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이 손을 잡아야 한다
상태바
이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이 손을 잡아야 한다
  •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
  • 승인 2021.08.23 0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에게 듣는다_ 『환경인문학과 인류의 미래』 (김욱동 지음, 나남출판, 216쪽, 2021.07)

 

나는 그동안 자의 반 타의 반 ‘환경 전도사’로 활동하며 문학생태학이나 생태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환경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해 왔다. 그러다 보니 환경 문제를 다룬 책을 대여섯 권 출간했다. 『문학 생태학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시인은 숲을 지킨다』, 『생태학적 상상력』, 『적색에서 녹색으로』를 거쳐 맨 마지막으로 동서양의 고전 작품 속에서 생태주의를 읽어낸 『녹색 고전』 3권을 출간하였다. 나는 ‘녹색 고전’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더 이 분야의 단행본을 출간하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유목민’ 학자를 자처하는 사람으로 갈 길은 먼데 너무 한곳에 오래 머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결심을 깨트리고 다시 환경 문제를 다루는 책을 썼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비롯한다. 첫째, 환경을 둘러싼 문제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더욱 망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관적으로 보는 학자들은 2050년쯤이면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2050년경이라면 ‘근대화의 혈액’이라고 할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 연료가 모두 고갈될 뿐 아니라 지구상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열대우림마저 모두 파괴되는 시점이다. 이 두 가지가 서로 맞물려 있어 지구는 설치류는 몰라도 인류가 살아남기에는 부적합한 행성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둘째, 올해 초부터 지구촌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환경과 바이러스가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바이러스도 세균과 마찬가지로 환경의 일부다. 이제 인류는 시대를 구분 짓던 ‘B. C.’의 의미를 COVID-19의 창궐을 그 기점으로 삼아 새롭게 규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셋째, 최근 들어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환경 인문학’ 분야가 새로운 환경 담론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인문학자들은 사회과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과학자들과 좀 더 적극적으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인문학자들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인문학자들도 앞에 언급한 문학생태학이나 생태비평을 비롯하여 환경철학, 환경윤리, 환경종교학, 환경역사, 환경인류학, 사회생태학, 에코페미니즘 등 나름대로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 다만 지금까지 인문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 인문학 안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거나 더 나아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과의 연대를 모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20세기가 서산마루에 걸려 있던 무렵 인문학 분야에서 통섭이나 통학문적 정신에 입각하여 그동안 소원한 관계에 있던 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과도 좀 더 적극적으로 연대를 모색하려고 했다. 이러한 시도에서 나타난 학문이 다름 아닌 ‘환경인문학’이다. 

인문학자들은 이제 환경 문제를 자연과학자들이나 사회과학들에게만 맡겨서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환경 위기나 생태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인문학자들은 이러한 절박한 심정에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사회과학자들이나 자연과학자들과 기꺼이 손을 잡으려고 한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사회과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도 인문학자들을 한낱 상아탑에 갇혀 고담준론을 일삼는 사람들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다른 분야 학자들은 좁게는 문학가, 좀 더 넓게는 인문학자를 하늘에 걸린 둥근 달을 쳐다보고 한숨이나 짓는 사람 정도로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은 이제 그들만의 연구와 지식으로써는 심각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깨닫고 인문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환경인문학의 이론적 기초를 다룬다. 여기서 주로 취급하는 주제는 ① 생태학과 환경학, ② 환경인문학의 대두, ③ C. P. 스노의 ‘두 문화’ 이론, ④ 통학문적 또는 횡단학문적 경향, ⑤ 인류세의 대두, ⑥ 학자들의 인식 변화 등이다. 2장에서는 환경인문학의 개념을 다룬다. ① 인문학의 부상, ② ‘느린 학문’으로서의 인문학, ③ 환경인문학 전사(前史), ④ 환경인문학 출현, ⑤ 유럽의 환경인문학 등이 중심 주제다. 3장 문학생태학과 생태비평에서는 ① 문학생태학과 생태비평, ② 유물론적 생태비평의 대두, ③ 시적 담론으로서의 문학, ④ 베이트의 낭만적 생태학, ⑤ 암흑에서 광명으로, ⑥한국 시와 환경인문학, ⑦ 하이쿠와 환경인문학, ⑧ 환경인문학과 창작 등의 주제를 다룬다. 마지막 4장은 환경철학과 환경종교학으로 ① 들뢰즈와 가타리의 환경철학, ② 신유물론의 대두, ③ 환경신학과 교황회칙 등을 주제를 다룬다.

나는 이 책에서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문학의 역할이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의 역할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환경 담론은 크게 ① 과학적 담론, ② 규제적 담론, ③ 문학적 담론의 세 범주로 나뉜다. 과학적 담론에서는 지성에 무게를 싣고, 규제적 담론에서는 의지에 무게를 두며, 문학적 담론에서는 감정에 가치를 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수사학』에서 인간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세 능력으로 파악한 로고스·에토스·파토스를 대입해 보자. 과학적 담론은 로고스, 규제적 담론은 에토스, 시적 담론은 파토스의 성격이 강하다.

이 세 환경 담론 중에서 과학적 담론은 주로 과학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담론, 즉 자연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담론이다. 생태학을 중심으로 대기과학, 환경화학, 지구과학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을 둘러싸고 직접 또는 간접 영향을 끼치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이른다. 한마디로 환경과 관련한 자연과학 분야는 하나같이 이 과학적 담론의 범주에 들어간다. 

한편 규제적 담론이란 한국의 환경부, 일본의 환경성, 미국의 환경보호청(EPA), 독일의 연방환경부(BMU) 같은 정부 기구가 주로 사용하는 담론이다. 여기에는 한국의 환경운동연합이나 미국의 기후활동공동체(CAP) 같은 비정부 단체가 사용하는 담론도 들어간다. ‘규제적’이라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담론에서는 과학적 담론과 비교하여 법규에 따라 환경을 규제하거나 단속하는 기능이나 통제하고 감시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런가 하면 문학적 담론이란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담론, 즉 여러 유형의 예술 작품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시나 소설, 수필, 희곡 같은 문학 작품은 자연이나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무척 소중하다. 좀 더 범위를 넓혀 보면 비단 문학 작품에 그치지 않고 사진, 연극, 영화, 댄스, 건축 같은 예술 작품도 이 담론과 맞닿아 있다. 문학적 담론에는 문학/예술 연구가들이나 비평가들이 사용하는 담론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마디로 짤막한 시 한 편이 정책 입안자의 보고서나 과학자의 과학 논문 못지않게 아주 중요하다. 시를 비롯한 문학 작품은 차가운 머리에 호소하는 대신 뜨거운 가슴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사회가 환경에 영향을 미쳐 온 문화적·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고, 많은 사람의 가치와 의견에 영향을 주어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도 문학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지구가 파멸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지금, 환경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는 어떤 학문도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구라는 타이타닉 호가 환경위기라는 빙산과 부딪쳐 침몰하고 있는데 하늘을 찌르는 이론과 학문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인문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환경문학, 번역학, 수사학, 문학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해 온 인문학자다. 주요 저서로는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2020), 《외국문학연구회와〈해외문학〉》(2020), 《아메리카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2020), 《눈솔 정인섭 평전》(2020), 《하퍼 리의 삶과 문학》(2020),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들》(2020)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