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 3호…포스트-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를 성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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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 3호…포스트-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를 성찰하다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9.06 0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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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인: 가을(2021) | 소명출판 편집부 지음 | 소명출판 | 307쪽

 

주요 문예지들이 폐간된 가운데 2021년 봄호로 창간을 알린 계간 『문학인』 3호가 발간됐다. 〈문학인〉은 인문학 관련 전문 서적을 약 1,600여 종 가까이 펴낸 소명출판사가 펴낸 문예지로 한국문학과 외국문학계가 그동안 일구어낸 학문적 성과와 문학의 동향을 살펴 기존의 현장지와는 다른 접근방식으로 문학의 존재방식과 의미를 탐구하고 제안하는 계간 문예지다.

 

〈문학인〉은 문학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어가는 흐름에 역류하여 문학의 독자적 위의를 역사적, 논리적으로 탐구한다는 점에서는 학문적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문학이 활발하게 존재 방식을 변형하면서 현실을 관통해가는 리듬을 해석하고 평가한다는 점에서는 비평적 촉수를 늦추지 않으려고 한다.

창작과 연구와 고증과 비평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본격 문예지로서의 품격을 지키고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묵직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자 한 〈문학인〉의 창간 취지는 3호에도 이어지고 있다. 

▶ 「문학인의 말」을 통해 이번 호의 서두를 장식한 고명철 문학평론가는 ‘팬데믹 시대, 아직도 구미중심의 근대성에 갇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우리 사회의 자성을 요구한다. 그는 한국사회가 구미 중심의 근대성 프레임 안쪽에서 또 다시 그것을 재생산하는 데 작동하는, 그래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심부로 한국사회가 자리바꿈함으로써 전 지구적 파괴와 죽음을 앞당기는 데 동참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멈춤’이 지닌 ‘통근대성’, 그 상상력의 힘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철학자 엔리케 두셀이 주장하는 ‘통근대’의 문제의식은 “근대성의 유럽적·합리적·해방적 성격을 포섭하되, 근대성이 부정한 타자성의 해방이라는 세계적인 기획으로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 이번 호가 특집으로 내건 것은 ‘민주주의의 적들’이다.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며 인류 역사가 수호해 온 민주주의 또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 한국, 일본, 중국의 현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통해 인류가 지켜온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협하거나 가로막는 적들의 실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특집〉 ‘민주주의의 적들’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 온 요인을 살펴보는 것은 물론 포스트-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에 대해 그리고 포스트-팬데믹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열어가야 할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 <특집>의 첫 글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다룬 강우성 서울대 교수의 「트럼프 바이러스」이다. 강 교수는 이 글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적은 트럼프를 비롯한 우파 보수주의나 자유주의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이들을 공모하게 만드는 구조적 악순환의 고리라고 진단한다. 일반 민중들의 분노와 열패감을 음모론과 인종차별주의와 애국주의로 물들이고 자본과 기득권에 맞선 투쟁을 다문화주의적 정치적 올바름의 논리에 포섭하는 타협적 민주주의의 형식이야말로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묻는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릴 새로운 급진 정치학은 미국에서 불가능한가? 포퓰리즘적 우파의 적대 정치와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정치적 올바름의 논리를 넘어선 새로운 민주주의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강 교수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나는 팬데믹의 와중에 터져 나온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와 ‘아시아인 혐오를 멈춰라’라는 반인종차별 정치학의 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포퓰리즘적 적대 정치에 맞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형식적 규범을 재확립하고 그 친자본주의적 외설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좌파가 주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 점에서 팬데믹이 초래한 위기의 상황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체성의 정치학과 포퓰리즘의 외설성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연대하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바로 팬데믹이 제공한 급진적 보편성의 공간을 정치적으로 사유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 <특집>의 두 번째 글 「민주주의의 친밀한 적」에서 조형근 사회학자는 코로나19 충격 속의 한국 사회를 톺아보며 민주주의의 친구와 적은 어떻게 나뉠까를 생각한다. 그는 인민의 자격을 생각하면서, 데모스의 통치, 즉 민주주의는 통치할 자격이 없는 자들의 통치, 몫이 없는 자들의 통치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데 주목한다. 

