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의 유작, 내면의 깊은 곳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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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의 유작, 내면의 깊은 곳으로 떠나다!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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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칼 융 레드 북(개정판) | 칼 구스타프 융 지음 | 김세영·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456쪽

 

칼 구스타프 융이 손수 책의 형태로 묶은 『RED BOOK』은 융의 ‘유고’(遺稿)라고 할 수 있다. 융은 1913년부터 펜으로 직접 글을 쓰고 그림까지 그린 이 책의 제목을 라틴어로 ‘새로운 책’이라는 뜻으로 ‘Liber Novus’라 붙였다. 융은 빨간색 가죽 장정의 이 책을 ‘RED BOOK’이라 부르기도 했다.

『RED BOOK』은 융의 표현 그대로 융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관한 기록이다. 그 후에 나온 그의 이론들은 모두 이 책에서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쓰는 16년 동안 융은 원형, 집단무의식, ‘개성화’ 이론을 개발했다. 융이 말하는 원형(原型)이란 사람, 행동 또는 성격의 모델을 일컫는다. 융은 사람의 정신이 3가지 요소, 즉 의식과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으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 무의식은 억눌린 기억을 포함하여 그 사람 본인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억을 말하며,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 하나의 종(種)으로서 공유하는 지식과 경험을 말한다. 융에 따르면 바로 이 집단 무의식에서 원형들이 나온다.

원형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이다. 어떤 사람의 내면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을 이룬 상태가 바로 자기이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의 정신은 하나의 전체로서 적절히 작용하게 된다. 융이 자주 쓰는 ‘개성화’가 바로 이 자기를 실현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개성화는 한 인간이 진정한 자기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타고난 성격적 요소들과 다양한 인생 경험, 정신적 요소들이 세월을 두고 서로 통합하여 하나의 전체로 완성되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다. 융은 이 과정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분석심리학에서 자기는 원으로 상징된다. 우리가 흔히 만다라라 부르는 것이 자기 또는 개성화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래서 분석심리학에서 인격의 중심은 두 곳이다. 의식의 중심이 있고 전체 인격의 중심이 있는 것이다. 전자는 ‘자아’라 불리고, 후자는 ‘자기’라 불린다.

이 책을 시작한 1913년은 융에게 있어서 개인적으로나 세계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시기이다. 개인적으로는 6년여 지속되었던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의 관계가 최종적으로 단절된 때였다. 프로이트와 애제자 소리까지 들었던 융의 결별은 리비도와 종교 등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와의 결별을 계기로 칼 융은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앞날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 결실이 바로 분석심리학이다.

그즈음 유럽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평화로워 보였을지 몰라도 지식인들의 눈에는 고요 뒤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융 같은 지식인들에게는 그 정세가 더욱 불안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 책에도 제1차 세계대전을 예견하는 내용이 많이 나오지만, 실제로 전쟁이 터짐에 따라, 칼 융은 자신의 환상이나 공상, 상상이 개인적인 것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이 유럽 대륙의 전체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확신이 섰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융은 자신을 대상으로 심리한 연구에 들어갔다. 이 책은 융이 직접 경험한 정신의 세계를 문학 형태로 담아내고 그림까지 곁들여 이해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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