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채 소비되던 힌두교의 제자리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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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채 소비되던 힌두교의 제자리를 찾다
  •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역사학
  • 승인 2021.08.2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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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힌두교사 깊이 읽기: 종교학이 아닌 역사학으로』 (이광수 지음, 푸른역사, 440쪽, 2021.07)

 

1990년대 한국에서는 ‘인도 열풍’이 불었다. 한 시인에 의해 점화된 이 열풍에서 인도는 ‘낯선 사람도 반갑게 대해주는 좋은’ 나라, 인도인들은 ‘뭐든지 느리게 돌아가는 사회임에도 거기에 적응해 잘 사는 사람들’,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충만하고 행복한 사람들’, 힌두교는 ‘세상을 버리고 떠나는 종교’였다. 인도와 인도인과 힌두교는 상상의 색으로 덧칠되었고 사람들은 그렇게 채색된 이미지에 경도되었다. 

한국에서 힌두교에 대한 이 같은 이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구 특히 미국에서 이루어진 오리엔탈리즘에 탈속 문화를 과도하게 강조한 일부 문필가들의 기행 수상문이 더해져 힌두교는 ‘요가, 명상, 사색, 비폭력, 속세를 떠나 초월한 태도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인도의 종교’로만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인도사에 대한 왜곡을 불러와 여러 문제를 낳는 단초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국내 유일의 힌두교사 전공자인 이광수 교수(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과)는 “힌두교가 형성되고 변화해 온 모습과 성격을 인도사의 흐름에 따라 역사학적으로 분석”(11쪽)하여 상상의 색으로 그려진 힌두교에 힌두교 본연의 색을 입히고자 한다. 30여 년의 연구를 통해 “힌두교의 처음부터 현재까지의 변화와 성격을 통사적으로 개괄”(11쪽)한다. 

연구되지 않은 힌두교를 연구하다

《힌두교사 깊이 읽기, 종교학이 아닌 역사학으로》는 힌두교라는 종교가 무엇인지를 총체적으로 알려주는 탁월한 개설서다. 세계의 유력 종교 가운데 힌두교만큼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종교가 또 있을까 할 정도로 힌두교에 대한 관심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은 힌두교에 대한 저자의 30여 년 연구의 집대성이다. 

1부 〈총론〉에서는 힌두교라는 명칭과 범주를 고찰하여 ‘힌두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한다. 힌두교에 대한 유럽 낭만주의와 공리주의자들의 왜곡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 잘못 알려진 힌두교의 제자리 찾기를 시도한다. 

2부 〈힌두교 형성사〉에서는 힌두교 형성 과정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아우른다. 먼저 힌두교의 원천을 고찰하고 하랍빠 시대(기원전 2750년경~기원전 1750년경)와 베다 시대(기원전 1500년경~기원전 500년경)의 종교 연구를 통해 힌두교 형성의 기원을 찾는다. 뒤이어 베다후後 시기(기원전 500년경~기원전 400년경) 힌두교가 체계화되고 불교가 발생하는 과정을 훑는다. 비슈누교와 쉬바교가 형성되고 대승불교가 성립되는 등 종교가 대중화되는 서사시 시기(기원전 400년경~500년경) 힌두교의 변화 모습을 그린 후 인민들이 브라만과 봉건영주에 철저하게 예속된 초기 중세(500년경~1200년경)에 비슈누교와 쉬바교가 발전하고 밀교가 융성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후기 중세(1200년경~1700년경)에는 영원한 희열의 추구, 즉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남을 기본 목표로 삼는 박띠운동의 사회적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이슬람과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시크교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여러 종교 사회 개혁운동을 전개하고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띤 근대(18세기~현재) 힌두교의 변화 양상을 탐구한다.

 

인도 뿌리의 자간나타 사원에서 열리는, 힌두교의 주신 비슈누의 화신 등을 모신 3대의 수레 행렬 축제는 화합과 평등을 상징하는 매우 대중적인 축제로 많은 이들이 참여한다. 푸른역사 제공

3부 〈힌두교의 성격과 의의〉에서는 힌두교가 세 가지 전통을 흡수 통합하는 과정을 살피고, 힌두교의 구동 장치로서 바르나(카스트)를 분석한다. 뒤이어 힌두교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관용, 그리고 관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박해, 개종이 힌두교에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었는지를 구명한다. 나아가 힌두교의 단일신론적 성격과 범신론, 다신교적 측면을 아울러 파고든다. 마지막으로 윤회를 통해 힌두교의 시간관과 역사 인식을 고찰한다.