그가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는 “젊어서 민주주의의 깃발을 휘두르고, 한때 뜨겁게 촛불을 들었던 이들 중 주류의 관점에서 인민의 자격을 따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비극적 죽음을 맞은 자기 진영의 지도자는 자격 없는 인민 따위가 갖기에는 너무 과분했다는 경멸의 언사를 서슴없이 내뱉는다. 배움이 모자라서 보수야당을 지지한다면 인민을 나무라기도 한다. 큰 정당 밑에 모이라며 작은 진보정당들을 줄 세운다. 자신들의 민주적 능력과 업적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컸던지,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역사의 반동이라도 된 듯 비난하기도 한다. 더 많은 인민들, 약하고 힘없는 이들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연대라는 말이 실종됐다. 중산층이 되면서 잊어버린 것 같다.”

민주주의를 ‘실하고 상처 없는 것들을 가리는 초월적인 손을 용납하지 않는 체제,’ ‘어떤 힘, 법칙, 명분으로도 인간 집단의 자격을 따지지 않는 체제’, ‘셈해지지 않던 것이 셈해지고, 몫 없는 자들이 자기 몫을 기입하는 체제’로 이해하고 싶은 필자에게 이들은 바로 ‘민주주의의 친밀한 적’인 것이다. 

조형근 사회학자에 의하면, 말할 권리를 갖지 않는 자들이 말을 하는 것, 몫이 없는 자들이 몫을 제기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1987년 이후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시작해 있었고,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이 먼저라고 조언한다.

◦ 이어 일본의 민주주의를 다룬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는 「말소된 ‘저항’과 ‘가해자 없는 피해자’ 신화」라는 글에서 일본의 ‘전후’와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일본에서는 1945년 8월15일 이전과 이후를 ‘전전’과 ‘전후’로 나누어 부른다.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전쟁의 유무를 포함한 가치체계의 전도가 이루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치체계의 전도란 민주주의의 도래를 뜻한다. 즉 전쟁의 종결은 파시즘의 종결이며, 전후의 시작은 곧 민주주의의 시작인 셈이다. 

그런데 권 교수에 의하면, 일본 민주주의의 계기가 내재적이든 외재적이든, 1945년 9월 15일을 전후로 해서,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하는 ‘무혈혁명’을 통해 가치체계의 전도가 일어났다면, 당연히 피해자를 준별하고 이 피해가 국가권력에 의해 어떻게 자행되었는지, 그 피해의 실태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배상/보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이른바 ‘이행기의 정의’와 같은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1945년 8월 15일을 가운데 두고 이를 전전과 전후로 나누는 시점에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시점은 투영되어 있어도, 또 전투행위의 유무라는 ‘평화주의’의 관점은 투영되어 있어도, 전쟁과 침략으로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준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시점은 말소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따라서 이 말소가 결과적으로 침략과 전쟁 피해자를 국가/민족 간으로 구분하고, 이를 국가 대 국가의 대립구도로 전환시켜, 일본인 피해자를 일본이라는 국가의 틀 안에 가두고 이들의 소리를 봉쇄함으로써 이들 일본인 피해자와 아시아의 피해자의 관계를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박탈해버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 <특집>의 마지막 글은 중국의 민주주의를 다룬 박민희 『한겨레』 논설위원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이다. 현재 시진핑 시대 중국 공산당은 사회 아래로부터 싹튼 변화를 수용해 개혁을 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거부하고, 공산당과 최고지도자의 권력을 강화해 사회를 강하게 통제하면서, ‘국가의 목적’을 위해 인민을 동원하는 ‘익숙한 낡은 길’을 선택했다. 이를 위해서 동원된 것을 ‘위대함과 위태로움’의 모순적인 두 개의 깃발이라고 박 논설위원은 칭한다.

