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대학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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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대학의 혁신
  • 박균열 경상국립대·윤리교육
  • 승인 2021.08.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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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동서고금의 어떤 나라에서나 교육은 백 년을 좌우하는 중대한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은 매우 높다. 이것이 많은 부작용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은 학부모들의 그 열정의 덕이 크다. 하지만 미래사회는 이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력평가(PISA) 결과에 따르면 초중등학교 시절 동안 우리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대학 입학 후에 전공 분야별로 그에 걸맞은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와 같은 결과에 이른 것은 학부모에 의해 강요된 청소년기의 타성에서 비롯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가의 최고 고등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 제대로 된 교육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은 자구노력으로 세계적인 대학과 견줄만한 실적을 간혹 보여주곤 하지만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전체 풍토를 혁신하는 데는 아직도 길이 멀다. 

고등교육을 위한 핵심 요체인 대학의 혁신을 위해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지방대학육성법〉이 있기는 하지만 교육부는 지방대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부는 대학평가라는 미명하에 전국의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거의 모든 일들을 전횡하고 있다. 교육부는 국립대학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정지원을 해야 하고 총장 선발 등에 간섭하지 않아야 하며, 사립대학에 대한 연구지원을 제외한 지원액을 전액 삭감하고 대신 완전한 자율권을 부여해야 하며, 단지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법에 의해 조치를 취하면 된다. 특히 지방대학 학생이 취직할 경우, 해당 지자체와 지역 혁신도시에 위치한 공공기관 취업에 지역할당을 현재보다 혁신적으로 더 높게 상향 조정해야 한다. 서울 소재 대학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겠지만, 30년 전과 비교해볼 때 지방국립대학과 서울소재 주요대학의 입시결과는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비슷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수도권 집중 현상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방소재 공공기관 직원들이 월요일 새벽마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통근버스를 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둘째, 교육부는 교원양성기관인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의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일부 교육대학은 이탈율이 높아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일부 한두 개 사립대학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교육대학은 국립이다. 기형적인 관리 부실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는 교육대학의 문제를 해당 지역 거점국립대학과의 통합을 통해서 타개해 나가야 한다. 이미 제주대학과 제주교육대학은 통합이 이루어져서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었다. 

셋째,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의 권위를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현재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해당 전공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게 된다. 실제 정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실기시험의 경우 17개 해당 교육청 주관으로 장학관, 장학사, 수석교사, 일부 평교사들이 심사를 한다. <초중등교육법>을 주관하는 사람들이 <고등교육법>을 주관하는 사람들의 업무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대학졸업자를 기업이 면접해서 뽑는 문제와는 다르다. 해당 교육청이 주관해서 실시하되 전국단위의 평가단을 구성해서 제척 사유 등을 면밀히 고려하여 대학교수들이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수업 진행 요령 등은 선발 후 직무교육을 통해서 보완될 일이다. 

넷째, 대학교수들의 혁신 노력이 필요하다. 교수의 기본적인 사명은 강의, 연구, 봉사이다. 그중에서 특히 세계적인 연구실적을 내는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요청이다. 이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교수는 그 와중에 연구윤리를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수 본인의 연구물에 주요한 데이터를 부당한 방법으로 도용한다거나 데이터를 조작하는 일, 연구에 참여하지도 않은 본인 또는 지인의 자녀 이름을 끼워 넣는 부당저자 표기도 철저히 삼가야 한다. 불법은 아니지만 정체성을 허무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특히 교대 교수의 경우 학생들의 발달 계열성을 고려해서 공동 집필자로 참여할 수는 있겠으나, 교과교육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중등교과서 집필에 책임 집필자로 참여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는 부적절한 처신이다.

다섯째, 입시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현행 입시제도에 허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자유학기제, 자율학기제, 고교학점제 등과 같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과목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에 편성하는 방법이 더 필요하다. 심지어 예체능과목도 시험을 보게 해야 한다. 대학들의 재정확충 수단으로 전락한 논술시험은 과거 본고사와 하등 다를 바가 없으며,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과목 간에 기형적인 편중 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 각 대학의 전공학과는 필요한 인재를 과목별 가중치를 자유롭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전공 적합성과 변별성을 가려낼 수 있다. 취약계층 배려를 위한 농어촌 전형의 경우, 생활단위 또는 도계(道界)를 넘어서지 않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인 실력이 모자라지만 학교 내의 내신 성적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먼 거리의 대학, 그것도 다른 지역의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논리가 약하다. 오히려 해당 지역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해서 그 지역에 교육의 효과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고등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여건에다 고등교육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해법은 혁신이다. 혁신은 새로운 길을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새로운 길이 아니더라도 비정상이면 정상으로 돌려놓는 길을 택해야 한다.


박균열 경상국립대·윤리교육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상국립대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공공가치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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