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학살사건과 역사수정주의 문제”
상태바
“관동대지진 학살사건과 역사수정주의 문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9.06 03: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학술회의]_ 동북아역사재단, ‘1923 관동대지진과 학살사건’ 국제학술회의

 

                                          관동대지진 당시 폐허가 된 도시와 조선인 학살

1923년 9월 1일에 일본 관동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였고, 2일에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에서 무고한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 사회주의자 등이 학살당했다. 이것을 관동대지진 학살사건 또는 ‘관동대학살’이라고 부르고, 당시 희생자의 압도적 다수인 6,661명이나 되는 조선인이 희생되었기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총 10~14만여 명, 부상자 10만 3,733여 명, 피난민 약 190만 명이라고 발표되었다.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 제국주의 일본에서 발생한 관동대지진과 학살사건은 다른 역사적 사건에 비해 다소 소홀하게 다루어져 온 측면이 있다. 역사 교육이나 교과서의 기술에서도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최근 자이니치(在日) 코리언을 포함한 외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혐한(嫌韓)’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익 세력과 역사수정주의 세력에 의해 관동대지진 학살에 대한 사실 왜곡과 부정, 학살의 정당화와 책임 회피, 추모제 방해 등이 자행되고 있다. 관동대지진과 학살사건은 민족차별에 의한 민족 수난사라는 점에서 기억되어야 하고, 학살의 책임과 주체에 대한 규명과 함께 희생자에 대한 추도, 기억의 계승과 교훈 등 오늘날 남겨진 과제들에 주목하여야 한다. 과거사를 둘러싼 역사인식의 차이가 한일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기에 한일 양국의 시민들은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사건을 함께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23년 9월 1일은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을 맞는 날이다. 이에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이영호)과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8월 31일 “관동대지진 학살사건과 역사수정주의 문제”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98년 전인 1923년 9월 1일에 일본 관동지방에서 발생한 관동대지진 시 발생한 학살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남겨진 과제와 교훈을 논의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관동대지진 당시 무고한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은 민족차별 문제에서 야기된 수난사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에 대한 연구와 우리의 관심은 충분하다고 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일본 사회에서는 우익세력에 의해 ‘혐한’ 시위가 발생하고 희생자 추도 행사가 방해받는 일도 발생했다.

최근에는 이들 역사수정주의 세력이 활동 범위를 넓혀 구미 사회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학술회의는 이러한 역사수정주의 세력에 의한 역사 왜곡과 은폐, 심지어 부정의 행태를 알리고 지혜롭게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미국의 연구자들이 논의하고 과제 등을 검토하기 위한 자리이다.

 

이영호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개회사에 이어 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의 환영사, 유기홍 국회 민주당 의원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번 학술회의에 참석한 미국과 일본, 한국 연구자들의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나카 마사타카(田中正敬) 일본 센슈대 교수는 ‘최근의 배외주의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리포르’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를 통해 최근 일본 사회의 헤이트 스피치와 혐한 정서를 소개하고, 특히 일본 내 한국인들과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에 대한 하버드대학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문제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 램지어 교수의 입장은 늘 권력이나 다수자 편에 있으며, 피해자를 교육 수준이 낮다, 범죄자가 많다, 등치는 사람 등으로 자리 매김하여 공격한다. 그는 그 근거로 종종 일본의 배외주의자의 서술을 인용한다. 이들 서술을 무비판적으로 논거로 삼는 것은 학문 절차상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서술을 집필한 배외주의자나 그것을 원조하는 한미일의 정치세력에게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보증했다는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에 합치되는 서술이나 이론은 이것저것 이용하는 한편,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연구나 사료는 무시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은 그의 입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상정하고 있다.

◦ 다나카 교수가 본 램지어 논문은 모두 방대한 참고논문의 열거로 그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램지어 교수가 어떻게 이해하고, 논문의 어디에 이용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즉, 註가 거의 없다) 것이 램지어 논문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된다.

◦ 실증방법이 결여된 이러한 연구가 하버드대학 연구자의 논문으로 학술잡지에 게재됨으로써 배외적인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는 구조가 보인다.

◦ 문제는 램지어 교수에 그치지 않는다. 심사위원이 아무리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램지어 논문에 보이는 배외적인 내용은, 그것이 ‘학문의 자유’가 아니라 ‘학문적 윤리’와 관련된 것이라고 간파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램지어 논문은 심사를 통과해 버렸다. 복수의 논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램지어 논문이 동아시아가 아니라 구미사회의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 계급에 대해 똑같은 주장을 했더라면 논문은 심사를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시아에 대해서라면 배외적인 주장을 해도 허용된다는 램지어 교수의 사상과, 그것을 통과시킨 논문 심사위원의 사상은 상통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 또한 다나카 교수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있는 요인의 하나로 사료의 결여를 들었다. 종래 역사연구자들의 연구는 대부분이 공문서의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지방의 진상규명 활동에서는 학살 현장 주변 주민에 대한 청취 등 목격자, 가해자, 체험자의 증언과 회상이 집적되어 왔다. 따라서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려는 견해에 대응하려면 배외적인 논조의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국가 권력이 학살에 관여한 것을 정확히 기술해야 하고, 부족한 사료를 보완하기 위해 공문서와 증언을 모두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2월 25일 열린 램지어 교수 규탄 집회

성주현 교수(1923제노사이드 연구소)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국내 연구와 일본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동향’을 주제로 하여 한국을 중심으로 한 관동대지진과 학살사건에 대한 연구와 과제 등에 대해서 발표했다. 