한편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공산당의 영도 아래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달성해 ‘중국몽’을 실현하겠다는 통치 정통성을 강조하며, 이와 함께 사회 내부의 ‘저항적 세력’과 ‘외부 세력’이 호시탐탐 중국의 부상을 방해하며 중국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계속 과장하면서, 이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에게 더욱 권력을 집중하고 충성해야 한다는 선전을 계속하고 있다.

박 논설위원에 의하면 중국공산당 통치 아래서 실현된 초고속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이 상당수 중국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공산당과 시진핑의 위대함에 대한 요란한 선전, 강력한 국가의 억압과 애국주의로 부풀려 놓은 자신감 아래 실밥이 터질 듯 팽팽히 부푼 위기감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 우려한다.

박 논설위원은 묻는다. 시진핑 주석과 중국공산당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과도하게 자원을 집중하고, 사회 내부의 다양성을 말살해가면서 인민을 충성스런 동원의 대상으로만 만들어 내려는 시진핑 시대 중국의 길은 중국을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가? 박 논설위원이 내리는 결론은 중국이 아래로부터의 변화의 동력에 대해 포용적 태도를 보이고 인민들에게 정당한 발언권을 줄 수 있어야, 국제사회와도 원만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중국의 현실은 권력이 내부의 이견을 탄압할수록 성찰의 공간은 사라지고 사상적 황폐화는 심각해졌고, 외부와 소통하기 힘든 공격적인 국가주의만 요란하다는 것이다.

 

▶ <창작>의 詩 부분은 김행숙의 ‘2020년/8월의 사이렌’, 나희덕의 ‘젖소들/매미에 대한 예의’, 박철의 ‘인절미-진실에 대하여/패리스’, 송경동의 ‘눈부신 폐허/놀자 놀자 신명 놀자-하애정의 도깨비굿에 붙여’, 오은경의 ‘너의 부분-울타리를 넘어서/멀고도 가까운’, 이재무의 ‘곡우/첫사랑’, 조용미의 ‘달리아의 붉음/매화書’, 황인찬의 ‘느린 사랑/그 해 구하기’, 그리고 소설 코너는 이경란, 이수경 작가의 신작 소설 ‘식은 수중기의 작용’과 ‘나는 고인 눈물이다’, 산문은 구인모의 ‘김억, 당신이라는 ‘환幻’에게’, 구소윤의 ‘열여덟, 앞으로-코로나19 4차 대확산에 즈음한 한 여고생의 기록’, 서정의 ‘불안 너머’, 오길영의 ‘예술원 단상’, 오민석의 ‘책 읽기의 추억’, 전승희의 ‘환경 위기 23시의 단상’으로 꾸려졌다.

▶ 그밖에 <리뷰>는 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에 대한 정선태의 리뷰와 염무웅의 인문서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에 대한 이경재의 리뷰, 윤지양 시인의 첫 시집 『스키드』에 대한 박동억의 리뷰, 편혜영의 소설 『어쩌면 스무 번』에 대한 성현아의 리뷰, 그리고 신지선·강설의 ‘한중수교 30년을 바라보며, 한·중 젊은이의 시각’으로 구성했다.

▶ <정전의 재발견>에서는 박동욱 한양대 교수의 ‘천명을 가르쳐 주는 책, 『중용』’, 정치적 모더니즘 성향의 아방가르드 영화감독으로 평가되어온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아이Kino-Eye』에 대한 정찬철 한국외대 교수의 ‘리코딩 키노아이Kino-Eye’를 만나볼 수 있다.

▶ 그리고 〈문학인〉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지면 〈이미지로 보는 근대〉에서는 『대경성도시대관』 요리점 편⓶로 현대인들에게도 낯익은 공간이나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의 ‘카페’와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유곽’ 형태의 음식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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