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금강과 황금빛 갈대밭, 흐르는 시간과 침전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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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금강과 황금빛 갈대밭, 흐르는 시간과 침전된 시간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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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 충남 서천 신성리 갈대밭
▲ 신성리 갈대밭. 갈대밭 위로 스카이워크가 조성되어 있다.
▲ 신성리 갈대밭. 갈대밭 위로 스카이워크가 조성되어 있다.
▲ 신성리 갈대밭. 갈대밭 위로 스카이워크가 조성되어 있다.

쌕쌕 겨울잠 든 드넓은 들을 지나 둑에 오르면, 푸른 금강과 황금빛 갈대밭. 흐르는 시간과 침전된 시간이 아슴아슴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잔잔한 주름을 접으며 출렁이는 평온이 아득하고 영원한 인상을 준다. 둑길에 ‘신성리 갈대밭 연가’라는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갈꽃은 하늘하늘 그리움도 하늘하늘 / 말없이 떠나버린 사랑했던 그 사람 / 예전처럼 지금 이 자리 신성리 갈대밭 / 바람결에 갈잎은 깊은 사연 속삭이네 / 내 마음 바람 따라 흘러만 가네.’ 워낙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이름났으니 연가 하나쯤은 있어야겠지. 신성리 갈대밭, 오늘의 연인은 없다.

▲ 신성리 갈대밭 둑길. 오른편 농지가 옛날에는 모두 갈대밭이었다.
▲ 신성리 갈대밭 둑길. 오른편 농지가 옛날에는 모두 갈대밭이었다.

충남 서천의 신성리, 금강 변에 나루가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강 건너는 전북 익산의 웅포 곰개, 이곳은 신성리 곰개, 물길을 사이에 두고 두 나루의 이름이 같다. 마을은 바다가 지척인 금강 하구에 자리한다. 퇴적물은 오래오래 쉽게도 쌓였지만, 범람이 잦아 사람이 일굴 땅은 못 되었다. 그러자 그 땅에는 갈대가 자라났다. 1990년 금강 하굿둑이 건설되기 이전의 신성리 갈대밭은 지나온 너른 들 전체를 뒤덮는 대규모의 갈대밭이었다고 한다. 이후 둑 저편의 상당 부분이 농지로 개간되었지만 여전히 갈대밭은 넓다. 지금은 훼손을 막기 위해 갈대밭 전체 면적의 2~3%만 공원으로 조성해 개방하고 있다.

▲ 신성리 나루로 향하는 갈대밭 산책로. 세 그루 나무가 서 있는 곳이 나루터다.
▲ 신성리 나루로 향하는 갈대밭 산책로. 세 그루 나무가 서 있는 곳이 나루터다.
▲ 신성리 나루로 향하는 갈대밭 산책로. 세 그루 나무가 서 있는 곳이 나루터다.
▲ 신성리 갈대밭 산책로.

갈대밭의 우듬지 위를 스카이워크가 활공한다. 둑에서부터 강변까지, 가볍게 난다. 겨울이 면 고니와 청둥오리, 검은머리물떼새 따위가 떼 지어 날아든다는데 오늘 갈대밭은 고요하고, 강물도 고요하고, 갈대의 정수리를 스치는 방만한 바람만이 이따금 휘파람 소리를 낸다. 스카이워크에서 내려서면 그제야 기스락을 간질이는 강물 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물속에 잠긴 듯, 이명 듣듯, 몽롱해진다. 갈대밭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다. 길은 축축해 걸음 소리 들리지 않고 갈대들은 방벽처럼 높다. 길은 가늠할 수 없는 미로와 같지만 이정표가 있어 길 잃을 일은 없다.

▲ 갈대밭 산책로의 갈대 궁륭.
▲ 갈대밭 산책로의 갈대 궁륭.

