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노는’ 마당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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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노는’ 마당을 바꿔야 한다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21.08.0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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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지속되는 무더위와 코로나 확산으로 모두에게 힘겨운 여름이다. 많은 대학들에게는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대비에 더욱 뜨거운 여름이 되고 있다. 이 평가결과에 따라 내년부터 3년간 정부 재정지원에 영향을 받고, 잘못되면 ‘부실대학’이란 낙인이 찍히며 정원을 축소해야 하고,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 받는 데 제한받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위기감이 크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대학들이 올해 신입생 4만 명 이상을 채우지 못했는데,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평가지표는 3년 전 13.3%에서 올해 20%로 대폭 확대가 되어 대학들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평가 지표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외부 인사로부터 컨설팅 받거나, 허위 입학 등록으로 충원율 조작한다는 등의 이야기도 들리곤 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생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같다.  

지난 7월 초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하계 대학총장 세미나에서는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평가 방식 그리고 신입생 미충원으로 상황이 심각해진 지방대학에 대한 지원 육성이 핵심 이슈였다고 한다. 결국 재정 문제였다. 총장들은 ‘대학 공동노력 결의문’을 채택하며, 2022년 대학혁신지원사업비 2조원 수준으로의 확대, ‘고등교육지원특별회계법’,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3주기 대학진단평가의 완전 일반지원사업비로의 전환 등을 교육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이러한 제안은 오랫동안 대학들이 계속 제기해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리 큰 변화가 없었기에 많은 대학들이 지친 듯하고, 희망과 기대를 가질 만한 대상도 없어 보인다. 이제는 그저 주어지는 환경에 적응하기에만 바쁜 것 같다. 지난 20여 년 동안 고등교육은 사회로부터 잊혀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고등교육 문제가 국가 경쟁력 문제라는 점을 이번 대선 과정에서라도 인식시키자는 이야기가 총장 세미나에서 나올 정도다.

대학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자율권, 재정 확보, 합리적인 평가 등의 핵심적인 과제들이 언제 해결될 수 있을까? 언제나 각 대학이 각자의 특성을 살리면서, 안정적으로 교육, 연구, 사회적 역할에 집중할 수 있을까? 앞으로 5년, 10년이면 가능할까? 등록금 동결 정책은 현재 13년째 이어지고 있다. 대학이 정부와 정치권에 기대하며 접근하던 방법이 지난 20여 년 동안 별 효과가 없었다면, 이제는 다른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는가 싶다. 

그동안 대학 밖을 향했던 시선을 돌려보자는 것이다. 대학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더 고민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동안의 정부의 재정지원이 대학의 운영과 유지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대학의 내면적 발전에는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그동안 모든 대학들이 정부가 그려주는 하나의 마당에 모여 정해준 규칙에 따라 획일적으로 움직여왔다. 이제는 대학들이 보다 다양하게, 각자의 특성을 강화하면서, 국내외로 협업을 확대해나가야 하는 시대다. 이를 위해 대학별로는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자신의 마당을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마당을 계속 가꾸고 확장하는 것이다. 앞으로 대학의 역할, 형태, 생존 방식이 글로벌 환경에서 빠르게 새로워지고 다양해질 것 같다. 정부의 재정지원, 평가, 국내외 ‘상업적’인 대학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할 만한 대학은 없을까?

해외 혁신대학들의 특징을 보면, 대학 경영은 학생의 성장과 성공을 중심에 두고, 섬세한 기획에 따라 학생은 자기 주도성과 토론을 기반으로 교실에서 배운 내용과 국내외 사회 현장을 연계하는 체험활동으로 훈련을 받는다. 교수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능력개발을 도우는 조력자(coach), 촉진자(facilitator) 위치에 선다. 학생과 교수가 함께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며, 그룹 프로젝트를 통한 사회 현장의 문제해결 과정에서 서로 역량을 키운다. 경쟁보다는 협력의 힘을 깨닫게 한다. 국내외 기업, 공기관, 비정부기구 등과의 협업 관계, 네트워크도 형성한다,  

학생 선발도 정부가 주도하는 점수 중심의 획일적 방식이 아니다. 혁신대학에서는 학생 선발에서도 개인의 능력과 함께 그룹 프로젝트를 통해 협업을 즐기는지, 열정이 있는지 등 협업에 대한 태도와 능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교수 채용과정도 개인의 전문성에 대한 능력보다, 그룹 인터뷰를 통해 분야를 넘어 협업하는 능력이 있는지. 학생의 창의적 역량 개발에 대한 조력 능력이 있는지를 중시한다. 협력적 소통, 다양한 관점에서의 문제 인식, 다양성을 통한 가치 도출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우리 대학 사회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일부 대학에서 산학 전임교원을 채용하면서 기준을 석사 학위 및 산업체·기관 경력 20년 이상으로 하고, 정식 교원으로 대우하며 승진도 시킨다. 전임교원에 대한 획일적이었던 조건과 틀을 다양화시키는 것이다. 승진 기준도 산학협력과 학생 진로지도 실적 등으로 하여, 산업현장과 실질적으로 원활히 연계하는 교육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교수 업적도 논문 편수, 영향력 지수, 피인용지수 등에 따른 획일적 비교에서, 학문적 가치, 사회적 영향력과 그 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 팬데믹 이후라는 대전환의 시대는 대학 생태계에 다양한 변화를 빠르게 가져올 것 같다. 작년 초부터 코로나 사태로 갑자기 100% 비대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는 기대하기 어려운 외부를 바라보기 보다는, 먼저 대학이 나서서 독자적 혁신을 펼쳐가고, 사회와 함께 인재를 양성하며 학생들이 희망을 갖도록 해야 한다. 교수와 학생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회 요구에 부응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모습을 만들어간다면, 학부모를 비롯한 국민의 대학에 대한 기대가 커지지 않겠는가. 정부와 사회도 각 대학이 자신의 마당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는 바로 모두가 상생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먼저 그동안 쌓아온 고정 관념과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위한 성찰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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