◦ 성 교수에 의하면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일본 사회에서 파시즘 사상이 대두되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관동대지진이 발생함과 거의 동시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이를 계기로 군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이와 함께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조선인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조선인에 대해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는 유언비어가 경시청 삐라에 의해 유포되어 조선인이 학살되었다고 밝혔다.

◦ 이러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하버드대 로스쿨의 램지어 교수의 일본국 ‘위안부’의 성노예를 부정하는 논문을 발표해 한국, 미국,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램지어는 최근까지 ‘위안부’ 부정과 함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제주 4.3과 재일조선인, 일본 내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적 시작을 드러낸 논문을 발표해 왔다. 이는 일본 역사주정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 역사수정주의는 일반적으로 ‘기존의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지만, 일본 역사수정주의는 역사부정론으로 변질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 역사수정주의의 논리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에 대해서도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6천 명이라는 조선인 희생자는 과장된 것이고, 설령 조선인이 살해당했다 해도 이는 정당방위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 일련의 램지어 사태에 대해 ‘위안부’와 관련된 비판적 연구는 상당한 논문이 축적되었지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역사부정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조경희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왜곡을 ‘조선인=범죄자 프레임’, ‘공권력에 동화된 시각’의 키워드를 통해 램지어 논문을 비판하고 있다.

                                                  자경단 (출처 시미즈서원)

◦ 조경희는 램지어 논문에 대해 “자경단을 학살의 주체가 아닌 공권력을 대행한 지역결사로 보고, 조선인들을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로 재현함으로써 자경단에 의한 학살이 마치 조선인에 대한 정당방위였던 것처럼 역사를 왜곡했고, 학살의 규모와 심각성을 축소시켰다”며 연구의 진실성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음을 비판했다.

서종진 연구위원(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 역사수정주의와 관동대지진 학살사건에 대한 역사교육’을 주제로 일본 사회에서의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움직임을 통해 관동대지진과 학살사건에 대한 역사교육의 변화를 검토하고 그 문제점에 대해서 발표했다.

◦ 일본 사회 내의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영향력 확대는 관동대지진과 학살사건의 본질을 왜곡 은폐하고 있어서 우려스럽다. 일본 내 보수우익과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주장들을 근거로 신문보도가 이어지고 신문보도가 문제로 삼은 부분의 교과서 기술에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역모와 같은 단체를 결성함으로써 역사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보수언론을 통한 교과서 공격도 역사수정주의 세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새역모 계열의 역사교과서의 점유율이 그다지 높지 않지만 이들의 교과서 공격으로 다른 교과서의 기술 내용이 축소되고 모호하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또한 최근 희생자 추도식에 도지사의 추도문 송부가 중지된 상황에서 추도비를 철거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결국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목표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에서 지우려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 현재 일본 전체 인구의 대부분은 전후 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근대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통치라는 자국의 과거사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접하던 세대가 적어지고 이제는 학교교육과 교과서를 통해 과거사를 접하고 배우는 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등장한 것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사건은 근대 식미지 지배의 모순과 일본 내 민족차별의식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로 기억되고 미래세대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관동대지진 당시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에서 식민지민의 신분으로 이국땅에 ‘이주’하여 생활하던 조선인과 중국인, 사회주의자, 노동운동가 등이 무차별 ‘학살’당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 상황에 있었던 한일관계를 바라볼 수 있으며, 현재 ‘자이니치’ 코리언 역사에 대해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역사를 통해서 식민주의, 인종주의, 민족차별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과거를 직시하는 역사인식 형성에 힘써야 할 때이다.

 

                                                    도쿄의 희생자 추도비

이진희 교수(이스턴 일리노이대)는 ‘미국 내 역사전(歷史戰) 현황과 간토대학살 연구에의 시사점’을 주제로 미국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전(歷史戰)’의 실상을 소개하고 그 문제점과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 이 교수는 역사의 해석을 둘러싼 경쟁이나 역사 담론의 정치적 이용은 인류역사에 있어 낯선 현상이 아닌 반면,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전’을 둘러싼 배경과 특징은 그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 이 교수는 최근 화두가 되어온 미국과 일본 사회 내 부각되어온 ‘역사전’을 둘러싼 담론과 그 교육 현장에서의 정치적 이용과 관련한 현황을 소개하고, 놓쳐서는 안될 미-일 역사부정주의의 공통점과 주도 세력의 접점에 주목함으로써, 곧 100주년을 맞이하게 될 간토대학살의 역사 서술과 교육에 있어 시사하고 있는 바를 밝히고자 했다. 특히 미국 내 일제가 자행한 식민/전쟁범죄의 실태를 왜곡하고 있는 ‘역사전’의 움직임을 간토대학살 관련 서술을 예로 삼아 살펴봤다.

▶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한일 양국의 역사인식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동향과 문제점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2023년이면 100년을 맞이하는 관동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상황에서 자행된 학살사건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교훈으로 계승하여야 하고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시간이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