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대상으로 만나는, 시대별 한국의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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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대상으로 만나는, 시대별 한국의 대중문화
  • 김창남 성공회대학교
  • 승인 2021.08.09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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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한국 대중문화사』 (김창남 지음, 한울아카데미, 432쪽, 2021.06)

 

오랫동안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에 대해 강의해 왔다. ‘대중문화론’의 일부로 다루기도 했고 아예 독립된 과목으로 강의하기도 했다. 강의하면서 늘 아쉬웠던 것이 학생들에게 읽힐만한 적당한 책이 없다는 점이다. 대중문화의 여러 하위 부문에 관한 역사, 이를테면 영화사, 대중음악사, 방송사 등에 관해서는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나와 있고 통사 형식으로 집필된 책들도 꽤 있는 데 반해 이들을 엮어 대중문화라는 프리즘으로 정리한 책은 찾기 어렵다. 이 책을 쓰게 된 일차적인 동기다. 

대중문화의 개념과 관련하여 가장 쉬운 정의 방식은 다양한 하위 장르 영역들, 이를테면 영화, 대중음악, TV, 대중소설 등등의 총합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런 정의 방식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기존의 장르 양식에 들어가지 않는 다양한 대중적 문화 현상을 처음부터 배제하게 되고, 실제 대중문화를 수용하고 소비하는 대중의 일상적 삶과 정서, 실천의 문제, 또 다양한 문화를 관통해 표현되는 정체성 갈등과 문화정치의 문제를 드러내기 어렵다. 

대중문화사는 단지 영화, 대중음악, TV 등 하위 장르의 역사를 산술적으로 합한 것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문화 텍스트와 작가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생산과 소비 혹은 산업과 시장의 문제, 제도와 정책, 이데올로기적 지배와 저항, 기술과 매체, 세대 간 갈등과 차이, 대중의 일상적 삶과 정서 같은 문제들이 씨줄날줄로 얽혀 있다. 따라서 대중문화사의 서술은 시대별로 각 장르의 역사를 병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르를 가로지르며 시대를 특징짓는 주요 주제들을 제시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 책의 시대 구분을 전체적으로 개괄하면, 서구의 근대적 신문물이 도입되는 개화기, 근대적 대중문화의 기본이 형성되는 일제강점기, 분단시대가 개막하고 냉전적 반공주의가 확고히 자리 잡은 해방 후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시기, 군사독재와 함께 근대화 정책이 본격화된 1960년대, 박정희 시대의 모순이 극에 달했던 1970년대, 신군부 치하에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폭발했던 1980년대, 민주화의 흐름이 가시화된 1990년대를 각기 별도의 장으로 서술했고, 마지막으로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정보화와 지구화의 물결이 거세게 불어 닥친 2010년대 말까지의 시기를 한 묶음으로 다루었다. 연대기적 구분은 대체로 느슨하다. 1990년대의 문화를 논하면서 1980년대의 영화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1960년대 부분에서 1950년대의 문화가 다루어지기도 한다. 문화는 연속적인 것이지 시대에 따라 칼 같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가 포괄하는 문제영역이 다양한 만큼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다루기는 어차피 불가능하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대중이 일상 속에서 소비하는 대상으로서의 문화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와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E-Book으로 재미있는 소설을 읽기도 하고, 게임을 하고, 음악을 듣는다. 그런가 하면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영화를 보고 본방을 놓친 드라마를 찾아보고 지인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2000년대 초까지 지하철의 시민들은 신문을 읽고 낱말풀이를 하거나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거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지인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사실 손에 든 매체는 달라졌지만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요컨대 그들은 문화를 소비한다. 이 책이 주로 다루는 대상은 바로 그렇게 대중의 소비 대상이 되는 문화이고 그 중에서도 출판, 영화, 대중음악, 라디오, TV, 만화, 스포츠 같은 것들이다. 시대에 따라 대중이 문화를 소비하는 매체 형식이 변화해 온 만큼 주요한 논의 대상이 조금씩 다른 건 당연하다.  

 

72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미국 타임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된 방탄소년단(BTS).

한국에서 근대적 대중문화는 20세기 초 외세에 의해 문호가 열리고 식민지 시대를 겪으며 사실상 강제적으로 이식되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면서 한국은 세계적인 대중문화 강국이 되었다. 한국은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적 패권이 맥을 못 추고 대중가요 시장의 대부분을 국산 대중가요가 차지하는 많지 않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한국이 대중문화 강국임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물론 한류 열풍이다. BTS와 봉준호의 사례는 한류 열풍이 2020년 초 현재 시점에 정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BTS와 봉준호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돌연변이처럼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밑에는 지난 한 세기의 대중문화 역사가 어떤 식으로든 흐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류 콘텐츠의 특성은 그것이 한국의 것이면서 다양한 요소가 뒤섞인 혼종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 자체가 끊임없이 새로운 요소들이 수입되고 결합하고 뒤섞이며 진행된 혼종화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식민 시대에는 일본을 통해, 해방 이후에는 미국을 통해 이질적인 문화가 들어오고 토착문화와 뒤섞였다. 획일적인 문화적 가치가 강요되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지배 문화에 저항하는 다양한 문화들이 생산 수용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지배와 저항의 문화가 뒤섞이기 시작했고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혼종화의 경향은 더 다양하게 더 자유롭게 이루어졌다. 한국 대중문화의 창조 역량은 그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 책에서 바로 그런 과정을 구체적으로 담고 싶었다.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진지한 학술적·비평적 담론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다. 형식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사회과학적 혹은 변혁적 문제의식이 주춤해진 대신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시기다. 때맞추어 정보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포스트모던 담론이 유행하고 새로운 세대의 문화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문화비평이 활황을 맞았던 1990년대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연구가 부상하고 미시사, 일상사, 장르별 문화사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며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훌륭한 연구 성과들이 나왔다. 이 책이 다분히 그런 연구 성과들에 기대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김창남 성공회대학교·언론학/대중문화론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및 문화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 (사)더불어숲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대중문화사>, <나의 문화편력기> <대중문화의 이해>, <대중문화와 문화실천>, <신영복평전>(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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