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 영토territory
상태바
미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 영토territory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1.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간소개]

■ 미국, 제국의 연대기 : 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 | 대니얼 임머바르 지음 | 김현정 옮김 | 글항아리 | 720쪽

 

미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관점은 ‘영토territory’라는 관점으로 미국의 해외 영토 및 소유물과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역사관을 제시한다.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제국, 어떤 나라도도 제재를 가하거나 압력을 넣을 수 없는 나라, 오직 내부 분열과 경제 하락만이 스스로를 약화시킬 수 있는 초강력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만큼 평화, 자유, 인권을 강조하는 나라가 없을 만큼 미국은 스스로를 공화국이자 세계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자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폭격하고, 경제적으로 제재하고, 물밑으로 압박을 가하는 일을 자행해왔다. 오늘날 세계는 미국본위제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여 미국은 이렇게 강력해졌을까? 왜 미국은 100년이 넘도록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공고히 유지하며, 앞으로 펼쳐질 우주시대에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일까. 왜 미국을 향한 중국의 도전은 저렇게 초라하게 느껴질까. 기술과 자본, 자원과 영토, 사회와 제도 등 모든 면에서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앞서간 미국의 성장과정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저자가 제시하는 ‘영토territory’라는 관점에 따르면 미국은 두 종류의 영토가 있다. 나쁜 짓을 하면 처벌을 받는 영토와 그렇지 않은 영토, 법적 규준을 준수해야 하는 영토와 그렇지 않은 영토다. 전자는 북아메리카 미국 본토이고, 후자는 전 세계에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다수의 미국령 섬과 제도, 기지들이다. 점묘주의 제국, 미국은 식민지, 미국령 등에서 다양한 자원을 획득해왔고, 그곳의 사람들을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지로 하여 전 세계를 무력으로 제압했다. 그런 영토의 존재가 그간 미국을 얘기할 때는 잊혀졌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제1부는 미국 초기 영토 확장의 역사를 다루면서 영토-농업-산업화-군사력-기술력의 연결고리를 추적한다. 최초 정착과 원주민 구역의 강탈부터 시작해, 과도한 농지 개발로 손상된 지력을 회복시켜줄 해조분을 얻기 위해 여러 섬을 점령하는 과정, 농업을 기반으로 해서 성장한 산업화, 산업화가 키워낸 군사력,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기존 식민 열강들과의 대결에서 거둔 승리, 그를 통해 확보한 자원과 인력을 다시 내지와 연결하는 방식 등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다.

제2부 점묘주의 제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여 미국이 탈식민 정책을 쓰면서 전세계를 리모트 컨트럴하는 점묘주의 제국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표준’을 다룬 부분이다. 모두가 표준을 원했다. 미국은 표준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유럽에 승리했다. 제국의 표준화란 머나먼 땅에서도 식민 지배자의 관행이 지켜진다는 의미였다. 제국은 새로운 법과 아이디어, 언어, 스포츠, 군사 협정, 패션, 도량형, 예의범절, 화폐, 업계 관행 등을 식민지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미국은 정치적 경계를 넘어 자국에서 만든 대다수의 물건과 관행을 표준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다시금 물리적 통제를 벗어난 장소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기술들은 형식상 제국이라는 익숙한 모델에서 미국을 분리시켰다. 기술 덕분에 식민지화가 세계화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화의 시대에도 영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식민지 시대 영토의 일부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도상의 크고 작은 수많은 섬을 점유하고 있다. 이러한 영토는 ‘점묘주의 제국 pointillist empire’을 구성하고 있다. 오늘날 그런 제국은 전 지구에 뻗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제국 지위를 부정한다. 미국은 스스로를 제국이 아닌 공화국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제국주의 항쟁 속에서 탄생했으며, 히틀러의 천년제국, 일본제국, 소비에트연방의 ‘사악한 제국 Evil Empire’에 이르는 여러 제국에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화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자화상은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런 비용의 대부분은 식민지, 점령 지역 및 군사기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지불해왔다.

이상하게도 미국은 제국주의라는 비난에 자주 시달렸으나 영토 차원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을 로고 지도로 나타내기 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은 나머지, 제국을 부르짖으며 열렬히 비판하는 전문가들조차 해외 영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확장된 미국 영토의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영토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영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식민주의는 정치적 배경에서 그 존재가 가장 두드러진다. 매케인, 페일린, 오바마 그리고 트럼프는 모두 식민주의의 영향을 받아왔다. 이는 이상하고도 놀라운 사실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놀라움을 뛰어넘어 미국의 역사는 제국의 역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