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공감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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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공감의 윤리
  • 차미란 춘천교육대학교·윤리교육
  • 승인 2021.09.06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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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필자는 <초등도덕교육> 과목의 개강 첫 시간에 강의 운영에 관한 안내를 하면서, 첫 개인 과제로 ‘한국의 윤리적 현실과 문제의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요청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도덕적 문제는 무엇인지 적절한 단어로 규정하고, 그 문제를 예시하는 구체적 사례를 한 가지 제시하는 것이 과제의 주요 내용이다. 학생들은 ‘한국의 윤리적 현실과 도덕교육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소그룹 토론에서 각자 작성한 개인 과제를 공유하면서 문제를 진단하고, 도덕교육의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심각한 도덕적 문제의 원인을 찾아본 이후에, 도덕교육의 방향과 과제를 제안하는 팀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 활동은 장차 초등도덕교육을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예비 교사들로 하여금, 동서양의 윤리사상과 현대의 도덕심리학 이론을 자신이 맡게 될 과업과 관련지어 이해하도록 하고, 도덕 교과 수업의 의의와 방향에 관한 문제의식을 다지도록 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수년간 초등도덕교육 과목에서 위의 주제로 개인과제와 팀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면서, 학생들이 생각하는 도덕적 문제의 원인과 그 해결 방향과 관련하여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도덕적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은 매년 달라지지만, 그 문제의 원인 분석을 근거로 하여 제시되는 도덕교육의 방향과 과제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한국사회의 심각한 도덕적 문제로 제시한 것을 2015년 이후부터 순서대로 열거하면, 세월호 사건, 갑질, 남혐 여혐, 악플, 텔레그램 n번 방 사건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성범죄, 아동학대,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에는 방역수칙 위반 행위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시기에 따라 도덕적 문제의 사례나 양상은 다르지만, 교육을 통하여 개인의 내면에 심어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도덕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은 대체로 하나로 귀결된다. ‘배려와 공감’이 바로 그것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이나 현상, 행위 등은 그 어떤 것도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의 원인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규명을 위해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길어야 5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진행되는 소그룹 토론에서 학생들은 그러한 본격적인 연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회구조적 차원의 원인과는 구별되는 개인 내적 차원에서의 원인, 즉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내면에 무슨 결함이 있기에 그런 문제가 생겨나는가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의견을 나누게 된다. 다시 말하여, 인간의 내면을 이루는 사고방식, 판단력, 감정, 욕구 등 개인의 도덕성이나 인격을 이루는 요소에 주목하여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게 된다. 학생들이 찾아내는 원인 중에서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의견은 ‘역지사지의 결핍’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우선할 뿐, 자신과는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상대방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능력의 부족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도덕적 문제의 원인을 이와 같이 ‘역지사지의 결핍’으로 규정하게 되면, 도덕교육의 방향과 과제에 대한 제안은 거의 논리적으로 따라 나오게 된다. 그 제안에 의하면, 도덕교육을 통해 함양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다. 

그렇다면, 이제 도덕교육을 통하여 ‘배려’와 ‘공감’을 어떻게 길러줄 것인지 그 방안을 찾는 일만 남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도덕적 문제에 관한 학생들의 분석과 제안은 보다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보아야 한다. 가령, ‘갑질’이나 ‘악플’ 등의 도덕적 문제 등이 공통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부재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엄밀하게 분석해 보면, 배려와 공감 그 자체의 부재가 문제라기보다는, 배려와 공감의 편협성이 근본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배려와 공감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자신과 관련된 특정한 대상이라는 좁은 범위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설명이 아닐까? 배려와 공감의 윤리가 보편적 윤리로서의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배려와 공감의 대상이 자신이 속한 집단, 감정적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상과 범위를 넘어서서 확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확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배려와 공감의 확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어떤 것인가? 그 확장을 위해서 배려와 공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어떤 것이 더 필요한가? 본격적인 윤리학적 탐구와 교육적 실천 방안의 모색은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차미란 춘천교육대학교·교육학

춘천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 취득. 한국도덕교육학회 회장 역임. 강원도교육청 인성교육진흥협의회 위원,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도덕교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 저서: 〈오우크쇼트의 교육이론〉, 〈교육과 지식〉(공저), 〈예비교사를 위한 인성·도덕교육〉(공저), 〈인성교육과 도덕교육〉(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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