힌두교, 불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의 첫걸음

이 책은 불교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연구서이기도 하다. 한국 문화의 보고인 불교는 인도의 역사에서 태어났고 변화해왔다. 주목할 것은 불교가 항상 힌두교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변화를 겪었다는 점이다. 힌두교와 불교의 관계에 대한 이해 없이 불교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한국 불교를 이야기할 때 힌두교는 거의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등장 당시 불교는 급진적이고 탈사회적인 종교였다. 저자는 후기 베다 시대에 인도에서 새로운 종교 움직임이 일었으며, 불교가 그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당시 인도에서 제사장이었던 브라만은 제사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농경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는 제사를 위해 지속적으로 도살되었다. 유목을 대신해 새롭게 등장한 농업경제에서 소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다. 급진적인 종교운동을 전개하던 세력은 브라만 중심의 기존 제사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며 소의 축적을 주장했다. “바로 이것이 곧 붓다가 주장한 불살생不殺生(아힌사ahinsa)이다. 붓다는 소가 있어야 생산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고 그래야 더 많은 인민들이 브라만에게 착취당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110쪽)

 

불교는 지나친 제사주의에 맞서 깨달음을 추구하며 일어난 종교 운동의 하나로 세계적 종교가 됐다. 사진은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만들어진 아잔따 불교 사원 모습. 푸른역사 제공

붓다는 세상을 고통으로 인식했다. 이 같은 고통의 윤회에서 해방되는 것이 바로 니르와나nirvana(열반)에 이르는 해탈이다. “‘니르와나’는 붓다가 독자적으로 고안하거나 발명한 개념이 아니라 당시 사회를 부인하고 수행에 전념하는 슈라만 전통에 널리 존재해 온 개념이었다.”(111쪽) 이는 부족 공동체에서 나고 자란 붓다가 새롭게 전개되는 화폐경제 기반의 첨예한 계급사회와 절대권력과 개인주의에서 받은 충격에서 비롯되었다. 기원전 6세기 화폐경제를 토대로 등장한 도시 문명은 이전의 원시생활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게 했다. “기존 사회의 부인이 금욕과 무소유 정신, 즉 탈세속의 움직임으로 구체화된 것이다.”(111쪽) 붓다의 가장 핵심적인 세계관 중 하나인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가치 없는 곳’,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해방된 삶’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붓다는 탈사회의 입장에서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했으나 당시의 사회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카스트로 구분된 계급사회에 반대했고 계급 문화의 악을 개선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카스트의 철폐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사회의 현실을 묵인한 채 자신의 이상사회를 사회 밖에서 승가로 실현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사회관은 당시는 물론 그 이후로도 인도 사회에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118쪽). 

종교, 역사로 읽다

서구의 동양학자들은 식민 지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도의 역사를 자신들의 세계관에 따라 재구성했다. 그들에 의해 인도는 종교의 나라로 채색되었다. 그들은 고대 힌두교의 몇몇 경전을 사료 삼아 자신들이 원하는 힌두교의 상像을 역사적 실체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힌두교는 명상, 요가, 사색, 비폭력이라는 불변의 구성요소를 가진 종교로 변질되었다.

저자는 종교를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종교를 사회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역사의 산물이라고 본다. 종교가 교리나 가르침 혹은 불변의 진리라는 시각은 실재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강조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저자는 이른바 힌두교의 ‘본질’을 역사 속에서 고찰한다. 예컨대 저자는 힌두교에서 명상에 대한 중시가 후기 베다 시기에 형식 위주의 제사가 극도로 심화됨에 따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다는 점(69쪽), 요가가 단순한 “건강과 체형 관리용 운동”(298쪽)이 아니라 “구원을 얻기 위한 세 가지 길”(139쪽)로서 ‘행위’(까르마)와 ‘지혜’(쟈나)와 ‘신헌信獻’(박띠)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짚는다. 힌두교를 종교학이 아닌 역사학으로 읽으려는 시도다.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역사학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과 교수. 델리대학교(인도) 대학원 역사학과 석사 및 박사. 주요 저서로는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인도 100문 100답》, 《인도 수구 세력 난동사》(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인도 고대사》, 《고대 인도의 정치이론》, 《성스러운 암소 신화: 인도 민족주의의 역사 만들기》, 《민족주의 사상과 식민지 세계》, 《마누법전》(공역) 등이 있다. 부산지역해고노동자생계비지원을위한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을 비롯한 몇몇 단체에서 사회운동을 하면서 정치 평론가 및 사진 비평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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