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에서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의 대응에 대한 답을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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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서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의 대응에 대한 답을 구하다
  • 김영진 국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1.08.16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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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임진왜란: 2년 전쟁 12년 논쟁』 (김영진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948쪽, 2021.06)

 

필자는 중국의 부상을 서두로 하여 미·중 패권 경쟁에서 한국의 선택으로 끝을 맺었다. 이것은 이 책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기획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4백여 년 전 발생했던 임진왜란에 대한 통사로서 본 연구는 단순히 전쟁의 참상을 되새겨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우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강대국들의 틈새에서 자신의 안보를 스스로 확보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더욱이 그에 대한 대응책에 있어서 국론은 매우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평상시에는 대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주지하는 것처럼 전통 시기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통상적으로 조공체제로 부른다. 이 체제에서는 사대자소(事大字小)의 원칙에 따라 주변국은 중국과 위계적 관계 속에서 안보를 보장받는 것으로 간주된다. 사실 임진왜란에서 명이 조선을 지원하여 일본을 막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위의 원칙과는 거리가 멀었다. 명과 조선 모두에서 조공체제의 외피보다는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이 우선시되었다. 

명은 애초부터 조선과 일본의 결탁 가능성을 의심했다. 더욱이 파병은 히데요시가 명의 침략을 공언한 상황에서 자국의 안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 그로 인해 군대의 파견은 전쟁 발생 후 8개월이 지난 뒤였다. 또한, 일단 국경에서 가까운 평양의 왜군을 무찌른 뒤로 명은 강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치중했다. 조선이 전쟁과 흉년, 기아, 전염병으로 시달리는 상황에서 3년 반 동안 지루한 강화가 진행되었다. 명은 히데요시의 책봉이라는 형식적인 양보만으로 조선으로부터 왜군의 철수를 관철하고자 했다. 그 결과는 일본의 재침과 광범위한 살육이었다.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왜군이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침략자를 응징하기보다는 명군은 인질을 내주면서까지 왜군의 철수만을 추구했다.

 

                                                 평양성 탈환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물론 문제는 조선에도 있었다. 히데요시가 전쟁을 발동하기 몇 년 전부터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요구했을 때, 조헌(趙憲) 등 일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적극적인 대비에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침략을 당했을 때도 조선은 일관된 정책을 갖지 못했다.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의병의 활약으로 호남과 경상도 일부, 그리고 서해 연안이 보존되었다. 그렇지만 해당 지역도 단지 식량 조달을 위해서만 활용했을 뿐 왜군에 대한 공세의 기반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피난 초기 국왕의 내부 요청은 명에게 조선의 국방 의지를 의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히데요시의 앞잡이라는 의심을 샀다. 그러면서도 조선은 다수 명군의 진입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요동의 일부 군대를 빌려서 대처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북경에 대한 군사지원 요청은 대군 파견에 대한 명 조정의 결정이 알려진 뒤였던 것이다. 일단 명의 대군이 진입하자 조선은 전쟁의 수행을 사실상 명에 위임했다.

군사적 열세는 그렇다 쳐도 외교적 시도에 있어서도 조선은 명군에 의존하고 일본과의 접촉을 회피했다. 일부 주변적이고 상황 탐지를 위한 교섭 이외에는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명이 더 협상력이 있다고 판단되어서였겠으나, 협상은 조선의 이익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더욱이 조선 스스로 강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강화에 반대하면서도 명의 강화세력이 히데요시의 책봉을 조선이 요청하도록 압박했을 때, 거기에 따랐고, 이어 통신사를 보내 명의 책봉사절을 수행하게 했다. 결국 통신사는 일본에서 굴욕적인 대우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재침의 빌미를 주었다.

 

    정왜기공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_정유재란 당시 명군이 일본군을 정벌한 공을 기념해 제작한 병풍

이러한 모든 정책상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분할되거나 멸망하지 않았다. 이 점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선 수군과 의병들의 활동으로 국토의 상당 부분이 보존되었고, 그것을 발판으로 전세를 바꿀 수 있었다. 비록 명 자신의 국방을 고려한 선택이었으나, 조선은 명의 군사와 식량 원조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조선은 위기 상황에서도 명의 직접 통치 방안을 거부했고, 종전 때 명군의 조기철수도 관철시켰다. 조선은 또한 영토의 분할과 같은 강화의 조건이 관철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요동에 자리 잡은 명군 지휘부의 방해에도 조선은 각종 외교적 노력을 통해 명 조정의 정책 수립에도 영향을 주었다. 국왕도 명군 지휘자들과 부단한 접촉을 통해 전투를 독려했고, 군사들의 규율을 강화시키도록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우리의 당면 과제, 특히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는 미·중 간 패권 경쟁에 대한 대응책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유성룡이 『징비록』의 첫 부분에서 지적한 내용을 상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조선 초 통신사로 일본에 방문한 적이 있는 신숙주가 남긴 말로서, 일본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명과의 일방적 관계보다는 일본에 대한 균형적 외교를 의미했다. 사실 명 일변도의 정책은 조선의 자주적 역량을 제약했다. 이를테면 전쟁 말기에 조선이 도성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자 명은 조선이 거기에 근거하여 자신에게 저항할 거라면서 축소하도록 요구했다. 자신의 생존을 보장할 역량의 강화는 균형적 외교를 전제로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앞서 제기한 미·중 간의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보다는 우리의 역량 강화를 전제로 서로 수호해야 할 가치를 공유하는 다수의 우방들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은 현실적 관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살펴본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본 연구가 나름대로 주목을 받은 것은 그러한 주장이나 입장의 제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히려 책의 서술 방식과 구성에 있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전쟁과 강화의 진행 과정을 사료가 전하는 바대로 가감 없이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단순히 사건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하기보다는 정책적 논의와 실행 과정을 연속적이고 입체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일종의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서 한·중·일 삼국의 자료들, 이를테면 조선과 명의 실록, 외교문서, 정책담당자들의 문집과 일기, 사신들의 여행기록, 히데요시의 공문과 다이묘 가문들의 문서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했다. 

사실 사료에 바탕을 두면서 전체를 아우르는 임진왜란 통사(通史)는 거의 없다고 확언할 수 있다. 더욱이 중국 측의 일부 중요한 문헌들은 비교적 최근에야 발굴되었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연구의 역사가 오래지만, 최근 중국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활발하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항일원조(抗日援朝)의 경험을 다시 부각시키기 위한 것만은 결코 아니다. 한·중·일 삼국의 유일한 전면전인 임진왜란은 그들에게도 군사와 외교의 측면에서 시사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의 피해자인 우리야말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김영진 국민대학교·정치학

경희대 영어영문학 학사, 서울대 정치학 석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정치학 박사. 현재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글로벌인문·지역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베이징대학 방문학자, 클레몬트-매키나 칼리지(Claremont McKenna College)와 퍼시픽 대학(University of the Pacific) 연구교수를 지냈다.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화 질서의 이론과 실제: 임진왜란 초기 조명관계를 예로」, 「임진왜란 초기 제3국 국제협력 방안에 대한 고찰」, 「임진왜란 초기 명의 파병과 조명관계의 실제」, 「임진왜란 이후 명군철수 협상에 대한 고찰」 등 논문을 발표했다. 그 외 대표적인 저술로 중화제국의 초기 건설 과정을 다룬 『중국, 대국의 신화: 중화제국 정치의 토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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