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의 연결로 세상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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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전체의 연결로 세상을 읽는다!
  • 김범준 성균관대·통계물리학
  • 승인 2020.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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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관계의 과학: 복잡한 세상의 연결고리를 읽는 통계물리학의 경이로움』 (김범준 지음, 동아시아, 2019.12)
   

전체는 부분을 속속들이 안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나, 종이에 문지르면 검은색이 묻어나는 연필심이나, 둘 모두 정확히 같은 탄소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특성은 정말 다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여럿은, 그 안에 들어 있는 하나가 갖지 못한 특성을 보여줄 때가 많다. 얼음의 딱딱함은 물 분자 하나로 결정되지 않고, 다이아몬드의 반짝임은 탄소 원자 하나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구성요소 여럿이 함께하면 전체가 보여주는 특성이 달라진다.

통계물리학은 바로, 함께하면 달라지는 것들이 연구 대상인 물리학의 한 세부 분야다. 분야의 이름에 ‘통계’가 들어 있는 이유가 있다. 하나가 아닌 여럿이 함께 보여주는 특성을 이해하려면 ‘통계’라는 방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계물리학은 통계라는 방법을 써서 함께하면 달라지는 현상을 연구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함께하면 달라지는 것이 꼭 자연 현상 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도 그렇다. 함께하면 달라지니, 모여서 함께하는 것이 바로 사회다. 통계물리학은 함께 하면 달라지는 모든 것들의 과학이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될지, 한 층씩 얇게 쉽게 벗겨져 글씨를 쓸 수 있는 흑연이 될지, 함께하면 달라지는 이유가 있다.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 때문이다. 탄소 원자들이 3차원 공간에서 관계를 맺어 분포하는 공간 배치 방식의 차이가 다이아몬드와 흑연의 차이를 만든다. 서로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 의견을 소통하는지, 방식의 차이가 전체 조직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더 좋은 의견을 찾아내는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함께하면 달라지는 모든 것들의 과학인 통계물리학은 바로 관계의 과학이다.

필자가 최근 출판한 <관계의 과학>은 세상을 통계물리학의 눈으로 본다. 오해 마시길. 통계 물리학의 시선이 다른 과학 분야의 시선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단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통계물리학으로 보는 세상의 모습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함께하면 달라지는 것은 자연이나 사회의 현상만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도 그렇다. 다르지만 함께하는 여러 과학의 다양한 시선들이 모여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려면 요리조리 돌려 보며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통계물리학 연구 자체도 함께하면 달라진다. 거의 매일 얼굴을 보는 대학원생들이 필자의 가장 소중한 공동연구자들이다. 새로운 연구 주제를 찾는 것도, 연구 진행의 방향을 조금씩 더듬어 한발씩 나아가는 것도, 함께하면 달라진다.

<관계의 과학>은 우리가 주변에서 매일 접하는 일들에 대한 물리학자의 얘기를 담았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지진, 사람들이 박자를 맞추면 일어나는 박수의 때맞음에 대한 얘기도 있다. 대박 영화의 흥행 패턴과 전염병의 유행 패턴을 비교해 그 차이를 살펴보기도 했고, 국회의원들의 공동 법안 발의 데이터를 모아 의원들의 연결망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필자가 자주 하는 태블릿 게임의 데이터를 살펴보거나, 필자 주변의 사회연결망을 만들어 분석해본 결과도 담았다. 필자의 전작 <세상 물정의 물리학>의 판매량의 반감기를 계산해 다른 책과 비교해보기도 했다. 그냥 궁금해서 시작한 연구들이다.

어떤 의사소통의 구조가 사람들이 더 나은 의견으로 합의하기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필자의 연구,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소수가 어떻게 전체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소개하기도 했다. 간단한 모형을 만들어서 소득세와 재산세가 부의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지 살펴보기도 했고. 여러 과학자들과 함께 한, 몇 년 전 광화문 광장의 촛불 세기 프로젝트 얘기도 담았다. 이런 연구들을 직접 하거나 접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앞당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물리학도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와 사실 중 물리학은 주로 사실을 다루지만, 우리 모두의 가치 판단은 사실에 기반할 때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과학, 특히 이론 물리학의 영역에서 진행되는 연구의 세부적인 단계는 가치중립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과학자는 가치중립적인 존재이기 어렵다. 아무리 순수하게 가치중립적으로 진행된 연구라 하더라도, 어쨌든 그 연구를 할지 말지는 연구자의 가치판단의 결과다. 필자는 과학자 개개인이 고민 없이 ‘과학만 하는 과학자’인 사회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는 화학물질을 개발한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엄청난 규모의 살상에 이용되는 것을 보면서, ‘난 책임이 없어. 난 단지 화학물질의 생화학반응을 연구했을 뿐이야’라고 자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의 가치관, 혹은 가치관의 부재는 그가 수행한 과학보다 위험할 수 있다.

필자는, 거짓이 아닌 진실이 결국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철폐되어야 하는 이유는 차별의 과학적 근거가 전무하기 때문이고, 사회의 다양성이 더 큰 발전을 가능케 한다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의 현장에서 매일 벌어지는 연구는, 같은 과학자라도 분야가 다르면,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과학의 성과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더 큰 위험으로 우리를 위협할지, 이에 대한 판단을 과학자에게만 맡기지 마시라. 과학자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하지만, 사람들도 과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많은 이들이 함께 과학을 토론하는 사회를 필자는 꿈꾼다. 과학자의 노력도 중요하다. 과학자의 연구가 더 투명하게, 그리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더 넓게 공개될수록, 과학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모든 이의 친구가 될 수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통계물리학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초전도 배열에 대한 이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웨덴 우메오 대학교와 아주대학교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물리학회 용봉상, 『세상물정의 물리학』으로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 아태이론물리센터 올해의 과학도서 등을 수상했다. 한국복잡계학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회원, 한국물리학회 대중화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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