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왜 다시 동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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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왜 다시 동학인가?
  • 김용휘 대구대학교·한국철학
  • 승인 2021.08.3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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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사람이 하늘이다』 (김용휘 지음, 모시는사람들, 256쪽, 2021.07)

  

올해 도올 선생의 『동경대전』이 한국 지식사회를 강타했다. 그의 사자후는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뿜어져 나왔다. 게다가 127주년이자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지정 3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 발표된 ‘동학선언문’은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선생은 원래 동학은 ‘동국의 학’이었다며, 동학이야말로 유구한 조선문명의 총화이며 인류의 미래 이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바야흐로 동학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일까?
 
그런데 도올 선생에 앞서 이미 동학을 ‘동국의 학’ 즉 우리학문이라고 밝힌 책이 있었다. 바로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책세상, 2006)이다. 이 책에서는 동학을 서학에 대한 동학이 아니라 ‘동국의 학’, 즉 ‘우리학문’이었음을 강조했다. 서학의 영향이나 그에 대한 대응적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학의 ‘동’은, ‘서’에 대한 ‘동’이 아니라 ‘동국의 동’이며, 그런 점에서 서학보다는 조선 오백 년을 지배했던 중국의 유학에 대해 종언을 선언하고 새로운 학문의 필요성을 역설한 의미가 더 크다는 점을 피력했다. 따라서 이 책은 수운 선생이 “도는 비록 천도이나 학인즉 동학(道雖天道 學則東學)”이라고 했을 때, ‘학인즉 동학’의 의미, 즉 동학의 독자성을 조명하는 데 중점이 있었다. 동학은 유불선 삼교를 단순히 종합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료로 삼되 종교체험이라는 불에 의해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 전혀 새로운 차원의 우리 학문, 우리 종교가 나왔다는 데 주목했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판(출판사 모시는사람들)이 나오면서 초판에서 미처 못한 이야기를 덧붙이게 되었다. 여기서는 수운 스스로 자신의 도를 ‘천도(天道)’라고 표방했던 그 보편성에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천도’는 옛날 성현들이 깨달아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천도는 우주의 운행원리이자, 만물 생성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천도를 깨달은 사람이 갖게 된 내면의 카리스마적 힘을 ‘덕(德)’이라고 했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도와 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도(道)와 덕(德)은 유가(儒家)의 전유물도 아니고 도가(道家)의 전유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동아시아 성현들이 공유했던 최고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도와 덕을 자신의 삶과 사회 속에서 밝히고자 했던 것이 고대의 학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학자들은 책 속에서만 도덕을 논하게 되었다. 그런 세월이 오래되었다. 

수운 최제우와 동경대전
                            수운 최제우와 동경대전

수운의 동학은 조선 오백 년 성리학의 지배를 통해 천도(天道)와 천덕(天德)이 가리워지고 문자에만 빠져 백성들의 삶과 유리된 공허한 논쟁만을 일삼던 당시의 학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당시 조선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삶의 길로서 제시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동학은 고대 성현들이 깨달아 밝히고자 했던 천도, 하지만 오랫동안 끊겼던 그 천도를 다시 회복하여 이 땅에서 밝힌 것이었다. 경주가 낳은 또 다른 천재 김범부는 이를 “역사적 대강령이며, 신도성시정신(神道盛時精神)의 ‘기적적 부활’이며 국풍(國風)의 재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바로 이 부분, 동학이 천도를 다시 회복하되 새롭게 이 땅에서 밝혔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로 이전 견해와 달라진 점은, 4장 ‘다시개벽의 길’ 부분이다. 이전엔 학계의 일반적인 해석처럼 손병희의 천도교, 그리고 1920년대 이돈화를 비롯한 당시 천도교 청년지도자들의 입장을 ‘문명개화’ 노선에 경도된 것으로 서술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판에서는 그들의 노선을 ‘개벽’의 관점에서 재조명하였다. 손병희는 물론, 1920년대 이돈화와 김기전 등 청년지도자들을 단순히 (문명)개화 노선으로 평가해서는 잡히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당시의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어느 일방에 속하지 않고, 또한 단순히 민족해방이나 계급해방, 저항과 협력의 이분법적 틀을 넘어서서 보다 근본적인 인간해방,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문명적 전환을 꿈꾸었다. 그래서 그들의 운동은 단순한 개화운동이 아니라 개벽운동이었으며, 문명전환의 관점에서 읽어야 제대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

이제 이 책을 도올 선생의 『동경대전』과 비교해서 보자면, 선생은 동학을 철저하게 철학으로만 바라보고자 한다. 동학은 단순히 한국사상사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철학사에서도 동서를 회통시킨 탁월한 사상이며, 인간의 잘못된 생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명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탁월한 사상체계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 대도의 실현은 서구적 신관의 파기에서만 가능”하다고 하면서, 동학을 통해서 서양의 우월성, 과학과 자본주의의 예속된 서구적 근대를 넘어서 새로운 문명의 단초를 열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선생의 평가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선생은 동학을 너무 철학적인 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로 서구적 근대, 그리고 기독교 문명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동학을 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동학이 철학임에는 분명하지만 동시에 종교라고도 생각한다. 동학 역시 수행의 종교, 깨달음의 종교이다. 동학에는 서구적 신관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신관, 새로운 세계관도 분명 존재하지만, 무엇보다도 동학의 핵심은 인간의 오랜 열망인 인간 완성, 자아초월의 삶의 기술로서의 수양론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존의 제도적 종교와는 문법이 다른, 신중심주의가 아니라 인간을 주체로 하되, 우주적 신성함과 내면적 성실성과 만물에의 공경심을 잃지 않는 실천철학, 신학적 인간학이자 새로운 종교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수도를 통한 새로운 인격의 변화, 신생(新生)의 삶으로의 전회(轉回)에 있다. 

인간은 과학적 진리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형이상학적 열망과 죽음의 문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유덕(有德)한 삶, 진정한 내면의 평화와 지복(至福), 인간의 감각과 이성으로 파악되지 않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직관적 통찰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은 서구적 근대문명의 한계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계의 절멸적 위기, 인간 정신의 소외, 그리고 양극화와 이념적 분열과 갈등이 한층 더 심각해지고 있는 시기이다. 따라서 21세기 새로운 사상은 이런 생태계의 위기와 정신의 위기에 대해 답하면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 그리고 인간 주체를 새롭게 정립하고, 새로운 문명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대안을 동학에서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은 당시 서민들의 삶이 나락에 떨어지고, 서세동점(西勢東漸)에 의해 동아시아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하늘의 신비가 사라지면서 생긴 삶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응답이었다. 동학은 밑바닥 민중의 고난과 고통에 관심을 갖고 동양의 지혜를 바탕으로 서양의 영성을 흡수해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했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차원을 아우르면서 삶의 신비와 영성을 되살려냈다. 동학은 오늘날처럼 서양 근대문명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삶의 신비가 가려진 이 시기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비록 변방의 것이지만 보편성을 가진 철학이자 종교이다. 이것이 동학을 지금 이 땅에서 다시 피워내야 하는 이유이다.


김용휘 대구대학교·한국철학

동학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고려대 HK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대구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2년간 인도 오로빌에서 공동체를 경험하고 돌아와 지금은 방정환의 정신을 계승하는 ‘방정환배움공동체 구름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학문으로서의 동학』, 『최제우의 철학』, 『손병희의 철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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