘못된 대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참담한 “실패”를 겪어야 했다고 규정하면서, 거듭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25년 이상 지속되어온 원인이 무엇이고 그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저자는 미국이 자유주의 패권을 폐기하고 절제된 외교정책, 구체적으로 미국의 오랜 대전략인 역외균형으로 돌아가야 하고, 결국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1992년,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세계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고 미국인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세계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로 이루어진다면 더 평화롭고 번영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미국의 우월한 힘을 이용해서라도 세계를 바꿔야 하고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이 마땅히 그러한 지도적 역할을 받아들여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나라(indispensible country)”라고 보았다. 하지만 25년 후, 그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저자는 NATO가 동유럽으로 확장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우크라이나는 내전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리비아 등의 내정에 개입하면서 수조 달러를 낭비하고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약화시킨 끝없는 전쟁과 국가건설이라는 사회공학의 수렁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 사이 중국은 미국이 만든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경제성장을 거듭했고 강력한 패권 도전국으로 부상했다. 결국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정책은 당초 의도와는 달리 민주주의 확산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우위를 약화시키고 라이벌 국가들이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탈냉전기 미국 외교의 실패는 자유주의 패권이라는 그릇된 대전략을 채택한 필연적 결과라고 본다.

미국은 왜 자유주의 패권이라는 그릇된 대전략을 선택했고, 클린턴, 부시, 오바마 세 행정부는 왜 연속해서 그 전략을 고수했는가? 자유주의 패권은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계속 살아남았는가? 저자인 월트 교수는 자유주의 패권에 대한 미국 외교정책 커뮤니티의 의지가 확고했으며 당파를 초월해 강력한 컨센서스를 형성해왔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유주의 패권이 미국과 나머지 세계를 위한 올바른 전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유주의 패권은 이들 외교안보 기득권층에게 권력과 지위를 보장했으며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사실상 완전고용 정책이나 다름 없었다.

월트 교수는 이 책에서 어떻게 미국 외교안보 기득권층들이 정책적인 실패나 오류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커뮤니티 내에서 계속 자리를 유지해 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외교정책 커뮤니티를 ‘정기적으로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개인 및 조직’으로 정의하면서 그 핵심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블롭(the Blob)”을 구성하는 싱크탱크, 언론인, 재단, 특정 개인들의 정보를 방대하게 제공한다. 미국 외교정책을 움직이는 거의 모든 인사와 조직들이 이 책에 열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인사들만 파악해도 미국 외교정책 커뮤니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미국은 20세기 초 강대국으로 부상한 이래 역외균형자로서 활동해왔다. 서반구의 지역패권국으로서 어떤 세력도 독자적으로 유럽이나 아시아를 지배하지 못하게 막아온 것이다. 역내 세력균형이 무너질 때만 해당 지역에 개입했다. 하지만 1992년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은 자만심에 빠져 자유주의 패권이라는 대전략을 채택했고 세력균형 유지보다는 미국이 지향하는 모습대로 세계를 개조하고자 했다. “무찔러야 할 해외의 괴물”을 억지로 찾아 나섰고 그 무리한 비용과 희생을 정당화하거나 은폐해야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중국이라는 강력한 도전자가 눈 앞에 나타났다.

미국 외교정책이 총채적 재난에 빠져 있었다고 주장한 트럼프도 자유주의 패권 정책을 뒤집지는 못했다. 오히려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다시 동맹관계를 복원하고 지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외교정책의 초점을 재조정하고 있다. 미국이 다시 세력균형 전략으로 복귀하고 있는 것이다. 월트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중국과의 안보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한국과 미국 간 안보파트너십의 가치가 점점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중국의 지역 패권 장악을 막기 위해 아시아의 믿음직한 동맹국이 필요할 것이고, 중국의 힘의 그늘에 있는 국가들은 미국의 지원이 더 절실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한, 한미 간의 양자동맹은 한국의 안보정책에서 핵심축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월트 교수의 조언과 관련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미국이 한국을 지원할 필요성이나 의지가 계속 강화 또는 유지될 것인가? 만약 미국이 직접적인 개입을 중단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외균형론자인 월트 교수는 미군이 유럽에 주둔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러시아가 유럽의 현상을 변경할 능력을 상실했기 없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현상을 변경할 능력을 잃게 된다면 그는 분명 유사한 주장을 할 것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취약한 동맹 체제는 미국으로 하여금 대중국 균형연합을 주도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생각이 바뀌거나 상황이 바뀐다면 미국은 그런 부담으로부터 언제든 벗어나려 할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전략적 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역외균형론에 대해 우리 모두가 숙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미국의 역외균형 전략과 한국의 이익이 일치하는 지점이 어디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통찰할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미군의 주둔 여부가 아니라 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안보파트너십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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