누군가 이쪽의 갈대와 저쪽의 갈대를 묶어 놓았다. 길로 인해 떨어져 선 갈대들, 아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그렇게 멀었는데. 사람들이 참 착해서 갈대의 첫 음이 비강에 맺힌다. 또르르 콧잔등을 타고 흘러 코끝이 시큰하다. 신성리 사람들은 갈대를 꺾어 빗자루를 만들어 쓰고 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갈대 빗자루는 ‘갈비’라 불렀는데 갈대가 억세 지기 전에 꺾어 삶아 만들면 10년을 썼을 정도로 우수한 제품이었다 전한다. 또 갈대밭에는 갈게가 흔했다. 방게 종류 중 가장 크다는 갈게는 껍질이 얇고 단단하지 않아 사람들이 즐겨 먹었는데 정작 신성리 사람들은 갈게를 잘 먹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갈게들은 사람의 기척에 모두 숨어버린 듯하다.

▲ 영화 촬영지임을 알리는 표석.
▲ 영화 촬영지임을 알리는 표석.

“살려주세요.” 지뢰를 밟은 남한의 병사가 뒤돌아가려는 북한군 병사에게 말했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이다. 그때 그 비무장지대의 스산한 갈대밭이 바로 이곳이었다. 드라마 ‘추노’에서는 두 남자주인공이 이곳에서 비장한 한판 대결을 벌였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하는데 미안인지 사랑인지 장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조금 궁금해진다. 군데군데 ‘공동경비구역 JSA’의 장면들이 안내되어 있다.

▲ 신성리의 곰개나루. 강 건너편은 익산 웅포의 곰개나루다.
▲ 신성리의 곰개나루. 강 건너편은 익산 웅포의 곰개나루다.

높은 갈대 위로 더 높이 솟은 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분명 저곳이 나루터일 게다. 갈대밭 사이에 놓인 무지개다리를 건너자 작은 공터와 함께 과연 나루가 나타난다. 원한다면 예약을 하고 유람선을 탈 수 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옛사람들은 이곳 신성리 곰개와 웅포 곰개를 황포돛배와 같은 나룻배로 넘나들었다.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고, 바람이 잔잔하면 노를 저었다. 나룻배는 쌀가마니 50개를 실을 수 있는 크기였고 정해진 시간 없이 배가 가득 차면 출발했다. 저쪽의 곰개 사람들과 이쪽의 곰개 사람들은 한 동네처럼 지냈다. 생선장수의 중신으로 혼인도 많았다. 신성리 사람들은 웅포 5일장을 이용했고, 웅포장의 유명한 객주는 신성리의 땅 부자였다.

▲ 나루터에서 다시 둑으로 오르는 산책로의 ‘나가는 길.’ 금강 하굿둑까지 12km 지점이다.
▲ 나루터에서 다시 둑으로 오르는 산책로의 ‘나가는 길.’ 금강 하굿둑까지 12km 지점이다.
▲ 갈대밭 입구의 체험장. 카페와 매점 등이 들어서 있고 주변으로 노점들이 있다.
▲ 갈대밭 입구의 체험장. 카페와 매점 등이 들어서 있고 주변으로 노점들이 있다.

나루에서 다시 둑으로 오른다. 금강 하굿둑으로부터 12km라는 안내판이 있다. 신성리 갈대밭은 매년 2월에서 4월까지 갈대 생육 촉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5월부터는 초록의 갈대를 볼 수 있고 11월 경 늦가을에는 은빛 갈대꽃이 핀다. 꽃이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사실 눈 내리는 갈대밭이 그리웠다. 오던 길 진안고원에 얕게 쌓인 눈을 보면서 기대를 많이 했건만 하늘은 맑고 바람은 명주 같아 둑길에 늘어선 바람개비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구름만이 지치보라의 곱고 느긋한 얼굴 속에 반물빛을 감추고 있다. 둑 아래 갈대밭 입구에 체험장 건물이 크다. 건물에는 카페와 매점도 있다. 건물 앞에는 군밤과 땅콩 등을 파는 노점들이 있는데 오늘은 한 곳만이 장사를 한다. 싹싹한 늙은 아버지와 무뚝뚝한 젊은 아들이 밤을 굽는다. “부여 공주 밤이에요.” 갓 구운 포슬포슬한 밤, 아 달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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