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민본주의적 자유·평등 철학과 사상초유의 민주공화국 ‘난방대총제蘭芳大聰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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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민본주의적 자유·평등 철학과 사상초유의 민주공화국 ‘난방대총제蘭芳大聰制’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9.0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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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자유·평등철학과 사상초유의 민주공화국 | 황태연 지음 | 공감의힘 | 494쪽

 

이 책은 ‘공자의 충격과 서구 자유·평등사회의 탄생’을 규명하는 방대한 연구 프로젝트의 ‘서론격’의 연구이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저작 의도와 책 내용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머리말]

공자의 자유·평등철학을 논하려고 하면, 오늘날 한국과 중국·일본의 지식인들이 공맹경전 안에 그런 개념들이 있었냐고 반문하는 소리가 늘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17~18세기의 역사를 다 잊어버린 서양 지식인들도 그렇게 수군댈 것 같다. 자유와 평등의 이념만은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동서의 확고한 ‘통설적 무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은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 말엽까지 250년간 공자의 민본주의와 “백성의 민본주의적 자유·평등” 철학이 ‘귀족의 자유’만을 논하고 사수하던 서양으로 이식되어 서구를 혁명적으로 변혁시켰고, 그런 다음에 이 민본주의적 자유·평등이념이 서양에서 좀 더 세련된 형태로 리메이크되어 마치 원래 서양 고유의 근대이념인 양 ‘폼을 잡고’ 극동제국諸國에 재再유입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19세기 말 고종·이기李沂·이상룡·변승기·윤흥섭·이상설·이승만 등 수많은 한국 지도자들이 ‘양물洋物’로 리메이크된 이 자유·평등 개념에 대해 보인 반응을 기록한 문헌과 자료들을 뒤져보면, 그들은 서양의 ‘근대 이념’으로 재포장된 이 민본주의적 자유·평등 개념을 그리 색다른 것이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공맹경전의 ‘재탕’으로 여기고 일말의 거부감도 없이 수용했다. 서구의 자유·평등이념도 본질적으로 유교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자의 민본주의적 자유·평등 철학이 어떤 표현과 개념구조로 짜여 있는지, 그리고 이 철학이 어떻게 극동제국에서 백성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 나아가 서양의 근대적 자유·평등사회를 탄생시켰는지를 규명하는 방대한 연구 프로젝트의 도입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책의 주제는 일차적으로 공자의 민본주의적 자유·평등철학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이 민본주의적 자유·평등이념이 극동의 유교제국에서 군신공치·향촌자치·도시자치 등 실제의 참정·자치제도로 구현된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밝혀내는 것이다.

공자의 자유·평등철학을 따로 떼어내어 이런 식의 단행본으로 간행하는 이유는 연구 프로젝트의 방대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학을 고리타분한 삼강오륜 윤리로만 축소시킨 ‘성리학자’라는 ‘목소리 컸던 유학자들’이 특히 공자경전에 담긴 자유·평등 명제들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이 명제들의 두서너 개를 읽었더라도 왜곡·변조·묵살·추방해온 통에 이 유교적 자유·평등명제들이 거의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황태연 교수

공자의 자유·평등철학이 현실적으로 이룩한 종결작은 아마 “난방대총제蘭芳大聰制”일 것이다. 이 “난방대총제”는 1760년 중국 해외이주민들에 의해 보르네오 섬에 창건되어 140여 년 동안 존립하다가 청국의 멸망을 틈타 침공한 네덜란드 제국주의자들에게 1911년 패망한 인구 100만 명 규모의 유교적 민주공화국이었다. 이 난방대총제의 창건은 유사하게 공자철학의 영향으로 1776~1784년 사이에 독립전쟁과 내부논쟁을 통해 창건된 인구 200만 명의 ‘미합중국’보다 빠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독립선언(1776. 7.)이나 작은 민주공화국 버지니아 주의 건국(1776. 6.)보다도 이르다. 따라서 “난방대총제”는 사상초유이자 인류 최초의 민주공화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난방대총제 공화국은 고대 그리스의 ‘노예제 민주정’이나 로마의 ‘노예제 공화정’, 또는 중세 이탈리아 도시들과 네덜란드에 한때 들어섰던 ‘귀족’ 공화국, 또는 크롬웰 시대 영국의 ‘귀족’ 공화정과 판연히 다른 ‘민주’ 공화국이었다. 그것은 귀족도 없고 노예도 없는 ‘온 백성’의 ‘민주’ 공화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노예도 없고 귀족도 없이 짧은 임기(4개월)로 민선된 치자들이 민주정치를 시행했던 ‘난방대총제’는 노예제를 폐지하지 못하고 출범한 미합중국 민주공화국보다 더 명실상부하고 더 실질적인 민주공화국이었다. 미국 13개 독립주 중 8개주는 노예주(slave states), 5개주는 자유주(free states)였다. 1776년 독립 당시 미합중국 총인구 200만 명 중 약 70만 명(35%)이 노예였다. 노예주만 계산하면, 노예 인구는 8개 노예주의 전체 인구에서 50%를 점했다. 반면, 5개 자유주가 가진 노예는 8000명을 넘지 않았다. 따라서 미합중국의 5개 자유주만이 난방대총제와 견줄만한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들이었다. 이 5개 자유주의 독립 당시 인구는 도합 100만 명에 조금 못 미쳤다. 따라서 이 5개 자유주는 그 인구를 다 합쳐야만 규모 면에서 100만 명의 난방대총제에 겨우 견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난방대총제도 미합중국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난방대총제는 그간 서너 명의 네덜란드인과 두세 명의 중국학자들에 의해서만 연구되어 왔고, 세계의 주류학계에도, 또 한국 학계에도 전혀 알려진 바 없다. 필자는 이 난방대총제를 공자의 자유·평등철학과 ‘대동민국大同民國’ 이념의 현실적 완결형태로 보고 이 책을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최초로 소개하는 바다. 그래서 ‘난방대총제’를 하나의 장절章節로 독립시켜 별도로 상론하고 책의 제목을 ‘공자의 자유·평등철학과 사상초유의 민주공화국’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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