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서양철학사의 무대에 세운 책,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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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서양철학사의 무대에 세운 책,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 김정현 원광대학교·철학
  • 승인 2021.08.16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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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지음, 김정현 옮김, 책세상, 364쪽, 2021.06)

 

이 책은 루 안드레아스-살로메(Lou Andreas-Salomé)가 1894년에 쓴 니체철학에 관한 최초의 저술로 원래 책명은 《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Friedrich Nietzsche in seinen Werken)이다. 그녀는 니체, 릴케, 프로이트뿐만 아니라 바그너, 파울 레, 하우프트만, 슈니츨러, 호프만스탈, 톨스토이, 퇴니스, 부버, 바이츠체커 등 당대 유럽의 최고 지성들과 교류했다. 특히 그녀는 니체에게 청혼을 받았고, 비록 성사되진 못했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니체의 삶의 체험(‘루-체험’)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주저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녀가 이 책을 출간했을 때 니체는 50세로 이미 정신병에 들어 독일 나움부르크에서 어머니 프란체스카와 누이동생 엘리자베트의 간병을 받고 있었다. 

살로메는 비록 니체가 정신병 상태 속에 있었지만, 그가 살아있었을 때 그의 모습이나 정신적 특징, 저서 내용과 사상을 책으로 소개했다. 살로메로부터 니체라는 철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덴마크의 브란데스(Georg Brandes)가 1888년 코펜하겐대학에서 니체를 처음 소개하며 몇 편의 글들을 발표하긴 했지만, 니체 저서와 사상을 전체적으로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다룬 것은 서양 정신사에서 이 책이 처음이다. 살로메는 1882년 니체를 만나면서 니체의 사상을 직접 들었으며 앞으로 니체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밝혔고, 12년이 지난 이후 니체 저서들을 통독하며 이 책을 썼다는 점에서 보면, 이 책은 “니체와 직접 만나고 정신적으로 동행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양정신사 최초의 니체철학 소개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니체의 저서 내용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 인성, 영혼의 삶을 더듬으며 니체 사상의 주요 내용과 핵심개념을 소개하는 본격적인 니체철학의 안내서이다. 니체의 저서들, 니체에 대한 인상과 그의 영혼과 삶에 대한 통찰, 그와의 개인적인 관계와 사건들, 니체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 및 그녀가 니체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자료들을 토대로 이 책은 니체의 저서 속에 숨어 있는 니체 사유의 발전과정이나 니체철학의 인식방법을 밝힌다. 비유와 상징, 단편과 잠언 형식으로 되어 있는 니체의 글들이 체계가 없고 내용을 정리하기 어려운 직관적 예언가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었을 때, 살로메는 그의 저서의 내용들을 정리하고 그 철학적 의미를 자리매김하며 그의 철학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이 책은 니체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또한 그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살로메가 존경하는 스승 니체에게 건네준 최고의 정신적 선물이었다. 살로메는 이 책을 씀으로써 니체 사상의 체계와 내용, 주요 개념과 철학적 주제들을 정리해 세상에 알리고 더 나아가 니체가 철학사의 무대에 들어서는 문을 열어 준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맨 오른쪽) 맨 왼쪽의 여자는 살로메

이 책은 “니체라는 존재”, “니체의 변화과정”, “니체의 체계”라는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은 니체라는 인간의 모습과 성격, 그의 내면적 영혼의 특성 등을 다루고 있고, 두 번째 장에서는 그의 병력과 건강의 회복과 연관해 니체의 정신적 사유의 변화과정과 니체철학의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으며, 세 번째 장에서는 인식론, 의지철학, 정동론, 종교적 미학, 초인, 영원회귀사상, 미래철학 등 니체사상의 내용과 체계를 다루고 있다. 

먼저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니체라는 존재’를 다루는 이 책의 첫 장의 내용이다. 니체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해머를 가지고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규범을 부수고 비판하는 니체의 모습은 거친 파괴자나 가치 전도자의 모습이지만 현실의 실제 모습은 매우 섬세하고 조용하며 신중한 모습을 지닌 듯하다. 그녀가 니체에게 받은 인상은 겸손하며 여성적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는 사람, 침착하고 기품 있는 것을 좋아하며 격식을 찾는 사람, 내밀한 고독감을 지니고 있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유럽 문화나 종교, 사상 등에 가하는 니체의 거칠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그의 철학을 파괴의 철학으로 읽어내며 그의 모습을 매우 열정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적인 모습으로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살로메는 이 책에서 니체가 섬세하고 조용하고 여성적 모습을 지닌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려 준다. 살로메는 더 나아가 니체의 정신적 본성이 ‘여성적’이라고 파악하는데, 이로 인해 니체는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세계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또 동시에 생명과 건강의 미래철학을 창의적으로 잉태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니체의 사상에 접근하기 위해 살로메가 이해하고 제시하는 니체사상의 특징과 체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즉 니체사상은 그의 영혼의 자기 고백이며, 니체의 영혼의 삶은 종교 문제에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니체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심리학적 통찰이며, 니체철학은 문제의식 및 철학적 내용에 따라 세 시기로 구분될 수 있으며 체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살로메는 니체를 철학사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직 조심스럽다고 말하고 있지만, 니체라는 존재와 니체철학을 이해하는 방법, 니체의 철학사상의 내용을 하나씩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니체를 철학사의 무대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1882년 9월 16일 니체가 루 살로메에게 보내는 편지에 쓴 “우리 두 사람이 후세에 걸어가 도달하게 되는 아주 작은 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니체의 표현처럼 이 책은 두 사람의 인연이 마련한 서양지성사의 작은 길일지 모른다. 비록 현실에서는 사랑의 인연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간 작은 길의 인연은 현대 동서양 정신사에 거대한 길을 내고 있다. 살로메가 브란데스와 함께 러시아에 전달한 니체사상은 이후 톨스토이와 한 쌍이 되어 일본을 거쳐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 다루어짐으로써 동북아시아 정신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살로메의 이 책은 서양철학사에 오르는 원형적 니체사상의 모습을 담고 있어 관심을 가질만하다.


김정현 원광대학교·철학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 사회학, 종교학을 공부한 뒤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표준판 니체전집 한국어본(전 21권, 책세상)의 편집위원과 한국니체학회·범한철학회·대한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원광대학교 중앙도서관장을 지냈다. 저서로 《니체의 몸 철학》,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철학과 마음의 치유》, 《소진 시대의 철학》 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프레드 쉐프의 《프로이트와 현대철학》(공역), 니체의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와 《유고(1884년 가을~1885년 가을)》, 카를 야스퍼스의 《기술 시대의 의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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