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여성가족부’가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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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북 ‘여성가족부’가 사는 길?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1.08.02 10: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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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_ 대학직설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우리 정부 18개 부처 중 가장 인기도 없고 영향력도 없는 부처가 어딘지 아느냐고 물으면 아마 열 중 아홉은 여성가족부를 지목할 것이다. 매년 하는 정부 업무 평가에서도 여가부의 성적은 최하위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스무 살 청년이 된 이 부처에 무용론과 폐지론이 따라붙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 대표가 여가부 폐지론을 들고나와 또다시 논쟁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 야당 발(發) 폐지론은 과거처럼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뭔가 획기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무엇보다 근래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잊을만하면 다시 점화되는 ‘이대남’·‘이대녀’ 갈등이 이 부처 폐지론 논쟁으로 옮아붙었기 때문에 가부간 상황 해소가 불가피해진 측면이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때마침 20대 대통령 선거캠페인과 맞물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치성 논쟁의 가장 바람직한 결론은 무엇일까. 

여성가족부의 전신인 ‘여성부’는 국민의 정부 작품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1988년부터 다른 업무와 곁들여 여성정책을 관장해온 정무장관(제2)실을 없애는 대신 대통령소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신설하여 여성정책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기획·조정 사무를 관장하도록 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01년 1월, 다시 정부가 여성특별위원회의 고유 업무에 보건복지부와 노동부가 가지고 있던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의 보호, 성매매 등의 방지업무 및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사무 등 여성 관련 업무 기능을 대폭 이관하면서 ‘여성부’로 확대 개편되었다.

2005년 이 여성부의 명칭이 ‘여성가족부’로 바뀌게 된다. 이는 2004년 6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영유아 보육업무를 추가로 넘겨받게 되어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남녀차별의 금지 및 구제 등 여성의 지위와 권익 향상뿐만 아니라,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통합적 가족정책을 수립하고 조정·지원하는 기능까지를 모두 맡아 수행하게 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이 부처의 명칭을 다시 ‘여성부’로 바꾸는 것과 동시에 가족 및 보육정책 기능을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했다. 그러나 2년 뒤 보건복지가족부가 가족 해체 및 다문화 가족 등 현안 사항에 적극 대응할 현실적 필요성과 부처 간 업무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청소년 및 다문화 가족을 포함한 정책 기능을 여성부로 되돌려 보내게 된다. 그 결과 여성부는 여성정책의 종합 및 여성의 권익증진 등 지위 향상 뿐만 아니라 가족정책과 건강가정사업을 위한 아동 업무 및 청소년의 육성·복지 및 보호 기능까지 함께 떠맡게 되었고 부처명도 또 한 번 ‘여성가족부’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부처 이름도 수차례 엎치락뒤치락했고 업무 기능과 범위도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 했던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현재 여성가족부의 불안정한 위상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부처의 고유성 또는 정체성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비근한 예로 현재 여가부의 영어명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이다. 이것을 우리말로 자구대로 옮기면 ‘젠더평등가족부’가 돼야 정확하다. 그런데 왜 구태여 ‘여성’가족부로 지칭하게 된 것일까. 사실 이 모순점을 바로잡고자 했던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김희정 여가부 장관이 부처명을 ‘양성평등가족부’로 변경하려고 시도했다가 무산된 예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관련 학계에서는 ‘gender’라는 용어를 ‘사회적 성’이라고 설명한다. 요컨대 ‘젠더’는 생물학적 성이 아니기 때문에 성(性)중립적인 용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적용한다면 젠더라는 말에는 여성, 남성, 양성, 교차성(trans-gender) 등등이 다 포함된다는 전제가 따라붙는다고 볼 수 있다. 가령 미래 어느 시점에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인간이 법인격을 얻는다면 그 기계인간의 성 역시도 젠더의 한 범주로 간주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아니, 좀 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 보자. 현재 우리는 국제결혼 증가에 따라 한국사회가 빠르게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변모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가까운 미래 어느 시점에 ‘혼종 성(性)’ 정체성을 젠더의 또 다른 세부 범주로 설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 7월 14일, 논란의 중심에 놓인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여가부 출범 20주년 기념 비대면 기자간담회를 열어 여가부는 존치되어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부처 입장을 발표했다. 그 첫 번째 근거로 “2020년 기준 UN WOMEN에 등록된 194개 국가 중 97개 국가에 여성 또는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는 장관급 부처 또는 기구가 설치돼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주장에서 주목할 표현은 ‘성평등’, 즉 ‘gender equality’인데 이는 사실상 UN이 제시하고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수용한 보편적 정책목표이다. 따라서 우리처럼 ‘여성가족부’라는 이름을 단 ‘장관급 부처 또는 기구’가 있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필자가 UN WOMEN 사이트에서 정말로 “97개 국가에 장관급 부처 또는 기구가 설치돼 있”는지 찾아봤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둘째, 여가부는 “성평등 관점에서 정부 운영을 감시하는 주체”로서 성별영향평가제도나 성인지 예산제도를 관할하기 때문에 존재해야만 하며,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로 넘어간 성차별·성희롱 시정업무도 여가부에 되돌려 줘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덧붙여 현재 복지부에서 관장하는 “보육과 돌봄 업무도 가족정책과 연계해 추진하는 게 효율적”이므로 여가부에 이관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여가부의 권한과 예산을 늘려주면 존폐론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부처의 ‘숙원’을 사실상 재확인한 대목이었다. 

끝으로, 정 장관은 여가부의 명칭을 ‘성평등부’ 또는 ‘양성평등부’로 개편하는 방향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우선 ‘성평등부’ 주장은 일견 합리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현재 UN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들이 채용한 공통어가 ‘gender equality’이며 이것을 ‘성평등’으로 옮기는 것은 자연스럽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성평등부’의 경우는 20대 남성들의 ‘반(反)페미’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적 명명 방식일 뿐이다. 또한 앞에서 보았듯이 ‘gender’를 ‘양성’으로 옮기는 것은 gender의 사용법을 제한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우리의 여성가족부는 여성 자신은 물론 아동, 청소년, 노인, 가족과 여성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외국의 ‘gender equality’ 관련 부서와 성격상 차이가 있다. 요컨대 이 부처는 한국적 특수성에서 자라난 제2의 복지부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여가부의 선택지는 ‘성평등부’로서 젠더평등의 문제로 국한하여 부처 업무를 특화하거나, 아니면 ‘미래 청년·가족·젠더부’(The Ministry of Future Youth, Family, and Gender)와 같은 이름으로 변경하여 현재의 업무를 미래의 관점에서 재발명하는 것뿐일 듯하다.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패러다임,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 역서로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 읽기』, 『시민사회』,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책임과 판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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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완기 2021-08-04 10:02:17
관심과 열정에 감사합니다. 기쁜 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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